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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공부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고 공부했던 어린 시절에 윤동주의 시를 공부하면서,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이라는 문장에 붉은 펜으로 밑줄을 긋고 그 옆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거려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저는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적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무엇을 그렇게 외우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까요. 지금은 그때 적어 놓고 외웠던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윤동주의 시를 오랜만에 만나니 열심히 공부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문득 무언가가 그립습니다. 시는 그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열심히 필기를 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열심히 필기하면 남들처럼 윤동주를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이정명『별을 스치는 바람』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어난 어떤 살인사건에 대한 조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살인사건이 대개 그러하듯 가려져 있던 부분을 들쳐내는 과정은 먼지가 잔뜩 쌓인 해묵은 책을 건드린 것처럼 우리를 계속해서 콜록거리게 만들고, 드러난 진실에 대한 반전과 그에 따라 파생된 또 다른 반전은 우리의 안경을 계속해서 닦도록 하며 눈 앞의 것을 재차 확인하게 만듭니다. 소설은 마치 갈기갈기 찢어 한데 섞어 놓은 한 페이지의 내용을 다시 짜 맞추어야 하는 퍼즐처럼 1944년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있었던 일을 조금씩 보여줍니다. 그리고 당시 그 형무소에는 시인 윤동주가 있었습니다.



    전쟁 속에서 꾸준함을 잃지 않는 예술적 행위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참을 만들어 냅니다. 악취 속에서 태어나 먼지 속을 굴러다녔기 때문에 일자무식이라 할지라도 예술을 통해 나름의 느낌과 생각이 피어오르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인가 봅니다. 감성은 누구나 자기 안에 품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소설에서 예술은 콘크리트 보도블럭을 깨고 자라난 잡초처럼 강한 생명력을 갖고서 아군과 적군의 구분없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을 통해 한 인물이 깨어나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괜한 흥분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전쟁 속에서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예술이 우리에게 희망을 품게 합니다. 그러한 예술 중에서 문학이 있을 것이고, 문학 안에는 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 안에는 사람 윤동주가 있었습니다.



    소설은 시와 책과 음악과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전쟁 속에서 우리들이 지켜야하는 것들에 대해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문장을 사용하여 격한 감정을 싣고서 흥분하듯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사와 형용사, 쉼표와 마침표의 위치, 그리고 소설에서 시가 등장하는 시점, 그리고 행간과 여백의 공간, 각 장의 소제목까지, 모든 것들이 다 계산에 의해 배치되어 있는 듯 보여 치밀함이 느껴졌습니다. 소설의 문장들이 꽤 무거워서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순 없었지만, 오래동안 꼭꼭 씹어 천천히 삼켜야 했던 문장들이라 오히려 좋았습니다. 더군다나 형무소의 어두운 분위기와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진 듯 했습니다.



    소설에는 윤동주의 시가 많이 나옵니다. 그의 시를 만난 것은 오래전에 헤어지고 잊혀져 생사조차 알 수 없던 옛 친구를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반가운 나머지 익숙한 그 시구들을 소리내어 천천히 읽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만들어 낸 작은 울림과 떨림은 고요했던 제 감성을 자극해 괜한 짓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의 부끄럼 생길 일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시인 윤동주에 대한 시를 써버린 것입니다.




    시인 윤동주


                                               김크롱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 많은데

당신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당신의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지만

그렇다고 내가 당신의 말에 귀기울인 건 아니에요


 

책을 읽어 무엇하고 

시를 써서 무엇해요

 


당신을 따라서 릴케, 바레리, 지드를 읽었건만

내 안에 그들은 살아있지 않아요


당신이 만든 은밀한 지하 도서관은

벌레가 파먹은 잎사귀처럼 바스락거리지만

내 안에 살아 남은 당신은

형무소 돌담처럼 침묵하고 있어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내 안에 없었고

프로메테우스는 끝없이 침전하고 있어요

 


모두 다 불태워 몸을 녹일 수 있다면

내 안의 당신을 태워 마음을 녹이겠어요


당신의 몸에 붉게 그어진 두 줄은

내가 한 적 없는 검열의 상흔


그래서 당신은 무슨 말을 했던가요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이런가요








    사람들은 필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고백하는 것이 아닐까? 글씨의 형태와 윤곽과 위치는 쓴 사람의 심성과 욕망뿐 아니라 당시의 기분과 분위기까지 말해 준다. 획의 삐침과 굳셈에 감춰진 심성, 물음표와 따옴표, 마침표와 온갖 구두점에 숨은 성정, 자간과 행간의 간격과 밀도에서 엿보이는 심리 상태, 꾹꾹 눌러쓴 서체의 고집과 마침표와 따옴표를 생략하는 단순함, 천천히 또박또박 쓴 꼼꼼함과 날아가듯 흘려 쓴 문장의 순발력, 위쪽 모서리부터 써나가는 알뜰함. 심지어 텅빈 백지조차도 글을 쓰지 않은 그 사람에 대해 말해 준다. (1권, 37쪽)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읽는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감각이라는 사실을. 한 줄의 문장을,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을, 혹은 그의 세계를 읽는 행위라는 것을. (1권, 169쪽)



    "그런 것들을 느껴서 무엇을 하겠다고?"

    동주는 회의를 담은 물음표에 이어질 말들을 생각했다. '세계는 화염에 휩싸였고 청년들은 병정개미처럼 죽어 가는데…….' 그렇다. 시는 총알을 막지 못하고 문장은 전투를 중단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시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허한 시인의 위로와 초라한 시의 격문이 무슨 소용인가? 동주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쟁의 광기가 언어를 초월해도 그 야만성을 증거할 것은 결국 언어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순결한 언어만이 가장 참혹한 시대를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1권, 227쪽)



    "논리에 어긋나는 거짓으로 어떻게 진실을 말할 수 있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 거짓과 더러움과 악으로 가득하지. 하지만 그런 모순이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어. 모순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강화하는 방식이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 때문에 인간은 죄에서 벗어났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괴로우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거야. (2권, 78쪽)



    "책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죽어갈까?" (2권, 172쪽)



    나는 나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2권, 234쪽)



    누군가는 그것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절대 망각 속에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권, 287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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