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보도 음표도 없는 선율이다.

저물어가는 그리움의 언어이다.

독수리가 지켜보는 나이다.

 

너는 과연 어디로 너 자신을 잃어버리러 갈 수 있지?

 

 

 

 

 

 

 

 

 

 

 

 

 

 

 

 

 

책을 읽을 때 나는 가장 먼저 겉표지 반에 쭉 나열 되어있는 작가의 약식을 본다.

그 중에 혹시 이 사람이 쓴 책 중에 내가 읽은 책이 있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랄까.

그런데 이 책을 쓴 작가의 소개는 매우 간단하다. 1965년 서울 출생. 소설가. 번역가.

이 짤막한 소개가 그녀를 더욱 더 수수께끼로 둘렀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나는 그녀가 처음 가본 알타이, 나 역시도 처음 듣고

글로 통해서 보는 알타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전에는 없었던 알타이의 조각들을 상상의 조각들로 하나씩 채워나갔다.

 

 

 

 

 

 

밤이 되면 화려한 야경 대신 스텝 초원에 떨어진 야크 똥을 주워 불을 피우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음식과 와인 대신 알타이 소녀들이 해주는 밥을 먹고

빠르고 편안한 기차나 버스보다 덜거덕거리는 생생한 말을 타고 달리는 65년 서울 출생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그녀. 배수아.

그녀가 알타이에 간 이유는 그녀의 소개만큼이나 간단하다. 어떤 이가 그 이유를 들었다면 “정말 미친 짓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그녀의 주위사람들도 그녀를 말렸으니 말이다.

 

 

 

 

 

그녀는 투바어를 쓰는 갈잔이라는 작가가 독일어로 쓴 책 한 권에 반해 알타이 행을 결정하게 된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몇 시간 비행기를 타면 알타이가 있다.

책 속에 나오는 모든 사진이 흑백사진이다. 그녀가 색채보다 흑백을 택한 이유는

자연을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낼 색이 흑과 백이 아닐까 혼자 으레 짐짓해 보았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갈잔을 보기위해 알타이에 온 이들에 대한 묘사와 그들과 함께 나눈 대화 그리고 몇 날 며칠인지도 모른 채 그저 흘러가는 구름처럼 알타이에서 지낸 생활과 그녀의 생각과 느낌. 나는 이것이 여행인지 단순한 도피인지 혹은 둘 다 해당 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남들이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렇다고 도피라고 하기엔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결심이기에
무어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결국, 그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들’ 을 했고 이루어냈다.

비록 그녀 스스로 부족했고 아쉬웠다고 했지만.

 

 

 

 

 

 

 

 

 

 

 

내 블로그 여행 카테고리에 보면 ‘나를 찾아가는 여행’ 이라 큰 제목을 적어 놓고 하위 항목을 분류 해 놓았다.

나는 여행이란 나 자신을 찾으러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녀 온 알타이는 나와 대조되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잃어버리러 알타이로 떠난 것이다. 검은 아일 호수, 독수리가 한 마리가 선회하는 광활한 하늘,
사체가 묻혀도 보이지 않을 황막한 사막 곳곳에 그녀의 자신을 두고 온 여행.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영화 <Begin Again> OST로 한 창 화제가 되었던 Adam Livine - Lost Stars 이 떠올랐다.

특히, Are we all lost stars?(우리는 잃어버린 별들인가요?) 라는 가사가 이 책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알타이 초원에서는 MP3, 컴퓨터, 근사한 옷, 휴대폰 이런 것들이 모두 무의미 했다.

그들에게는 몇 마력을 자랑하는 스포츠카보다 말 한 마리가 그들에게 더 유용하다.

구멍 난 옷을 몇 번이나 입고 불을 피우려면 야크 똥을 모아야 한다.

