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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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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을 걸었다. 작가, 연주가, 화가 예술가로 통칭되는 그들이 살아온 흔적들을 따라 걸어본 유럽의 땅.  알고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유럽의 땅. 특정한 장소에 스며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사상과 상념들을 엿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이름을 딴 박물관과 도시들을 탐닉하며, 역사는 현재에도 실존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태초에 모든 것들에정해진 것은 없었다. 나무 한 그루가 그곳에 있는 이유 혹은 특정 건물이 그곳에 지어진 이유가 모두 어떤 보이지 않는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었다.

 

 

 

 

예술성이 풍부했던 이들에게 보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사물이 그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낮은 차원의 시점에서 벗어나 환상과 상상속의 인물들 혹은 풍경들을 그 위에 덧칠하여 표현해 내는 방법들에 따라 음악이 되고 미술이 되고 글이 될 수 있었으리라. 영감이라는 것은 사소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기에 사소하지 않다. 비범한 사람들에게만 보일 것 같은 그러한 능력들로 만들어낸 작품들을 보며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상상을 할 때면 묘한 쾌락감과 특별함이 느껴진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배경이 된 실제 장소가 내 상상과 비슷할 때처럼.

 

 

 

 

그들이 남겨놓고 간 잔여물들과 묘지에 새겨진 글자를 보면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실체는 아니지만 그들의 영혼이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 영혼의 기운과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그들이 머물렀던 곳에 서성거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말이 없지만 그곳에 있었으니까.

 

 

 

 

한때는 역사가 가진 것이 온통 상처와 아픔 따위뿐인 것인가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전쟁, 투쟁, 혁명, 진화, 개혁 등 살을 맞대고 생생하게 이뤄낸 것들도 있지만 이들처럼 아름답게 싸울 수도 있다는 점을 배운 것 같다. 그들은 어디 즈음 있을까?

 

 

 

 

 

 

 

 

 

 

 

 

 

황현산 선생의 산문 중에 바닥에 깔려 있는 시간 이란 글이 있다. 섬마을 모래밭에 누워 빙글빙글 돌아가는 별을 보며 모래라는 거대한 손에 흔들렸던 기억과 군대 구보대에서 본의 아니게 이탈해 숲에 아픈 몸을 누이다 나뭇잎 갉아먹는 벌레 소리에 평화로움을 느끼며 숲이라는 비단 그물에 걸린 자신을 떠올리는 내용이다. 그처럼 수많은 묘지들에 걸어두고 다닌 내 마음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빗방울로 신호를 보내는 것인가 문득 반가울 때가 있다. 그리고 자연과의 합일을 체험한 선생의 고백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헛된 시도로 가득 찬 인생이 그럼에도 결국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묘지에서는 종종 하게 된다. -p120-

 

 

 

 

“고용 형태와 경제적 자립도에 따라 이곳도 다 다른 대답이 나올 거예요. 도시에서 일하다 시골로 왔다 해도 확실한 직업을 가지고, 혹은 가치가 제법 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처지라면 더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요. 그래도 빌뉴스나 카우나스 같은 도시에서보다는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며 살게 되니 아무래도 전체적인 만족도는 높지 않을까 생각해요.”

머리를 써서 살던 사람들이 몸을 쓰며 고되게 생활하면서도 이것이야말로 쉬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현장을 보았다. 문제의식의 세계에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더라도 실천적 태도에서는 낙천적인 세계관을 유지해나가는 견고한 사람들을 쉽게 잊을 수 없다. -p219-

 

 

 

 

19세기 러시아 소설에 등장하는 교양 있다 하는 자들의 대화는 죄다 프랑스어로 진행되고, 독일인들조차 “파리에 가보니 낙후된 조국의 현실이 더욱 암담하게 보인다.”고 말하기 일쑤였다고 하니 어쩌면 내가 파리에서 확인해야 할 프랑스적인 것의 실체란 제국의 변방으로부터 몰려든 천재들의 프랑스라는 바탕색에 계속해서 덧입힌 다양한 덧칠들이 아닐까 싶었다. -p238-

 

 

 

 

활기차지만 번잡스럽지 않고 세련미가 넘치지만 화려하다고 말할 수 없는 도시가 오늘날의 베를린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애초에 도시의 관문쯤으로 지어졌던 것이 동, 서로 도시와 나라가 나뉜 마당에는 분단의 상징이되었고 이제 하나가 된 독일에서 통일의 상징이 된 의미심장한 문이다.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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