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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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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감초처럼 툭 얹어두고 감칠맛을 더했던 주제들이 메인요리로 등장한 느낌입니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기에 바라보고 다룰 수 있는 주제들이 담겨 있어서 한 편 한 편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내년 봄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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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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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하시마 혹은 군함도

하시마 섬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분개했다. 강제징용의 역사를 인정하고 정보를 공개하겠다던 일본이 등재가 확정되면서 태도를 번복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없었던 민족의 설움과 분노가 점철되어 있는 군함도, 그 지옥의 섬에 ‘기억할 만한 곳’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뻔뻔한 행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악은 자신의 추악한 얼굴을 알기에 가면을 쓴다. 일본 산업화의 상징이 된 군함도는 화려한 관광지로서 빛을 발한다. 잔혹한 노동의 대가로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사실은 희생당했던 조선인들의 한 서린 넋이 머무르고 있을 조선인 숙소와 함께 숨겨진 채로.

 

1. <군함도> : 군함도에서 나가사끼까지

한수산의 <군함도>는 군함도와 나가사끼에 동원되었던 조선인들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1권에서는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을 위해 군함도에 동원되었다.”를 굵직한 서사로하여 많은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친일파의 아들, 탈출하려다 붙잡힌 노동자, 고된 노역에 시달리며 힘겨워하는 이들, 불합리에 저항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 동포이자 사랑하는 남자의 탈출을 돕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유곽의 여자, 남편이 징용으로 떠난 새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며 기다리는 아내, 징용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나가사끼에 정착한 아들 등 모든 조선인들은 그 시절의 전형성을 지닌다. 있음직한 인물들의 있음직한 서사는 독자에게 연대감을 준다.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이미 몇 차례의 탈출 시도가 있어왔음을 암시한다. 또한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서 쟁의를 모의하거나, 고향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을 축하하고자 몇 푼 되지 않는 월급을 모아 소소한 잔치를 벌이기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들까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2권은 군함도에서 탈출한 이들이 나가사끼에 당도한 후의 이야기이다. 지옥의 섬을 벗어나도 나가사끼에서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노역이었다. 전쟁 막바지에 다다른 제국주의 일본은 노동자들을 닥치는 대로 투입하였다. 그들은 간절한 승리의 염원보다는 패망에 대한 극렬한 반감을 보인다. 일본인들은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들의 밑바닥이 보이면 보일수록 조선인들에게 더욱 잔인하게 굴었다. 탄광에서 달아난 조선인들에게 비행장은 못지않은 지옥이었다. 주기적으로 떨어지는 포탄은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갱도의 열악했던 노동환경만큼이나 목숨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아수라장이 된 곳에서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배척을 당하며 물 한 잔조차 얻어 마시지 못하고 피폐한 모습으로 길거리에서 죽어간다. 모두에게 처참한 지옥이었지만 조선인들은 들것에 실려 가다가도 버려지고,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조선인이라며 돌을 맞았다. 징용에서 피폭으로 처참하게 사망해야 했던 조선인들, 고통과 모욕을 다 받아가며 죽어간 조선인들, 견디기 어려운 차별과 멸시에 항거하여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답기를 바랐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던 이들. 광복을 얼마 앞두고 군함도와 나가사끼, 그리고 조선에서 나라를 잃은 민족의 참상은 그렇게 비참해야만 했다.

 

2. 역사 복원 : 작가의 27년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을 읽을 때는 담겨 있는 서사의 무게감 때문에 감히 평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군함도>는 이 소설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다 소설이 담고 있는 글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또 전달하고자 하는지 집중하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역사의 복원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27년에 이르러 자료 조사를 한 그가 두 권에 이르는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얼마나 이야기를 간추리고 또 간추렸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군함도>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인물들은 모두 개인의 서사를 가진다. 소모적인 인물로 등장하더라도 미약하게나마 그 인물이 짤막한 이야기를 들고 역사 소설에 등장해야만 했던 것은 그 시절 우리 민족이 겪었던 설움을 빼놓지 않고 그리고자 했던 작가의 욕심이 개입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35년의 시간 동안 조선인들은 큰 죄를 짓지도 않은 채 벌을 받아야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 받았다. 민족은 제국주의 일본의 야비한 정책에 의해 말살되고 분열되었다. 친일파의 차남으로 징용에 끌려가는 지상, 아버지를 찾으러 떠난 길에서 친일파가 되는 길남 등 엇갈리는 서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유는 그 시절의 우리 민족이 그랬었기 때문이다.

