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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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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는 사람들이랑 하는 회식따위 가기 싫다고,
밥만 먹고 후딱 일어나야지 어쩌고 하며 구시렁거려놓고.
막창에 소맥 첫잔을 들이켜는 순간 냉철함은 어디로...
그 싫은 사람들이랑 새벽까지 필름 끊기게 마시고는
아침에 이불킥을 한 날- (이런 내가 싫다ㅠㅠ)
책 <아무튼, 술>이 배송되었다.

당장 읽고 싶었지만 참았다. 왜냐.
자칭 타칭 술꾼으로서
이 책을 제대로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여유로운 순간,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놓고 책장을 펼쳐야지.
이를 테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술을
종류별로 빈틈없이 대기시키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유쾌하면서도 슬픈 음악을 틀고.
옆에 드로잉북과 파레트를 세팅해 두고.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잘 만든 후,
드디어 책을 펼친 것이다.

킥킥대다가 울컥하다가 한다.
왜 다들 ‘전철에서 읽지 말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말 재밌다.
특히 술꾼들이 읽는다면,
저자의 글이 한 자 한 자
- 마치 첫잔의 소맥이 청량한 단맛으로 목구멍을 간질이듯
자신의 마음에 스을 흘러들어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이해돼. 나도 그런 적 있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음주와 관련한 수많은 흑역사와
폭음 다음 날만 간신히 유지되는 부질없는 절주 다짐과
나의 밖혼술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과
‘취기’로 ‘치기’를 부려보았던 소심한 용기와
내가 나를 혐오하게 되는 순간들과
그럼에도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온전히 떠올리며
이 책은 정말 더할나위없이 좋은 ‘술 안주’이자 ‘술 친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남은 삶 동안 절대 술을 끊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내일의 숙취를 기꺼이 받아들여 보겠다.
그리고 오래도록 술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몸도 좀 챙겨야지.(과연?)

이 책을 ‘아무튼’ 시리즈 칸에 꽂겠다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 책은 미깡 님의 만화 ‘술꾼 도시 처녀들’과
권여선 님의 안주 산문집 ‘오늘 뭐 먹지?’와 함께 꽂혀야 한다.
술꾼들을 위한 책으로-
내가 만약 책방 주인이라면 요렇게 특별 코너를 만들 것이다.

“술을 말도 안 되게 좋아해서 이 책을 쓰게 됐고, 이 책을 쓰게 돼서 말도 안 되게 기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세상에서, 다음 스텝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하고 막막할 때에 일단 다 모르겠고, ‘아무튼, 술!’이라는 명료한 답 하나라도 가지고 있어 다행이다.”
- 이 책의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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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문학도의 눈에 비친 동시대의 문인들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최현배, 허웅, 문익환,
박태준, 이상, 김동환,
김동인, 김동리, 유진오, 정비석,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백석과 임화...
설렌다.
멋진 청년 시인 윤동주를 따라,
일제시대의 경성과 북간도를 여행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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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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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고 슬프지만 그래도 절망적이진 않다.
이 책의 감동은 에필로그에서 빛을 낸다.
쌍용 해고자 스물여섯 명을 인터뷰한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스물여섯 명을 인터뷰했지만 이 글을 마친 지금 더 많은 사람이 궁금하다.

모터쇼 차량을 정비할 때 정비소를 빌려준 사장님은 왜 그랬을까? 그날 다른 차는 정비하지 않았을까? 그는 영업손실을 감수했을까?

대한문 분향소에 있던 노동자들을 위해 집밥을 해서 나른 사람들은? 대한문 앞에서 같이 잠을 잔 사람들은? 비를 같이 맞은 사람들은?

설날 철탑 밑에 따뜻한 음식을 두고 간 사람은 그 음식을 쌀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식지 않게 하려고 안고 왔을까?

김밥을 사 먹는, 쌍용차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은 김밥을 사려고 지갑을 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반가웠을까? 어색했을까? 김밥을 먹을 때 목이 메기도 했을까?

