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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레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혁명은 혁명이 원할 때 스스로 다가오는 것이지, 누군가 원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요.

 

  소련이 무너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모른다. 내가 글자를 배울 즈음 러시아를 소련이라 부르는 것은 이미 틀린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소련은 러시아와 같은 단어였지만, 러시아를 잘못 쓴 단어이기도 했다.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말인데 이제 그렇게 안써. 음, 그렇구나. 그 말 한 마디면 충분했던 어떤 나라에 대한 이야기.

 

   1917년 러시아는 차르의 시대를 끝내고 공산주의가 시작된다. 긴 공산주의를 지나 20세기 후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있었고, 3일간의 쿠테타가 일어났다. 옐친을 끝으로 이제 우리가 아는 푸틴이 나온다. 외부자의 눈에는 이렇게나 간결하게 정리되는 한 나라의 100년이 국민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지독히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책이다.

 

  공산주의자는 뿔달린 사람들인 줄 알았다는 믿지 못할 옛날 이야기를 이 21세기에 우리 엄마가 했다. 정말 그랬다니까. 그렇게 배웠다고. 공산주의가 절대 악(惡)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모두 알고 있다. 그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도 그냥 사람들이었다는 것 또한 안다. 그럼에도 그 사회에서 믿지 못할 일들이 일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제 말은요, 화학적으로 순수한 절대 악은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악에는 스탈린과 베리야만 속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옆집 유라 아저씨, 예뻤던 올랴 누나도 속해있었으니까요.

 

  자식이 부모를, 친척을, 매일 보는 회사 동료를 신고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있었다. 회사 동료가 신고해 몇 년을 감옥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와 그 신고자와 같이 다시 같은 직장 같은 자리에서 일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경악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그 많은 신고자들과 공산당원들이 지금 여기서 나와 같이 살았더라면 아마 평범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이들이 특별한 이들이 아닌 것 같아서, 이러한 처지에 내가 처하게 되면 내가 어떻게 변할 지 나도 잘 모르겠어서. 그들이 가진 생각과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해가 가버려서 무서웠다. 비인간적인 일들은 분명 일어났는데 그 안에는 인간들밖에 없었다는게 내 세상을 뒤흔들었다.

 

 

  제 아들은 절대로 저나 제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소련에서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와 제 아들 그리고 제 어머니는 모두 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어요. 그 나라들이 모두 러시아라고 불리는데도 말이죠. 단, 우리는 기괴하게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기괴하게요! 게다가 모두가 기만당했다고 느끼며 살아요.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나이기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며 우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통일이 되면 남북한 사람들이 섞이면서 이와 같은 진통을 분명히 겪을 것이다. 이미 북한에 돈주라는 신흥 세력이 있고 시장은 너무나 일상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공산주의를 아직 믿는 사람들이 분명히 많을텐데. 그들에게 이 남한이라는 사회는 꿈과 희망만을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이해해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섞이면서 나올 혼란 속에서 본인이 승자라고 생각하는 이가 누가 될 지 또한 뻔한 것만 같아서 슬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돈이 최고가 될 테니까.

 

 

  전 지금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왜 그 시절에는 그렇게 이상주의자들이 많았을까라는 점이에요. 그렇게 많았던 그들이 지금은 모두 씨가 말랐잖아요. 펩시콜라 세대에게 이상주의가 가당키나 합니까? 이젠 실리주의자들의 시대예요.

 

  고통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공산주의 사회는 끔찍한 것만 같고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회지만,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 공산주의 속에서 일상은 더 괴롭고 가난했을지 몰라도 그들은 분명 역사를 세워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난을 위로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가난한 노인을 외면하는 시대. 예전과 똑같이 가난한데 희망조차 없는 시대. 어쩌면 가난한 누군가에게는 공산주의 사회가 강력한 위로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보다 훨씬 좋을지 모른다. 비단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이 지구상의 모든 곳의 누군가에게.

 

 

  무서움 때문에 사람들은 성당을 찾기 시작했어요.

제가 공산주의를 믿고 있었을 때는 성당 같은 건 필요 없었어요.

 

  공산주의 사회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상을 무시한 채 큰 어떤 것만을 따라가다보면 정작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놓치는 법이다. 공산주의는 작은 것들을 너무나 많이 무시했기에 무너진 것이 아닐까. 일상의 작은 것을 버리고 이상을 따라가도록 만드는 것은 마치 종교와 비슷하다. 누군가에게는 사상이,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누군가에게는 돈이 위로를 한다.

 

  실리를 추구하는 성공한 사람들은 그럼 행복할까? 자본주의 시대에 잘 적응했다고 해서 한없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진정한 사랑을 어마어마한 돈을 가진 사람은 얻지 못한다. 그들은 급기야 감옥에 가는 체험을 돈을 주고 산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 자신이 가진 것을 감사하기 위해서.

 

  외로움은 행복과 매우 닮았어요.

 

  그 행복이라는 것은 실로 자본주의적인 행복만을 일컫는 것이니 그 끝에는 외로움밖에 없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을. 그래서 자본주의 또한 공산주의만큼이나 잔인하고 무정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작고 작은 한 명의 사람으로써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큰 사회와, 그 사회를 움직이는 힘과, 그 힘을 만들어 내면서도 또한 힘을 전부 조종할 수는 없는 개인들과, 그리고 언젠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을 나를 생각한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다. 나는 겁을 엄청나게 먹었다. 2016년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아이고, 내 작은 새야." 딱 그 한 마디에 희망을 건다. 사상이 아닌 아무 것도 계산하지 않은 인간의 작은 본성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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