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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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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2016년 한국의 트렌드를 정리한 책의 간략한 소개에 따르면 여행 관련 서적 중 여행 가이드북의 인기는 줄고 여행 에세이의 인기는 늘어났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인이 획일화된 여행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나의 '취향'으로 받아들이고, 그 취향에 맞는 여행을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날부터 여행 가이드북보다는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은 나에게는 정말 와 닿는 문장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내가 여행을 간 양 몰입해서 읽었다.

 

  하지만 언제가부터는 그 여행 에세이마저 그리 많이 읽지 않게 되었다. 하나는 가고 싶은 장소에 대해 미리 써 놓은 글을 보고 내가 그곳에 가서는 그와 비슷한 감상을 느끼려 애쓰고 꾸미려는 시도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기분을 느끼고 싶은 거지 누군가의 기분 짝퉁을 느끼고 싶진 않아! 또 하나는 작가들의 감상이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막상 가면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지 천국이 아닌 것을, 뭐가 그리 좋고 낭만적이고 새로운 세계가 있고 천국같은가. 글을 쓸 당시 작가의 기분이 그러 했을지 일부러 더 과장되게 썼을지 내가 알 수 있는 바는 아니지만 어쨌건 그 감상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 에세이를 보면 자꾸 반감이 들더라고. 호불호 판단을 내가 하고 싶어 여행에세이를 멀리한 것이니, 확실히 취향을 소비하기 위해 읽는다는 말이 맞기는 맞다.

 

  이 책은 (작가 본인이 책 앞부분에 밝히고 있듯) 작가가 얼마나 알타이에 푹 빠져서 썼는지 너무 진해서 씁쓸할 정도였다. 알타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사랑의 감정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 쓰여진 글은 척박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 분명한 알타이를 동경의 장소로 바꾸어 놓았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 알타이에 가고 싶다고 날뛰었을 것도 같다. 서구화된 문명이 온 지구를 잠식해 가는 이 때에, 인터넷 검색을 해도 지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 작가가 방문한 첫 한국인인 그런 미지의 세계. 순박한 사람들, 장삿속에 때묻지 않은 현지인들, 광활한 자연, 문명화되지 않아 편리함은 없지만 가장 기초적인 것에 집중하게 해 주는 세상.

 

  그러나 나를 문득 알타이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부분은 알타이의 자연 환경이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침대에서 자던 차림 그대로 밖으로 나와 세수만 하면 그 모습 그대로 그날을 시작할 수 있다는 부분, 그 부분에 마음이 요동쳤다. 얼굴에 온갖 선을 그리고 색을 칠하며 새로운 내 얼굴을 만든다(그 과정을 상당히 좋아하기도 한다). 매일을 그러다가도 나를 감추는 것에 지치는 순간이 있다. 모든 화장을 지워낸 내 얼굴이 낯설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어느게 진짜 내 모습인지, 사실 답은 뻔한데도 혼동을 느끼는 이 상황이 힘에 겹다. 그런 모든 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라니, 그것 만으로도 너는 정말 사랑스러운 곳이구나.

 

  갈잔은 다음 세대에 자신의 부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순박한 사람들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라지지도 않길 바란다. 점점 삭막해져만 가는 이 지구 한가운데에 이런 곳 한 곳 쯤은 남아있어야 하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나이키도 코카콜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지구는 영원히 신비로웠으면 좋겠고, 그 신비의 영역 안에 인간도 포함되어 있었으면 좋겠고, 그 인간이라 함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내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을 알고 삶을 알고 그 안의 조화를 아는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확실히 몇 년 전에 비하면 자연을 좋아하게 되었긴 하지만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어딘가 방문하는 행동은 아직 하지 않는다. 2년 전 스위스에 가서 정말 말 그대로 그림같은 풍경을 보며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생각했지만 그 자연과 내가 하나되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예쁜 그림에 한 점 얼룩같은 기분은 들었지만). 하지만 이 끝없을 알타이에 가면 나는 내 자신을 풍화되어버릴 자연으로 느낄 수 있을까. 내 자신을 조금은 놓을 수 있을까.

 

  자신이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으로 보일 만큼 알타이에 빠져들었다는 작가의 감상에 함께 빠지고 싶지 않아서 무진 애를 썼다. 알타이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나는 결국 나를, 이 삭막한 도시를, 무감각한 일상을 놓을 수 없다.  훨훨 날 수 있다면 한 번 날아갔다 오는 것도 괜찮을거다. 지금은 그냥 그곳이 부러웠다고만 하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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