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동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 - A. J. F. - P57
다른 사람들은 그 누구도 에이제이만큼 진짜처럼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계절마다 다른 신발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 마야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아이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죽었다는 것은 잠이 들어서 깨어나지 않는 것임을 안다. 마야는 어머니가 무척 안타깝다. 깨어나지 않는 사람은 아침에 아래층 서점에 내려갈 수 없으니까. 마야는 어머니가 자신을 아일랜드 서점에 두고 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일정 나이가 되는 모든 애들한테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들은 신발 가게에 남겨진다. 또 어떤 애들은 장난감 가게에 남겨진다. 또 어떤 애들은 샌드위치 가게에 남겨진다. 그리고 인생은 어떤 가게에 남겨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거다. 마야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살고 싶지 않다. - P109
에이제이가 읽는다. "……맨 꼭대기에는 빨강 모자가 여럿 있습니다." 그림은 다양한 색깔의 모자를 겹쳐 쓴 남자를 보여준다. 마야는 자신의 손을 에이제이의 손 위에 얹어 아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막는다. 아이는 눈으로 그림과 글 사이를 왔다 갔다 훑는다. 돌연 ‘빨강’이 빨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이름이 마야라는 것을 알게 되듯, 에이제이 피크리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듯,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이 아일랜드 서점임을 알게 되듯. "왜?" 에이제이가 묻는다. "빨강." 마야는 에이제이의 손을 잡고 움직여 그 낱말을 가리킨다. - P111
에이미가 이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녀의 기질 속에 내가 생각지 못했던 기묘하고 놀라운 것들, 내가 가보고 싶은 어두운 장소들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사람들은 정치와 신, 사랑에 대해 지루한 거짓말을 늘어놓지.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 A. J. F. - P113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 P119
그해 봄, 어밀리아는 마야를 데리고 약국 겸 화장품 가게에 가서 좋아하는 네일 폴리시 색을 고르라고 했다. "어떻게 골라요?" 마야가 물었다. "지금 어떤 기분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되고," 어밀리아가 말했다. "어떤 기분이 되고 싶은지 물어봐도 좋고." 마야는 주욱 늘어선 유리병을 유심히 관찰했다. 빨강을 골랐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마야는 무지갯빛 도는 은색을 선반에서 꺼내들었다. "와, 예쁘다. 하이라이트는 이거야. 각 컬러마다 이름이 있거든." 어밀리아는 마야에게 말했다. "병을 거꾸로 들어 바닥면을 봐봐." 마야는 시키는 대로 했다. "책처럼 제목이 있어요! 진주의 아침." 마야가 읽었다. "그건 뭐예요?" 어밀리아는 하늘색을 골랐다. "가볍게 살자." - P167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린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맹세코.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밀리아가 그 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아내가 되어주세요. 당신에게 책과 대화와 나의 온 심장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에이미." (...) 어밀리아는 미간을 찡그렸고, 에이제이는 그녀가 거절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오코너의 단편을 말하는 거야? 당신 책상 위에 있던. 이런 순간에 떠올리기엔 지독히 어두운 얘긴데." "아냐, 당신을 말하는 거야. 나는 끝없이 찾았는데. 겨우 기차 두 편과 배 한 척 거리였군." - P193
"이유가 있었을 거야. 분명 네 어머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어밀리아의 어머니는 이태 전에 세상을 떴다. 그들 모녀의 관계는 때론 위기도 있었지만, 어밀리아는 뜻밖에도 어머니가 맹렬히 그리웠다. 가령,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격월로 딸에게 새 속옷을 부쳤다. 어밀리아는 평생 단 한 번도 스스로 속옷을 살 일이 없었다. 최근에서야 티제이맥스의 란제리 매장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팬티를 고르면서 울음이 터졌다. ‘나를 그토록 사랑해주는 사람은 다시는 없을 거야.’ - P219
"흠, 난 지금 당신한테 경고하는 거예요. 난 표지만 예쁘지 내용은 형편없는 책일 수도 있다고." 램비에이스는 끙 신음을 흘렸다. "저도 그런 책 좀 알아요." "예를 들면?" "나의 첫 결혼. 아내가 예뻤는데 성격이 안 좋았어요." "그럼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려고요?" "설마, 난 서가에 놓인 당신을 십수 년간 봐왔어요. 뒤표지에 실린 인용구도 읽고 줄거리도 읽었죠. 배려심 많은 교사. 대모. 지역사회의 견실한 구성원. 여동생의 남편과 그 딸을 돌보는 사람. 아마도 너무 어린 나이에 시작된, 그러나 최선을 다했던 불행한 결혼생활." "개략적인 이미지군요." "하지만 계속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충분한데요." 램비에이스는 그녀를 보고 싱긋 웃었다. "디저트 주문할까요?" - P252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일들을 저지르고, 보통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 P256