부차적인 서사로 가미가제 특공대나 광복운동 이야기도 등장한다. 또한 일본인 부부의 목소리를 통해 일본의 민간인들 또한 전쟁에서 평화를 잃었으며 피폐한 삶을 살게 된 것은 마찬가지였음을 보여준다. 곁가지로 등장하는 이야기라서 큰 흐름에서는 조금 비껴나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시대적인 모습을 총체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서사적인 장치로 본다면 크게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소설의 중간 중간에는 창작된 내용이 아닌 사실이 실려 있다. 마치 대하드라마가 내레이션을 통해 역사적 내막을 짚어주는 것처럼, 창작을 배제하고 자료를 기반으로 한 역사의 장면이 작가의 목소리로 서술되어 있다. 1권보다는 특히 2권의 나가사끼 원자폭탄 투하 전후의 전개 과정에서는 마치 소설이 아닌 역사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허구와 실제 사이를 넘나드는 과정은 깊숙이 몰입하도록 도와주기도 하나, 나가사끼의 상세한 이야기가 지루함을 동반하지 않을까 다소 우려도 된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우리는 안다. 책장을 넘기고 있는 이 평화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1권에서 묵직한 분노를 전한다면 2권에서는 쓰라린 아픔을 동반한다. 작가가 “소설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처럼, 잔혹했던 지옥의 섬 군함도의 실상은 관광지 군함도의 인기가 상승할수록 더욱 알려져야만 한다. 군함도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한 때는 나라가 없던 민족의 후손이다. 인간이 인간을 점령하고 군림하며 가차 없이 부렸던 핍박의 시간을, 우리는 기억하고 또 남겨야 할 것이다.

 

덧, 7월 26일에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와 비교하며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것이었구나. 나라가 없다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지상은 처음으로 나라라는 말을 생각했다. 내놓으라면 그게 어디 곡식만이었나. 조상님 제사 모시던 유기그릇까지 다 꺼내주어야 했다. 가자고 하니까 여기까지 끌려왔다. 그러고도 이제 또 서라면 서고, 때리면 맞아야 한다. 왜 우리가 이래야 하는가. 우리는 그 무엇에서도 주인이 아니다. 이제야 알겠다, 나라가 없다는 게 무엇인가를. <군함도> 1, 118~119p

하는 짓 모두가 비겁하고 속임수로 가득 차 있으며 추악하지 그지없고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더러운 것. 그 말은 너희에게 되돌려주마. 이 더러운 야마또 민족아. 참을 수 없이 키따나이한 건 바로 너희들이다. <군함도> 1, 280p

나가사끼에서 원폭으로 죽어가야 했던 징용공들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되는 속에서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그때 거기 있었다는 우연과 미쯔비시의 수많은 군수공장이 포진한 나가사끼에 끌려온 징용공이라는 필연이 교직하면서 만들어낸 나가사끼 조선인 피폭자의 죽음은 그토록 허무하고 무구하다. <군함도> 2, 405p

한 팔에 당신 아들을, 한 팔에 저를 품고 신산했던 세월일랑 풀어버리시면 됩니다. 우리가 살았던 것들, 그 세월…… 그건 지나가버리는 것이니까요. 다만 우리 잊지 않기로 합시다. 뼈에 새기며 산 그 고통의 세월들, 그걸 기억하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전하면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게 합시다. <군함도> 2, 458p

