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겨울이 다가오면 옷장 속에 박아두었던 내복을 꺼내든다. 두꺼운 점퍼를 걸쳐 입고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빼었다 반복한다. 어느 날 필리핀, 라오스, 싱가포르 같이 어디든 따뜻한 나라에 잠깐 머무르다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김남희 작가가 그랬듯. 여름이 오면 겨울이 그립고 겨울이 오면 여름이 그리운 것도 여름과 겨울이 있기에 가능한 그리움이다. 말레이시아에 사는 친구, 서로 프로필 사진으로만 얼굴을 본 사이지만 틈틈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녀는 한 번도 겨울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겨울이 있는 나라에 가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이니?” 라고 묻자 그녀는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 눈을 만지고 싶어.” 라고 말했다.

 

그녀의 그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그녀는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까?

 

 

 

 

 

 

우리를 가리켜 ‘풍운아’ 라는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과거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여행이라는 단어조차 망각하고 살았다. 지금이야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클릭 몇 번으로 먼 타지에 있는 나라 호텔을 예약 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몇 개월 살 수도 있다. 이렇게 여행이라는 것이 젊은이라면 무조건 떠나봐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는 조금 위험하다. 자발적으로 원해서 가는 여행이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여행을 ‘유행’ 으로 인식하여 잘 시간을 줄이고 먹고 싶은 것을 줄여가며 꼬박 모은 돈을 탕진 할 필요는 없다. 여행을 싫어하는 이는 드물 테지만, 그 여행 한 번을 가기위해 누군가는 직장을 관두고 1년 모은 적금을 깨고 휴학을 하는 등의 큰 결심을 한다. 진심으로 그들의 여행이 순탄하기를 바란다.

 

 

 

 

 

겉으로 그들의 삶은 참으로 멋져 보이지만, 앞날을 예측 할 수 없는 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나날들은 마냥 설렘으로 가득차진 않았을 것이다. 1년 내내 여행을 하면 행복할까? 여행을 가는 목적은 결국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에메랄드의 바다와 푸른 하늘과 여러 이색적인 풍경들,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금발머리의 여인들을 보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행자라는 숙명이 행복으로 가득 차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배추를 가득 싣은 트럭을 모는 남자가 땀을 흘리며 배추를 옮기고 낡고 허름한 소매의 옷을 입은 여자는 환하게 웃고 아이들은 배추를 세며 즐거워하고 그런 모습을 본 저자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여행자인 자신은 가질 수도 앞으로 가질 수 없는 것, 가족.

 

 

 

 

오늘 하루도 수차례 해외에 거주하는 상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익숙한 환경에 크게 기대 할 것 없는 내게 저녁 메뉴는 꽤나 소소한 설렘이다. 책상 앞에 마주 앉아 정돈되지 않는 책들을 하나씩 치워가며 또 다른 세계에 앉는다. 몇 번이나 알려줘도 엄마는 리모컨 조작을 잘 못한다. “엄마는 내가 없으면 TV도 못 보겠다.” 그래도 가서 상처를 받을지 치유를 받을지는 느끼고 싶다. 한 번 꽂힌 것들에 대해서는 꼭 해봐야 직성을 풀리는 내게 상상만으로는 목마름이 가시질 않는다. 올 해는 꼭 한 곳을 정해서 가봐야겠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여행.

 

 

 

 

 

 

 

 

 

하나 씨는 한 달 반 정도 우붓에 머물 예정이고 이미 두 달을 머문 수연 씨는 곧 돌아갈 예정이다. 첫 만남이지만 그리 어색하지 않다. 지독히 낯을 가리는 내가 여행지에서는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 우리는 모두 바깥에서는 서로에게 느슨해진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슬쩍 열어버리는 순간, 삶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도 같다. -p69- <Bali>

 

 

 

 

 

여행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여행에서 친구를 사귀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점도 있겠지만 시대가 변하고, 여행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여행은 더 이상 두려움과 긴장을 안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이 아니다. 클릭 몇 번으로 저렴한 항공권을 끊고, 숙소 예약을 마치고, 블로그에서 필요한 정보를 다 얻은 후에 여행을 떠난다. 갈 곳도 정하고, 볼 것도 정하고, 먹을 것도 정해놓고 친구 혹은 연인과 모든 일정을 함께한다. 뜻밖의 만남이나 발견이 찾아올 여백 자체가 사라진 여행. 단 한 번의 사건이나 사고도 없이 안락하게 머물다 돌아오는 여행. 그런 여행이 대세가 된 시대지만 어쩌다 한 번쯤,
‘올드 패션’의 여행을 해본다면 어떨까. 항공권 한 장만 들고 혼자서 용감히 떠나 처음 만난 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온갖 사건 사고를 겪으며 위기 상황을 뚫고 나가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아침을 맞고,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을 해보고, 완전히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져보기. 아드레날린 팡팡 솟구치는 날들을 보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코를 골며 뻗어보는, 그런 여행을 함께 할 누구, 없을까. -p211- <Sri Lanka>

 

 

 

 

새하얀 탑 주변으로 이 탑이 지붕이 있는 건물이었음을 말해주는 오래된 기둥이 서 있는 곳도 있다. 번쩍이며 빛나는 하얀 탑과 짙은 갈색들의 돌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다. 언젠가는 저 흰 탑도 햇빛에 바래고 바람에 닳아 무너질 것이다. 지상에 영원히 거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선택한 이 정처 없는 삶이 가끔식 형벌처럼 느껴질 때, 정주할 수 있는 집 하나가 간절해질 때, 폐허는 내게 말없이 드러낸다. 모든 것의 유한함을 -p222- <Sri Lanka>

 

 

 

 

생각해보면 여행과 책은 서로 닮아 있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일상과 그 일상을 둘러싼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게 가장 온순한 방법으로 자신이 쌓아온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계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치앙마이에 올 때 내 짐 속에는 15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석 달간 내 일상을 채워줄 책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세워 놓고 아무 책이나 집어 든다. 햇살은 창밖의 세계에만 머물고 있어 집은 어둡고 서늘하다. 책 읽기에 좋은 오후다. -p254- <Chiang Mai>

 

 

 

 

 

한 도시도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같다. 생겨나고, 번성하고, 쇠락하기도 한다. 나는 변해가는 어떤 장소의 짧은 순간을 함께할 뿐이다. 여행지가 보여주는 찰나의 얼굴. 그 얼굴이 때로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민낯이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처럼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여행을 하고 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살아가는 이의 제일 큰 덕목은 모든 여행지를 사랑하는 마음일 테니까.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루앙프라방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나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남겨두고 이 도시를 떠난다.

-p394- <Laos>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