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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우리 게이들은 이 세상 모든 게이들이 딱 하루만이라도 다 파란색으로 보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지.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 왜요?
- 그럼 이성애자들이 자기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게이가 없다고 착각하지 않을 거 아냐. 그동안 쭉 게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왔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냈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세상에 게이 경찰, 게이 농부, 게이 교사, 게이 군인, 게이 부모, 게이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게 될 거야. 우리도 드디어 숨어 살 필요가 없게 되고. <앰 아이 블루 中에서>
인용하는 김에 하나만 더 하자.
한겨레21 최근호 시사 넌센스 꼭지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세상에는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적지 않다. 죽음의 이유도 그렇다. 얼마 전 중년 사나이가 숨졌다. 부인과 아들·딸은 6년째 미국에 살고 있었다. 언론은 그에게 ‘기러기 아빠’의 이름을 붙였다. 게다가 그는 원룸에서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됐으니 서글픈 드라마는 완성된다. 정말 그럴까? 그의 이름은 정말 기러기 아빠일까? 기사의 구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ㄱ씨는 평소에도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도 하루에 두 갑 이상 피웠으며, 두 달 전부터는 고혈압 약을 복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죽음은 고혈압 환자의 죽음, ‘골초’의 죽음일 수도 있다. 혹은 알코올중독이 주요 원인일 수도. 사무실 동료는 “저녁식사 대신 막걸리 등으로 속을 채우는 것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단다. 사회는 중요시하는 가치의 위계에 따라 사람의 죽음을 해석한다. 한국에서 청소년의 죽음은 학생 신분으로, 어른의 죽음은 가족의 틀로 해석된다. 이처럼 죽음의 해석에는 성적지상주의와 가족주의가 뒤집혀 투영돼 있다. 아이들은 성적이 아니면 자살할 이유가 없다, 어른은 가정사에 대한 고민으로 죽는다. 이런 고정관념이다. 여고생 두 명이 손을 잡고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성적 비관’만 생각하지, ‘성적 정체성 비관’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의 비명은 제 울림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넌센스다.
소설 <앰 아이 블루?>는 동성애에 관한 단편소설 13편으로 엮여 있다.
그것도 십대 청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생각하고 엮었단다.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니...
그것도 십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엮은 거라니...
동성애를 거의 변태 취급하는 대한민국에서 이 책이 얼마나 호응을 얻게 될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이걸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정말 감동적인 책이었다.
책갈피를 꽂아놓고 계속 읽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드는 작품도 여럿이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도 분명하니, 혹시나 작품성은 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나의 우려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서서히 깨져갔다.
결코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아님에도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취급당하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슬프고, 그래서 아름답다, 고 생각한다, 나는.
동성애의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과,
동성애의 아버지를 둔 자녀의 마음.
차마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그러나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들의 '성적 정체성'은,
가장 가까워야 할 사이인 부모자식간에 마저도,
너무도 쌩뚱맞다.
생각해 보시라.
- 아버지, 나 게이에요.
정말 쌩뚱맞다.
하지만, 그 쌩뚱맞음 뒤에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딸의 정체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고,
커밍아웃을 하고 동성과 사랑을 가꾸어가는 아버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아들의 애정어린 흐느낌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름답다, 고 나는, 생각한다.
- 난 이성이 좋지만, 동성을 좋아하는 네 사랑도 인정해.
아름다운 말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는 건, 정말이지, 아름다운 일이다.
이 책의 표지는 파랗다.
그리고 이 책의 무게는, 가볍다.
무겁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주제의 내용을,
재생용지의 가벼움으로 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동성애'라는 단어를,
이 책 재생용지의 가벼움만큼이나 가볍게, 산뜻하게 받아들여 달라는,
저자들의 부탁 같다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