그 어떤 압제나 고통, 질곡의 세월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새어나오는 ‘아이고‘나 간절한 마음을 다해서 부르는 ‘어머니‘, 이 모국어를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일본인 구호대는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하고 울부짖는 조선인들을 결코 병원으로 옮겨주지 않았다. 조선말을 하는 그들에게는 물도,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 방공호에서조차 그들은 내쫓겼다. 다친 몸으로 일본인들의 차별과 멸시 속에 버려진 조선인들은 거리에서, 부서진 건물더미 밑에서, 누군가의 집 처마 아래서, 다리 밑에서, 강가에서 죽어갔다. 마지막까지 시체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던 것도 조선인들이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다친 사람들을 들것에 싣고 병원으로 가다가도 ‘아이고!‘, ‘어머니!‘, ‘물 좀 주세요, 물!‘하는 조선말 신음소리를 들으면 그들을 거리에 내버렸다. <군함도> 2, 4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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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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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흔적을 남긴다. 이를테면, 몽골군의 침입을 막기가 간절했던 고려의 조상들이 만든 팔만대장경이 있다. 그런가하면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절한 부부애가 전설처럼 남겨져있는 불국사의 석가탑(또는 무영탑)이 역사의 흔적처럼 남겨져 있다. 구태여 앞뒤를 구분하지 않더라도 한반도의 몇천년 혹은 몇백년 전 이야기를 품고 있는 문화재들은 곳곳에 놓여 있다.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는 우리가 가보기 어려운, 또는 가보지 않았던 곳의 문화재를 이야기와 함께 간접적으로 여행 가능하게 한다. 새로 나온 '남한강'편은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시대 구별 없이 누군가의 고향에, 삶의 터전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전해준다.


학창 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특별한 책이다.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어 공부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시험을 보기위해서 암기하는 것은 좀처럼 곤욕스럽기 그지없었다. 이해를 기반으로 한 과목들에 강했던 나로선 역사와 같이 외우는 것이 필수였던 과목은 시험 점수가 좋게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문화재와 관련한 주관식 문제는 가장 난감한 부분이었다. 어떻게든 좋아하는 과목이니 점수를 높게 받고 싶은데, 하며 고민하던 찰나에 집에 꽂혀있는 1, 2, 3권을 보게 되었다.


'답사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한 교수가 문화 유적지를 탐방한 이야기를 기록해 둔 기행문이나 다름없는 것인데, 고등학생인지라 시간적인 여유가 크게 많지 않았던 나에겐 공부와 여행이라는 기회를 동시에 제공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게 된 남한강편 역시 취업 준비로 매일을 바삐 지내고 있는 시점에선 고마울 따름이었다. 유홍준 교수님의 눈과 발을 쫓아 돌아본 영월, 단양, 충주 그리고 원주까지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어 도서관에 앉아 있는 나를 훌쩍 강원도 한복판에 데려다 준 것만 같았다. 특히나 새로이 알게 되는 사실과 알고 있었음에도 자세히 몰랐던 부분까지 얽혀 있는 이야기가 빼곡하게 전달되고 있어 흥미로웠다.


얼마 전 케이블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 '관상'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계유정난을 가장 핵심적인 사건으로 다룬지라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대립각이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이었다. 아역배우가 분한 단종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서 등장하는 정도의 인물이었다. 첫 장에서 나온 영월이 가장 인상 깊어 간략하게 스포일러(?)를 하자면,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의 이야기가 나온다. 솔밭 한 켠에서 귀양살이를 시작했던 단종은 모두가 국사책에서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극에서 종종 다뤄진 인물이기에 그가 왕이었음에도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프게 생을 마감한 지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청령포에는 관음송이라는 노송이 있다고 한다. 교수님 말처럼 관음이라기에 불교가 아주 무시 당하지 않았던 조선 초기인지라 부처의 뜻을 빌어 관세음보살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종이 유배오는 것을 보고 그가 오열하는 소리를 들은 소나무라하여 볼 관 자, 소리 음자 관음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본문 76p 인용)