현대사회와는 동 떨어진 원시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지켜온 전통과 문화들이 짧은 시간에 ‘체험’ 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변두리의 삶을 벗어나 도시 중심가에 돌아갔을 때 그런 곳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 침묵 속에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것, 바로 하루 전까지만 해도 알타이의 원시적인 자연 속에서 충만해져 있었던 우리의 기분을 잿빛 현실로 돌려놓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감탄했던 유목민의 삶과 이 도시 변두리의 삶 사이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를 문득 깨닫게 하는 싸늘하고 무서운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가난에 대한 생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들에게 옷이란 예의나 외모의 치장,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p210-

 

 

왜 나는 구멍이 있는 옷은 흉하게 보이는 것이고 구멍 모양의 장식이나 무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 나에게 가장 최초로 그런 계율을 주입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나의 정신은 이렇듯 오직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만 구성되어있는데, 나 자신은 지금껏 그 사실을 모르면서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인지. -p211- (중략)

 

 

 

 

 

한 번 굳은 결심은 주변의 상황은 우선순위 밖으로 내몰리고, 오로지 이루어내겠다는 해보겠다는 행동과 추진력. 그것이 때로는 사람을 도전과 기회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독인지 득인지 따질 겨를도 없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그녀가 자주 쓰는 표현처럼 기묘한 그 느낌이 그녀를 알타이로 이끌었다라고 는 하는 수밖에 이 정의 할 수 없는 여행을 설명할 수가 없다.

혹시 이 책을 읽고 무작정 배수아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에 앞으로 반복해서 등장하게 될 여행이란 단어는 길이나 지도, 낯선 나라, 인상 깊고 아름다운 풍광, 새로운 문물, 혹은 새로운 자신, 두근거림이나 자유, 혹은 모험이나 떠남, 대개는 돈을 지불함으로써 현대인이 얻게 되는 어떤 종류의 비일상적 체험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마도 단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적인 꿈, 고통의 또다른 이름으로서의 꿈, 혹은 정체불명의 그리움, 슬픔과 체념으로 가득찬 발자국, 혹은 그러한 감정의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은밀하고도 슬픈 몽환과 동의어에 불과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얼굴들로 이루어진 나의 또 다른 장소로 향하는 여행이자 동시에 한때 나의 육신을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돌과 쇠를 찾아가는 여행.

-p12-

 

 

 

 

 

나는 거기서,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바로 오른쪽에서, 내 이름이 똑똑히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키 큰 몽골 남자를 발견했다. 그가 들고 있는 내 이름은, 내게서 시작된 이 비현실의 몽롱한 여행이 세계의 어떤 측면에서는 낯선 이들에 의해서 실제로, 그야말로 실제로 진행이 되고 있었구나 하는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내 이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그가 들고 있는 종이 위에. -p33-

 

 

 

 

 

나는 냄새로 하나의 나라를 묘사할 수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방문한 도시들이 상당 부분 냄새로 이루어져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거주자들의 몸과 의복, 심지어 표정과 태도에서 풍기는 그 도시 특유의 냄새들. -p49-

 

 

 

 

 

나는 집안에서의 고독에 익숙하고 늘 그것을 사랑하며 야외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알타이에서는 좀 달랐다. 유르테 밖을 나오면 항상 어떤 눈길이 있어, 그것이 나를 지켜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나는 그 눈길을 사랑하게 되었다. 파울은 그것을 알타이 산의 정령이라고 불렀다. -p92-

 

 

 

 

 

평범하게 보이는 산등성을 넘었거나 언덕을 지났을 뿐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짐작하지 못한 의외의 세계와 조우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한낮의 전설이나, 잠 없이 마주친 꿈처럼 보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과연 내가 그것을 보았던 것이 맞을까 스스로 의아하게 생각되는 비현실적인 풍경. 누군가 그날 꿈속에서 그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검은 호수에 사는 유일한 물고기로 변했으리라. -p101-

 

 

 

 

 

여기서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이 도대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사실상 알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그건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 -p139-

 

 

 

 

 

 

누명을 쓴 공주 엘지는 꿈속에서 만난 신비한 기사 <로엥그린>이 실제로 나타나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줄 것을 믿고 있다.

 

 

 

“꿈속에서 본 그이가 이제 옵니다. 그는 나를 위해서 싸워줄 거예요!”

마리아는 <로엥그린>이 공연되는 내내 고개를 앞으로 고정시킨 채 꼼짝도 않고 무대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 그녀는 말했다.

 

 

 

“나는 <로엥그린>을 기다리는 엘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나는 거의 엘자야.”

그때 나는 생각했다. 마리아, 너는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열렬한

그리움의 열광자이다. 그리움만으로 너는 거의, 알타이에 있다. -p220-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