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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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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책을 읽었다. 읽고 싶어서 읽은 것은 아니었다. 전투적인 광고를 보았고, 어느 순간부터 서점에서 전투적인 광고를 하는 책은 의심의 마음이 먼저 들었고, 지난번 이분의 책을 읽었을 때 술술 넘어갔던 것도 아니었던지라, 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내 손에 왔다. 읽었더니, 나의 얕음이 부끄러웠다. 글을 쓰고 싶은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해왔다.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말인지도 모르고, 감히 나는 쓸 것이 없다고 떠들었구나. 감히.

 

  내가 이 책을 지금 읽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나는 이 책에 수록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와 '밥벌이의 지겨움'을 몇 년 전에 읽었다. 부끄럽지만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읽은 오늘 그 생각이 부끄럽다. 김훈 작가의 글을 이해하기엔 그 때의 내가 너무 어렸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 몇 년 사이 그런 나를 부끄러워 할 줄만 알게 되기라도 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다.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나 술술 읽히지 않아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그저 내가 아직 이 책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모자라다는 말의 다른 말일 뿐이다. 평발을 내미는 아들에게, 국가를 외치는 자들보다 더 자랑스러운 육군 병장이 되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알려면 한 50대는 되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 이후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려면 60대도 되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언제든 지금은 아니다.

 

  세상을 더 잘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좀 더 알 수 있다면. 좁은 내 시야를, 얕은 내 생각을 넓힐 수 있다면 좋겠다. 수박과, 연어 떼와, 사고와, 바다와, 물고기에 대해서 모두 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최근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말했다. 죽으면 깔끔하게 이 구질하고 지겨운 생(生)이 끝날텐데, 뭐가 무서워? 얼마나 산뜻해.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는 작가를 글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거만한 소리를 했는지 알았다. 죽음은 모두에게 다가오지만 한없이 개별적인, 나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것. 이제까지 내가 제대로 감당해 낸게 뭐가 있기나 한지. 나는 그 무게를 견딜만한 것이 아니라 무게가 얼마인지 몰라 날뛰는 하룻강아지일 뿐인 것이다. 죽음의 무게를 알 정도로 나는 오래 살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것이 어른들이 말하는 젊은이의 치기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 썼을지 섬뜩하리만큼 잘 쓴 문장들이다. 글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블로그네 책이네 많이 읽고 돌아다녔지만 김훈 작가의 글을 읽으니 정신이 번쩍 한다. 재능이겠거니, 하고 말하기도 어렵다. 작가의 글은 나에게 대장장이가 수없이 연마해 마침내 완성해낸 철기구 같다. 번뜩이는 칼이 아니라 호미같은 글. 글이라는 것은 나열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야. 지금 내 말이 나열되고 있는 것도 부끄럽다. 꼼꼼히 곱씹으며 다시 읽을 참이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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