나는 여기서 우리나라 말의 묘미가 느껴졌다. 한자어가 워낙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동음이의어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단종의 슬픔을 함께 느꼈던 소나무라는 뜻도 있겠지만, 관세음보살처럼 중생에 불과하게 된 단종임금의 넋을 위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한 보살의 역할을 한 소나무이길 바랐던 이들의 뜻도 담겨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렴 세세하게 묘사를 해놓은들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며 들었던 인터넷 강좌에서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들었다. 사진도 보고 들어도 보았는데, 아름다운줄은 알겠다만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지난 겨울 내일로 여행을 다니며 영주를 여행지로 선택했다. 부석사까지 가는 길은 꽤나 복잡했지만 배흘림기둥과 하늘과 닿아있는 것을 직접 눈에 담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마찬가지로 아무렴 교수님이 섬세하게 설명을 해놓았다고 한들 직접 가서 보는 것과 같을 수야 있으랴. 조금 더 찬바람이 불기 전 강원도로 여행 계획을 세워 볼 예정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세세하게 알려준 길을 쫓는 것은  더욱 매력적인 일이 될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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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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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을 읽고 나면 서평을 쓰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서평을 썼던 책들이 재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읽는 동안 완전하게 매료되었던 책일수록 그저 권하고 싶을 뿐이다. 나의 길고 장황한 글로 인해 흥미를 잃게 되진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기우에 그치길 바라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여성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차별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해방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세상의 불합리를 느꼈던 남성이라면 정독하길 바란다. 더한 차별 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당장 수직적인 성장은 불가할지 몰라도, 시각은 반드시 수평적으로 넓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자세하게 알지도, 그렇다고 마냥 극단적으로 치우친 가부장적 성향의 이와 다퉈보지도 않았지만 나는 일련의 성장과정에서 분명히 차별을 겪어보았다. 영광스럽게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대학생의 관점에서 내가 살아왔던, 그리고 생활하고 있는 배경을 토대로 사회를 진단하고자 한다.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한 때 대한민국을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행어가 있었다. 꽤나 극단적인 모습의 남성과 여성이 부딪히며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다. 남성 패널은 일관적으로 여성이라면 집에서 남자를 떠받들며 살아야 한다고, 여성이 집 밖으로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울 것이냐고 눈을 홉떴다. 여성 패널은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며 역발상을 주장했다. 방청객들은 남성 패널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웃음을 터트렸고, 여성 패널이 받아치는 말에 박수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실은 남성 패널의 말은 종종 현실에서도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반면 여성 패널의 말은 바깥에서 이야기되었을 때 박수는커녕 야유를 받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회 안에서 울리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타자의 영역에 배제되어 있던 여성과 기타 소외층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을 타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정작 그게 청자에게 들리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여성 해방이란 사실 케케묵은 논쟁거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야 할 만큼, 여성 해방이라는 사안이 완전하게 해결되었을까?

 

 

우월한 남성들

 

사실 제목이 다소 일반화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본문에서 밝혀지는 것처럼, 저자 리베카 솔닛이 그런 지적을 실제로 받았다고 한다. 그자의 말로는 자신은 한 번도 여성을 비하하거나 아랫사람 마냥 대한 적이 없다면서 솔닛을 피해 의식에 젖은 패배자인양 몰아간 뒤, 화룡점정으로 더 많은 남자를 만나보았으면 좋겠다고 권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남자도 있으므로 그리 생각하지 말라, 그리고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떤가, 하고. 남성들은 가르치려 든다. 하물며 페미니즘마저도 가르치려 한다.

 

남자들은 아직도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그리고 내가 알고 그들은 모르는 일에 대해서 내게 잘못된 설명을 늘어 놓은 데 대해 사과한 남자는 아직까지 한명도 없었다. (21p)

 

많은 여성들은 사회에 진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본인의 목소리를 크게 내진 못하고 있다. 유명 페미니스트들이 대신해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세상의 반절이나 되는 반대 세력들로부터 폭력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가상에서 코피가 터지고, 살해 협박을 받곤 한다. 반면에 여성의 인권을 짓밟거나 경시하는 태도 혹은 언행을 저지른 이에게는 어떠한가. 별반 문제없이 활동을 하고 있다. 모 포털 사이트의 맹목적인 여성 혐오는 수면위로 떠올라, 다수의 이들이 오가는 SNS에서 서슴지 않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치녀라는 저급한 단어로 여성을 일반화하여 폄하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방송에 나와 남성의 자신감을 짓밟는-것이라고 남성들이 주장하는- 발언을 했던 한 일반인 여성은 좀처럼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몇 년 째 질타를 받고 있는데, 사랑하는 이와 잠자리를 가졌었단 이유로 여성을 창녀로 몰아간 남성 방송인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면, 비슷한 실수를 한 다른 이도 함께 용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간단한 논리 같은데 다들 여기에서 얼토당토 않는 차이점을 들어가며 끝내 여성을 짓밟고 만다. 그게 아니라면서 결국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수용한 여성들은 남성 방송인의 그릇된 부분을 묵인하며 그를 포용한다. 하지만 좀처럼 납득하지 못한 채 반박하는 여성들은 아집을 부리는 극단적 페미니스트 취급을 받게 된다. 어쩌면 조금은 서글픈 사회의 모순적인 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내에서 성폭행이 발생했으니 여학우들께서는 귀가를 서두르시길 바랍니다.”

