(영화 세 얼간이 삽입곡) - 인도 영화 특유의 뮤지컬을 유감없이 즐길 수 있는,
0.
주위에서 기대하는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더이상 다른 사람의 바람대로 살지 않을거야 라고 중얼거리는 아침이 오는 시간은,
빠르면 수십 년, 늦으면 평생 동안, 또는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보다 더 멀리 걸릴지 모른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에서 12살 소녀 팔로마는 적는다.
"사람은 별을 좇는다고 믿지만 결국 어항 속 빨간 금붕어들처럼 끝을 맺는다." - 26p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동화 모음인) 엘리너 파전의 <작은 책방>에 실린 금붕어처럼
아마도 나는 유리로 된 어항을 통해 비춰진 거실 벽의 코끼리와 공작 깃털을 바라보며 세상의 신비를 모두 가졌다고 뽐낼 지도 모르고,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전구를 보며 달이라 기뻐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렇게 세상에 속아가며 내 마음을 속여가며 살아왔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1.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을 살피고 저 너머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 하찮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사색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확신하는 것 너머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만남을 단념했다는 것, 이 영원한 거울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자신만을 만나려 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미쳐버릴 것이다. 우리가 타인 속에서 결코 자신 밖에 바라보지 않으며, 우리는 모두 사막 속에 홀로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라뒤레 상점의 마카롱 쿠키를 드브로이 부인에게 대접할 때, 엄마는 엄마 자신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맛을 음미할 뿐이다. 아빠가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는 것은 쿠에 방식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일이다. 콜롱브가 마리앙의 강의에 대해 말할 때 그녀는 그녀 자신의 그림자를 비난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수위 아줌마 앞을 지나칠 때 그들은 그녀가 자신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허공 밖에 보지 못 한다.
자신의 저 너머를 보는 누군가를 만나기를 운명에게 간청한다.
– 200p, 고슴도치의 우아함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 한다. 누군가가 어릴 때부터 주입해왔던 어떤 것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야 하기 때문에, 타고난 자신의 모습을 때로는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절망한다. 그리고 누군가 “너는 있는 그대로 괜찮아” 라고 확신을 심어줄 상대를 만나기를 목매어 기다린다. 운명에게 간청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 하고, 자신을 투영시켜 바라보기 급급하다. 결국 세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자신이 꿈꾸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되어버리고 인간은 점점 외로와진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닐까.
2.
작년 열심히 헤매고 있는 나에게 - 물론 나는 항상 열심히 헤매고 고민하고 끙끙대지만- O님께서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봐야지 봐야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드디어 지난주 토요일에 코알라와 함께 본다.
알 이즈 웰, All is Well, 란초의 괴변에 따르자면, 어려움이 닥치면 잠시 마음을 속여줄 필요가 있어, 그때 알 이즈 웰 이라고 말해주는거야, 그러면 용기가 솟거든.... 알 이즈 웰.
우리나라와 다름없이 서열 구도로 죽어라 경쟁하는 인도 일류 대학에서
교수님에게 의문을 제시하고 기성인과 반대로 생각해보고 원하는 욕구를 찾아가는 모습을
경쾌한 구도로 그려내는 이 작품은, 정말 좋았다.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젊은 시절의 치기어린 반항과 사회적 굴복에 대한 압력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하게 그려낼 수도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것은 "나는 외로와" "나는 능력이 없어" "나는 가난해" "나는 벌어먹일 식구가 많아" "나는 언젠가 죽을거야" 라는 어쩔 수 없는 문제에 절망하여 내내 바닥을 헤매기보다, 한계를 인정하고 그 지점을 시작점으로 삼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생생하게 살아가겠다는 시각의 전환과 대안적 사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또 한가지,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주선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해낸 볼펜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대학 교수에게 란쵸는 "왜 연필을 사용하면 안 되나요?" 라고 반박한다. 그것은 분명 당신의 방법이 틀렸다 내가 더 올바르다 내가 최고다 라는 비아냥이 섞인 질문이었다. 영화의 말미에, 진심으로 란쵸를 제자로서 받아들인 교수는 말해준다. "연필 심이 부러지면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사람의 눈을 찌를 수 있기 때문이지. 항상 자네가 옳은 것만은 아니네..." 라고.........
영화는 이렇게 앞선 세대들이 쌓아온 많은 것들은 존중할 가치가 있다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하며, 기성 사회가 틀렸다 라고만 하지 않는 균형잡힌 시선을 보여준다. 당신의 지금 방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전에 당신이 옳았고 내가 틀렸다 라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것 역시 용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3.
자주 들리는 어떤 장소의 벽에 붙어 있는 글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그렁해진다.
선천적으로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정은이는 휠체어를 타고 다닙니다.
하루는 정은이의 어머니가 딸기를 사오셨습니다.
그런데, 정은이가 멀쩡한 포크를 두고 4개의 다리 중 하나가 부러진 포크를 사용하는 겁니다.
어머니는 물었습니다.
"너 왜 부러진 포크로 먹니?"
"그냥 이걸로도 충분해요."
"멀쩡한 포크 놔두고 그게 무슨 궁상이야? 이리 내!"
"싫다니까요!"
"얘가 오늘 왜 이래 정말.."
"정말 괜찮다는데 왜 자꾸 그래요.. 이걸로도 충분하단 말예요..."
정은이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걸로도 이깟 딸기 정도는 충분히 찍어먹고도 남는단 말이예요..."