"난 항상 마야의 어머니가 왜 앨리스를 택했을까 궁금했어요." 이즈메이는 팬케이크를 뒤집고, 또 하나 뒤집었다. "사람들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누가 다 일일이 알겠어요?" - P257
"난 소개팅을 수만 번 해본 여자하고 비슷해. 너무 많이 실망했고, 다들 ‘대박’이라고 큰소리치는데 대박은 개뿔. 당신도 경찰일 하면서 점점 그렇게 되지 않아?" "어떻게?" "시니컬해진달까." 에이제이가 말했다. "매번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게 되지 않아?" 램비에이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나쁜 사람들만큼이나 착한 사람들도 많이 보는데." "그래, 어디 이름 좀 대보시지." "자네 같은 사람 말이야, 친구." 램비에이스는 헛기침을 하며 목청을 가다듬었고, 에이제이는 대꾸할 말을 떠올릴 수 없었다. - P286
어째서 이 책은 저 책과 다른 걸까? 책이 저마다 다른 건, 에이제이는 결론을 내린다, 그냥 다르기 때문이야. 우리는 많은 책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는 믿어야 한다. 때로 실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이따금 환호할 수도 있다. - P287
인간은 홀로 된 섬이 아니다. 아니 적어도, 인간은 홀로 된 섬으로 있는 게 최상은 아니다. - P296
아주 심플한 거야, 그는 생각한다. 마야, 그는 말하고 싶다, 이젠 다 알아. 하지만 그의 두뇌가 말을 듣지 않는다. 마땅한 말을 못 찾으면 빌려 쓰는 거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내 인생은 이 책들 안에 있어, 그는 마야에게 말하고 싶다. 이 책들을 읽으면 내 마음을 알 거야. 우리는 딱 장편소설은 아니야. 그가 찾고 있는 비유에 거의 다가간 것 같다. 우리는 딱 단편소설은 아니야. 그러고 보니 그의 인생이 그 말과 가장 가까운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단편집이야. 수록된 작품 하나하나가 다 완벽한 단편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만큼 읽었다. 성공작이 있으면 실패작도 있다. 운이 좋으면 뛰어난 작품도 하나쯤 있겠지. 결국 사람들은 그 뛰어난 것들만 겨우 기억할 뿐이고, 그 기억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맞아, 별로 오래가지 않아. - P301
죽는 건 겁나지 않아,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내 지금 상태는 약간 두려워. 날마다 내 존재는 조금씩 줄어들어. 오늘의 나는 말이 결여된 생각이지. 내일의 나는 생각이 결여된 몸뚱이가 될 거야. 그렇게 되는 거지. 하지만 마야, 지금 네가 여기 있으니 나도 여기 있는 게 기뻐. 책과 말이 없어도 말이야. 내 정신이 없어도. 대체 이걸 어떻게 말하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 "마야,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바로 우리야.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우리다." - P303
"우리는 우리가 수집하고, 습득하고, 읽은 것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 있는 한, 그저 사랑이야.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진정 계속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해." 마야는 여전히 고개를 흔들고 있다. "못 알아듣겠어요, 아빠.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에이미를 불러다 드려요? 아니면 타이핑으로 시도해 볼까요?" 그는 땀을 흘리고 있다. 대화가 이제는 즐거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그렇게나 쉬웠는데. 좋아, 그는 생각한다. 한 단어가 돼야 한다면 한 단어로 하지 뭐. "사랑?" 그는 말했다. 제대로 발화됐기를 빈다. 마야는 눈썹을 찡그리고 그의 표정을 읽으려 애썼다. "장갑?" 마야가 물었다. "손 시려요, 아빠?"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야는 아버지의 두 손에 자기 손을 포갰다. 차갑던 그의 손이 이제 따뜻해지고, 그는 오늘은 이걸로 할 만큼 했다고 판단한다. 내일은, 어쩌면, 말을 찾아낼지도. - P303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이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의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 P308
"당신 진짜로 하고 싶은 거 확실해? 우리가 뭐 한창 청춘도 아니고." 이즈메이가 말했다. "겨울 없는 곳은 어쩌고? 플로리다 말야." "늙어서 가면 되지. 아직 그 정도로 늙진 않았어." 램비에이스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난 평생을 앨리스에서 살았어. 내가 아는 유일한 곳이지. 좋은 동네고, 이곳을 쭉 그렇게 살리고 싶어. 서점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잖아, 이즈메이." - P310
나는 진심으로 아일랜드 서점을 사랑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고, 종교도 없다. 하지만 내게 이 서점은 이승에서 교회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이곳은 신성한 곳이다. 이런 서점들이 있는 한, 출판업은 오래도록 이어져갈 거라고 확언한다. ―어밀리아 로먼.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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