 

솔닛이 본문에 소개한 폭력 사건들은 미국을 기준으로 하여 전 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극악무도한 살인사건부터 성폭행을 포함한 물리적 폭행을 모두 포함한다. 이미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에서 헤어나기도 전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암만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가 많다지만 6분에 한 번씩 강간 신고가 들어온다는 것은 그 횟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여기에 배우자, 혹은 옛 배우자 혹은 옛 애인으로부터 살해 협박 혹은 살해에 이르는 중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여성들 역시 매우 많은 숫자라고 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경우가 워낙 잦고 방대해 딱히 보도 될 가치마저 상실한 상황이라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기도 했다. 그저 그런 사건이 되기까지, 미국인들은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 상황에 대하여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익숙해진 것이다.

 

사건에 대한 분석은 대체로 남성을 위주로 한다. 정신 이상자였거나, 알콜 중독으로 인한 판단 기능 저하의 상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분노 조절 장애 등 남성이 가지는 문제는 다양하게 조명된다. 결국 남성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범죄가 일어나지 못할 환경을 조성하기보다 피해자를 없애 가해자까지 함께 증발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무식한 사건 해결 방법인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포괄하거나 관통하는 그 원인을 규명하기보다, 개별 사건으로 둔 채 판단한다. 숲이 무너져가고 있는데 나무 하나하나마다 전염병이 다르게 걸렸다고 진단하는 것과 다른 게 무엇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다 안다고 착각할 때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보다 사실 더 모른다. 완결된 지식을 가진 척하는 이런 태도는 어쩌면 실패한 언어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125p)

 

이것은 비단 미국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전 세계를 비롯하여 우리나라를 보아도 음주 상태였기에, 혹은 초범이기에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때문에 개별 대상에게 전자 발찌를 씌워 감시하거나 개인이 깊게 반성하고 있을 경우 피해자도 아닌 법원에서 선처를 해주는 경우까지 있다.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일수록 성범죄나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려 든다. 이래도 여전히 여성 해방의 문제가 고리타분한 사안이라 생각한다면 이제 그만 서평을 읽어도 좋다.

 

 

세상의 반이 남자, 세상의 반이 여자

 

이별한 이를 위로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말 그대로 세상을 이루고 있는 반이 이성인데, 한 이성에게 상처받았다고 하여 주눅 들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뜻을 도출해보자. 우리는 다른 성별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주에서 먼지나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인데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동안 1분에 몇 km를 움직이고 있음에도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한낱 미물에 불과 한다. 단순히 지성을 가지고 있단 이유만으로 우열을 가리고, 생긴 것이 다른 이를 차별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굳이 우주적 차원에서 조감하지 않아도,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이후로 함께 등장한 페미니즘은 아직 성숙한 모습을 갖추기에 이르다. 학자들이 개념을 단단히 숙지하고 있어야 만 ‘-ism’이라 불리는 학문이 자리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대중들까지도 그것을 포용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가부장제가 완전하게 사라지기엔, 그 폐해가 만연하다. 몰아내는 것은 모두의 노력이 기반 될 때이지, 페미니스트들이 목소리를 키운다고 하여 몇 백 년을 송두리째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자신이 페미니즘의 힘을 믿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던 삶의 양식을 그들이 흔들고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균열이 보이며 다른 모습의 사회상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하게 그 사회가 도래하기엔 먼 일이다. 변혁의 움직임이 조금 보인다고 하여 세상이 순식간에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굉장히 단순한 사고방식이다. 작은 움직임이 무너뜨려버릴 만큼 자신들이 믿는 가치관이 어느 정도 오류를 품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군데군데 이정표가 있기는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제 나름의 속도로 걷는데다가 어떤 사람들은 뒤늦게 합류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진하는 사람들을 멈춰 세우려고 하고, 심지어 소수의 사람들은 역방향으로 행진하거나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206p)