그제서야 정은이가 왜 부러진 포크를 사용했는지 알게 된 어머니는
말없이 정은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엄마가 미안해 정은아...
곧 우리 딸을 제대로 봐주는 곳이 생길거야, 넌 정말 충분하거든..."
4.
나는 정말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 라는 것을 깨닫는데 참 오래 걸렸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잔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한번씩 욱하고, 신나면 목소리 올라가고, 때로는 기분이 쳐져서 실컷 훌쩍대고, 이렇게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 내리락 하는 내 모습을 보는 날이면 자신이 창피했고 싫어졌다. 나는 한결같은 사림이고 싶었다. 나는......... 한결같다 라는 의미를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 맞았다. 나는 한결같이 오르락 내리락, 다이내믹한 열정과 감수성과 욱하는 승질머리를 타고난 그런 사람이었다.
요즘 들어 나는 내 타고난 모습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진다. 내 장점도 보인다.
나는 오르락 내리락 하기에 호기심도 많고 감수성도 풍부하다. 변덕스러운 만큼 재미있다. 조증 상태일 때는 무섭도록 에너지가 넘쳐서 엄청난 일을 한번에 해치우기도 하고, 울증 상태일 때는 축 쳐져서 세상의 미학을 제대로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때론 무위도식하며 아무 것도 안 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라고 나를 수용한다.
나를 수용하는 이제 첫 걸음이다.
수용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게 생각이든 감정이든 행동이든 표현한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억지로 꾸미고 조작하고 덧붙이는 이상한 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줘도 다 받아들여지는데 굳이 자기를 속이며 무리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러니까 매우 편한 마음으로 자유를 누리며 자기답게 살 수가 있습니다. - 16~17p, 수용, 박성희
누군가를 수용한다.........의 누군가에는 타인 뿐 아니라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잊기 말기를.
누가 나에게 그런다.
책에서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도대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걱정하고, 타인이 자신에게 부당한 짓을 해도 화낼줄 모르며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여기에 부당한 짓을 한 그놈이 있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보세요 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말을 못 한다. 누군가를 헐뜯는 것은 나쁜 짓 아닌가요 란다.
아, 내가 대신 화나네!
그놈은 나쁜 놈이고, 찌질한 놈이고, 비열한 놈이예요!
자신을 편들어서 그놈을 욕하지 못 한다면, 누가 내 자신의 편을 들어주겠어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거예요, 본인이 먼저 자신을 감싸주는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를 사랑하려 한다면,
타인의 사랑을 통해 나를 사랑하려 한다면,
타인의 추앙을 통해 나를 사랑하려 한다면,
사랑에 대한 배고픔은 먹어도 먹어도 사라지지 않고 먹을수록 더욱 배고파지는 것 같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사랑 고프다고 울던 작은 아이가
나중에는 세상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도 모자라 모자라 하고 울부짖는 식귀가 되어버리는지도.
문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먹깨비 유령 가오나시가 생각나고,
동시에 우리 사회에 먹어도 먹어도 모자라 하시던 상위 1% 유명 인사들이 생각난다....
가오나시는 귀엽기라도 하지 원!

5.
또다른 용기에 관련된, 나를 찾아가는 영화 <부러진 화살>.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가슴이 시원하면서도 먹먹했다.
그것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다.
대법원까지 가서도 지고 4년 옥살이를 했음에도 아직 사법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모습은 다윗과 골리앗을 넘어서,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또 한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그래........ 그렇게 살고 싶다.
나를 찾아서, 내 신념대로, 내 가치대로, 내 타고난대로.
6.
나를 수용한다는 것이 참으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나에게 쏟아지는 사회와 부모와 친구와 교육의 압력을 무시하는 것이 진정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겠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내 시선을 강제하지 않는 나였으면 싶어진다.
주관적 경험, 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내 주관적 경험이 타인의 주관적 경험이 아니기에, 나는 타인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을 해석할 수 있다고 호언한다면, 그것은 우월감일 뿐이다.
나는 추측하고 가설을 제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물어봐야 한다. 상대의 언어적인 표현과 비언어적인 표현을 충분히 경청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수용하고, 당신과 내가 다름을 충분히 받아들일 때.............. 함께 사는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추신. (2012.05.17)
어제 미완인 상태로 올린 페이퍼를 이제야 다시 손볼 수 있었다.
오늘도 약속 두개 펑크다.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는데, 잘 된 일이다. 감기 몸살로 앓아 누워있었는데, 코알라도 감기로 머리가 아프다고 10시 40분에 조퇴해서 왔으니. 우리 모녀는 함께 앓아 누운 중이다. ^^
그리고, 차라리 제대로 된 진보를, 무엇인가 미심쩍은 진보가 아닌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진보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발 후퇴에 두 발 전진이기를! 힘내세요!
또 하나,
이것이 기뻐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바쁘고 책 읽을 시간도 그다지 없고 바닥에 수북히 쌓인 책을 한숨으로 바라만 본 결과,
알라딘 가입하고 거의 처음으로 3개월 합산 구입 금액이 60만원대로 떨어졌다. 음하하.
추신2. (2012.05.17 오후 두시)
멍하다.
머리가 맑지 못 하다.
오감이 흐리다.
세상이 흐릿한 꿈처럼 느껴진다.
두통이 심하다.
어깨가 아프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모두 똑같을거 같아서, 별 기대감이 없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현재 지쳤다, 라는 것을 알려준다.
오늘은, 하루종일 놀아야지, 다짐한다.
총총.
펼친 부분 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