노란 봉투에 4만 7천 원을 넣은 사람들은? 그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여유 있는 돈이었을까? 무엇이 마음을 움직였을까? 무엇을 믿었을까?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보잘 것 없지만 작은 우리의 연대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믿고 힘을 내게 된다.
내겐 최고의 에필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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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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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게이들은 이 세상 모든 게이들이 딱 하루만이라도 다 파란색으로 보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지.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 왜요?

- 그럼 이성애자들이 자기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게이가 없다고 착각하지 않을 거 아냐. 그동안 쭉 게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왔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냈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세상에 게이 경찰, 게이 농부, 게이 교사, 게이 군인, 게이 부모, 게이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게 될 거야. 우리도 드디어 숨어 살 필요가 없게 되고. <앰 아이 블루 中에서>

인용하는 김에 하나만 더 하자.

한겨레21 최근호 시사 넌센스 꼭지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세상에는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적지 않다. 죽음의 이유도 그렇다. 얼마 전 중년 사나이가 숨졌다. 부인과 아들·딸은 6년째 미국에 살고 있었다. 언론은 그에게 ‘기러기 아빠’의 이름을 붙였다. 게다가 그는 원룸에서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됐으니 서글픈 드라마는 완성된다. 정말 그럴까? 그의 이름은 정말 기러기 아빠일까? 기사의 구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ㄱ씨는 평소에도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도 하루에 두 갑 이상 피웠으며, 두 달 전부터는 고혈압 약을 복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죽음은 고혈압 환자의 죽음, ‘골초’의 죽음일 수도 있다. 혹은 알코올중독이 주요 원인일 수도. 사무실 동료는 “저녁식사 대신 막걸리 등으로 속을 채우는 것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단다. 사회는 중요시하는 가치의 위계에 따라 사람의 죽음을 해석한다. 한국에서 청소년의 죽음은 학생 신분으로, 어른의 죽음은 가족의 틀로 해석된다. 이처럼 죽음의 해석에는 성적지상주의와 가족주의가 뒤집혀 투영돼 있다. 아이들은 성적이 아니면 자살할 이유가 없다, 어른은 가정사에 대한 고민으로 죽는다. 이런 고정관념이다. 여고생 두 명이 손을 잡고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성적 비관’만 생각하지, ‘성적 정체성 비관’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의 비명은 제 울림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넌센스다.

소설 <앰 아이 블루?>는 동성애에 관한 단편소설 13편으로 엮여 있다.

그것도 십대 청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생각하고 엮었단다.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니...

그것도 십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엮은 거라니...

동성애를 거의 변태 취급하는 대한민국에서 이 책이 얼마나 호응을 얻게 될지,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이걸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정말 감동적인 책이었다.

책갈피를 꽂아놓고 계속 읽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드는 작품도 여럿이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도 분명하니, 혹시나 작품성은 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나의 우려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서서히 깨져갔다.

결코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아님에도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취급당하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슬프고, 그래서 아름답다, 고 생각한다, 나는.

동성애의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과,

동성애의 아버지를 둔 자녀의 마음.

차마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그러나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들의 '성적 정체성'은,

가장 가까워야 할 사이인 부모자식간에 마저도,

너무도 쌩뚱맞다.

생각해 보시라.

- 아버지, 나 게이에요.

정말 쌩뚱맞다.

하지만, 그 쌩뚱맞음 뒤에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딸의 정체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고,

커밍아웃을 하고 동성과 사랑을 가꾸어가는 아버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아들의 애정어린 흐느낌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름답다, 고 나는, 생각한다.

- 난 이성이 좋지만, 동성을 좋아하는 네 사랑도 인정해.

아름다운 말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는 건, 정말이지, 아름다운 일이다.

이 책의 표지는 파랗다.

그리고 이 책의 무게는, 가볍다.

무겁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주제의 내용을,

재생용지의 가벼움으로 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동성애'라는 단어를,

이 책 재생용지의 가벼움만큼이나 가볍게, 산뜻하게 받아들여 달라는,

저자들의 부탁 같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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