 

페미니즘은 단순히 불합리함을 깨뜨리자고 나타난 사상이 아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켜 모두가 공평한 위치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평등주의의 한 단면이다. 동시에 여성성을 구현하여 약자나 소외된 타자를 포용하기 위함이 그들의 주된 목적이다. 비록 극단적인 모습으로 역차별을 야기하거나, 여성중심주의적인 사회를 만들어 그 동안의 설움을 갚자는 움직임도 보여주고 있으나 그들이야 말로 이미 당신들의 손으로 어떻게든 짓누를 것 아닌가. 그렇다면 공평하게 살자고 평등을 주장하는 이들까지 무너뜨릴 셈인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은 모든 글을 통틀어 말한다. 여성도 목소리가 있고, 여성도 남성과 같은 사람이며 단지 생식기의 모습이 다르고 조금은 사고방식에서 차이를 보일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이라는 것. 지성은 가랑이 사이에 있지 않다. 생식기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고 해서 지성까지도 돌출시킬 필요는 없다. 고로 무작정 가르치거나 짓밟으려 하는 몰상식한 행동은 이제 그만 두라는 것을 말이다. 신랄하게 남성들과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을 비판하던 글은 중반부에서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리베카 솔닛은 단지 남성을 비난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주인공들을 해방시킴으로써 주제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부터 많은 예술가들이 성별과 인종, 모든 차별적인 개체에서 벗어나고자 이야기했던 작품들을 소개한다. 해방에 대한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결국 해방을 이야기했던 모두가 담은 메시지는 공존이었다.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자. 얼마나 인간적인 제안인가. 더 많은 분들이 책을 통해 배워보길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남자는 욕망과 그 욕망이 퇴짜 맞을지도 모른다는 노여운 전망을 함께 품고서 여자에게 접근한다. 분노와 욕망은 늘 함께 존재하며, 두가지가 마구 뒤엉켜 한덩어리가 된 상태에서는 언제든 에로스가 타나토스로, 사랑이 죽음으로 바뀔지 모르는 위험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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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일 오전, 수업에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식을 접했을 땐 이미 전원 구조가 오보였음이 밝혀진 후였다. 그것이 우리나라 뉴스 사상 최악의 오보인줄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히 누군가 구조하겠지, 하며 그저 그런 사고인 양 여겼다. 오전이 흘러가고 오후가 되자 심각한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구조하리라 믿었다. 언론에 의하면 국가적 차원에서 많은 시도를 하는 중이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시험공부에 급급했고, 진도 체육관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거라고 믿었다.

멍청할 정도로 순진했었다. 그 때 달리 생각했다 해도 큰 도움을 주지 못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후회한다. 정부를 믿었던 나의 출처 모를 신뢰를 후회하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떨었을 어린 친구들의 공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태도를 후회한다. 2014416일은 떠올리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그 시간으로 모두를 끌어당긴다. 아마도 무력한 어른으로서의 자괴감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으로 희생자들 앞에서 죄인이 된다.

 

지금까지 세월호와 관련한 서적들이 희생자들을 기리고 잊지 않기 위한 애도의 목적이 있었다면,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산 자들을 위로하는 치유를 목적으로 두었다. 단순히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들과 희생자의 가족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극복하는 과정과 그들을 극복하게 하는 방안에 대한 제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우리 모두, 3자로써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으로 자책하는 이들까지 모두 감싸 안아주는 것이다.

책은 진은영 시인의 질문과 정혜신 박사의 대답, 그리고 진은영 시인이 정리를 토대로 하여 다시 질문하고 다시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다수의 독자가 진은영 시인만큼이나 주변적인 지식이 없지만, 시인의 질문은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의문을 정확하게 지적해준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접근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막연하게 그들을 위로하라는 것이 아니라 참사 당시 가족들의 모습부터 치유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까지 자세하게 답변해준다. 나아가 화면으로 침몰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접해야 했던 우리들에게 남아 있는 전국민의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죽음이 마냥 타자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가까이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준 사건이었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었으며, 국가에 대한 신뢰를 크게 잃어버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현 정부에 대한 믿음체계는 붕괴되었지만 아직까지 우리 국민들의 정치 성향은 보수로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정치를 떠나, 사회적인 이슈였다. 1년여의 시간 동안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에 대응하는 국가 수뇌부의 졸렬함에 치가 떨렸다. 분열되는 우리 모두의 모습에서 허약함이 한껏 느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음에 대한 공포에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대개 죽음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체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무지(無知), 무지로 인한 두려움으로 설명되기 마련이다. 철학에서는 죽음을 삶과 연장선상에 두고, 동양 사상에 의하면 죽음은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 우리는 우리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단 하나도 알고 있지 못하므로 막연한 두려움에 시달려왔다.

