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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노 요코라는 사람은 나에게 작년까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작년부터 정말 읽어보고 싶은 책의 작가다. 책 내용은 일절 모르지만 '사는 게 뭐라고'와 '죽는 게 뭐라고'라는 말을 책의 제목으로 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내용이 비록 내 마음과 맞지 않아도 일단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던지 당최 도서관에서 빌릴 수가 없었다. 그래, 내가 알면 보통 남들도 다 알더라.
그러던 차에 무려 신간,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가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이 집으로 배송되어 왔다.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하는 중에 이렇게 반색하고 좋아한 건 처음이야! 배송 온 첫 날부터 읽기 시작한 것도 처음인 듯 하다. 앗싸리 다 읽었지! 잊기 전에 얼른 리뷰도 써야지! 하고 쓴다.
고작 작년에 소개되었는데 벌써 이렇게 인기가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좋았던 구절에 표시해 두었다가 리뷰에 남겨두고 있다. 혹여나 읽는 분들이 있다면 같이 원문을 읽어보시길 하는 마음이 하나, 나중에 내가 다시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나. 그런데 이 책은 한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 아니라! 한 단원 전체를 표시해놓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누군가가 '윤여정씨가 쓴 책 같지 않아?'하는데 오오. 정말이지 그랬다. 예전에 윤여정 배우께서 힐링캠프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매력적이시던지. 딱 그렇다. 시크하고 툴툴거리신 것 같은데 세련된 인간미가 배어나와서 볼매 of 볼매다. 어쩐지 일본의 또다른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윤여정style'에 빠져 있어서 그랬는지 이 책을 집필할 때 작가의 나이가 무려 40대였다는 사실을 알고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이구, 몇 년을 제가 올려놓은 건가요! 내가 이렇게도 작가의 나이를 높게 생각했던 것은 그만큼 연륜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책 말미의 옮긴이의 말이 이번엔 정말 내 마음 같았다.
수필의 기본적인 덕목은 달리 표현하면 꾸밈과 대비되는 '솔직함'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 쌓인 것들을 '사실대로' 뱉어 냈다는 것만으로
독자의 마음에 깊은 공감과 감동을 끌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표피적인 솔직함은 단지 가십거리를 더해 줄 뿐이다.
솔직함이 읽는 이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오는 것은 깊이가 있을 때이다.
그 깊이란 다른 무엇보다도 인생의 깊이, 그리고 깊이를 꿰뚫는 통찰력의 깊이일 것이다.
사노 요코는 가벼운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가볍지 않다. 이런 언니가 내 곁에 있어서 서로 한없이 기대고, 또 깔깔거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아아. 당신은 왜 나와 다른 세대를 사셨나요? 뭐가 그리 급해서 벌써 가버리셨나요? 일본에 계셨더라면 저는 무작정 당신의 동네로 가서 당신을 발견하곤 '나는 당신을 아아아아주 좋아합니다'라고 당신 얼굴 앞에서 외치고 싶어요(당신이 좋아할 지는 알 수 없군요. 어쩌면 당신은 수필에 '나는 이상한 한국 여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여자는 다짜고짜 내 앞에서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면서 쓰실지도 모르겠네요).
박연준/장석주 작가가 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중에서 '와인 한 병이 누워있다'는 단원이 정말 좋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가끔 그 에피소드가 문득 생각나는데, 따뜻하면서 어쩐지 귀여워서 나의 남편도 그랬으면 싶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문득 생각할 이야기가 한 단원으로 끝나지가 않는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인류여, 인테리어 잡지를 산 날, 유화 물감, 이게 인생이야'는 소단원(자꾸 챕터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만 국어를 써야지)인데 각각을 전부 베끼고 싶다! 그런가하면 '1만 번 회전하는 세탁기'는 대단원 전체를 베끼고 싶다. 이걸 뭐 어찌할 수가 없다. 사실 뒷부분은 표시하기도 지쳐서 남겨둔 것도 있다.
욕심을 버리고 딱 한 군데, 내가 만약 이 책의 내용을 잊었는데 다시 읽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할 때 내가 다시 읽기를 바라는 부분을 써 놓고 마치려고 한다.
아이가 세 살 때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는데, 조용해서 돌아보니
아이가 코딱지를 파서 그걸로 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셋슈(중세 시대의 그림에 뛰어났던 중)를 뛰어넘는 그림쟁이가 될까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은 없다.
어쨌든 나는 그때 아이를 보고 인간은 뭐든 있는 것으로 그림을 그리면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저기요, 남의 아이가 아니구요. 작가님 아들이란 말이예요. 하나밖에 없는. 코딱지 얘기 해도 괜찮은 거예요? 이 매력 넘치는 사람같으니.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