정혜신 박사에 의하면 이번 참사뿐 아니라 쌍용 노동자들의 항거 중 자살이나 거슬러 올라가 제주 4.3 사건이나 광주 5.18 운동으로 인한 희생자들 및 그들의 가족이나 동료들은 모두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극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은 아니다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체험하고 나니 마치 그 죽음을 자신이 체험한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을 인지하고 난 사람들은 그에 대한 공포를 죽음에 무지한 이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세월호 참사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린 친구의 장례식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장례식 첫날부터 3일을 꼬박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안치실에 누워있는 그 친구를 보내주고, 그 친구의 형이 성수를 뿌리며 고인을 애도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화장터에서 곧장 나온 따뜻한 그 친구를 보내주는 과정을 겪어 보았다. 8월에 겪은 일로 나는 그 해의 하반기를 송두리째 흔들린 상태로 보냈었다. 내게 남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자들이다. 삶 자체를 버겁게 느끼며 일상으로 귀이 돌아가지 못하는 그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함께 웃으며 고인을 추억해주는 정도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들을 위로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내가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담긴 것도, 그렇다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도 아닌데 오히려 다른 관련 서적을 읽을 때완 차원이 다르게 눈물이 흘렀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급정거 하면 잠들어 있다가도 벌떡 깨고, 예기치 않았던 전화가 예기치 않았던 시간에 울리면 우선 숨을 크게 몰아쉬고,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인 누군가가 연락이 되지 않으면 그 때부터 막연하게 조급함을 느끼는 내 모습이 서글펐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어린 학생들도 안타까웠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고 아파 보여 슬픔이 치밀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아 다행인 마음과 잃고 싶지 않다는 절박감에 눈물이 났다. 이렇게 치졸한 내 모습에도, 책은 내가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우리 모두가 사건을 지켜보며 그랬다고, 그러니 함께 아픔에 부딪히고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며 털어보자고 도닥인다.

 

책은 이야기한다. 우리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정상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곳에서 더 오래 있지는 말라고 한다. 그리고 슬픔의 이글루에서 타파하고 나오는 과정엔 한 사람만의 노력 이상이 필요하다고 우리를 북돋는다. 물론 한 사람의 정신과 의사가 수천만에게 모두 적용되는 치유법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결국 두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사람마다 극복 과정은 다양하고 시간의 편차가 있는 만큼 우리가 기다려주며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슬픔을 가진 자들이 분열되면 지금보다 더한 약체가 되어버린다. 우리를 도닥일 수 있는 건 우리다. 지금만큼은 슬픔에 침잠해있어도 괜찮다. 다만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하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삶이란 죄악이 아님을 굳게 믿어야 할 것이다.

 

죽음 직전의 시간이란 그만큼 생애 어떤 순간보다 생생한 리얼리티를 지니는 거예요.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살아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사람에게는 그 순간의 경험이 너무나 생생한 리얼리티가 되고, 다른 현실은 덜 생생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밀려나게 돼요. 그 짧은 경험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죽음이 온몸, 온 세포에 스며드는 경험을 하는 것이 트라우마입니다. (65p)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인 예은이 아빠가 페이스북에 `오늘은 154번째 4월 16일입니다`라고 했죠. 그건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에요. 그분들은 정말로 그래요. 단원고 아이들이 4월 18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잖아요. 어떤 희생학생 누나가, 빨리 4월 18일이 되면 좋겠는데 4월 16일에서 시간이 안 간다고 해요. 이게 트라우마의 핵심입니다. 그 순간 삶이 정지하는 거예요. (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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