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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미국 소도시 여행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빌브라이슨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이 작가와 호불호가 같아서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책을 읽을 때 나는 저자의 주관이 들어간 부분중 '이건 아닌데..? 너나 그렇게 생각하든지!'라며 반발하게 될 때가 많은데 그래도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기 때문에 계속 내 생각과 충돌을 일으키며 저자를 비웃으며 책을 읽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브라이슨은 이기적임, 옛것을 쉽게 버리는 것, 배타적인 전도활동, 신경질적인 민폐쟁이 노인 등을 경멸하고, 웃긴 것, 마음속에 간직한 조용하고 멋진 곳과 친절한 사람들, 유익한 과학과 통계, 사소한 것에서도 사회비판과 발전을 이끌어낼수 있는 통찰력, 풍부한 역사와 세계사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책을 읽는 내내 가볍다가도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많은 것들을 얻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에 빌브라이슨의 책이 너무 늦게 알려져 안타깝게도 이책도 출간되었던 1989년의 시의적절한 시기를 지나 2009년 출간되었으니 20년의 격차를 지닌 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빌 브라이슨의 책은 발칙한 '유럽산책','영국산책','미국학'과 '거의 모든 것의 역사','나를 부르는 숲','재밌는 세상','아프리카 다이어리'다. 이책들은 출간순서대로 읽지 않아서 내용중에 저자의 사적인 행적도 큰비중을 차지하기에 뒤죽박죽이었으나 읽어가면서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저자는 아이오와 디모인 출신으로 엽기적인 악동으로의 어린시절을 보낸 뒤 ('재밌는 세상(1950~1960년대 배경)'이 그시절을 회상하고) 설렁설렁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 건너가 여행을 다니다가 알바(?)로 남자간호사보조를 하다가 부인 신시아를 만나서 결혼하고 영국에 아예 눌러앉게 된다. 영국생활 중간에 미국에 계신 어머니를 방문해서 엄마차를 빌려 미국 48개 주 중 남부 10개주를 제외한 전역을 돌아 '미국횡단기(1989년)을 내고, 유럽을 누비며 '유럽산책(1992년)'을 썼고, 영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20년간 영국생활을 하다가 고향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제2의 고향인 영국에 대한 애정을 담아 영국 전역을 돌아보는 '영국산책(1995년)'을 펴고, 고국의 뉴햄프셔 하노버로 돌아와서 겪는 문화적 충격과 이방인의 시각에서 느끼는 미국문화와 미국인,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 쓴 '미국학(1996~1998년)'을 출판하고, 집근처의 등산로의 유혹에서부터 시작한 애필레치아 트레일 고투를 그린 '나를 부르는 숲(1999년)'을 쓰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완전히 돌아오기 전 미국전역을 횡단을 하면서 느낀 곳들의 인상이 미국에 돌아와서 정착하게 된 "뉴햄프셔의 하노버" 라는 보금자리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아마 그곳이 이상적인 것들이 모인 '모아빌'에 제일 근접했기에 살 곳으로 낙점한 것이 아닐까? 뉴햄프셔는 타샤튜터가 버몬트로 이사오기 전 살았던 전원의 평화로움과 목가적인 이상적 분위기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자신의 고향인 디모인을 제일 좋게 언급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책은 어머니댁이자 고향인 남서부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동쪽으로 출발해서 동부를 돈뒤 다시 아래로 꺾어 남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부를 여행하며 다시 위로 돌아서 남서부를 경유하는 경로로 거의 모든 주를 훑는 여정이다. 여행기를 읽으면 왠지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책만 읽고 있을뿐인데도 그 여독과 불편함, 피곤함이 내게도 전해져서 유럽산책과 영국산책때는 불안정한 교통편(버스,기차,배 등)으로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기에 다소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느꼈었다. 이번 미국횡단은 그보다 편안히 차없이는 어디도 갈수 없는 미국의 특성에 맞게 엄마차를 빌려서 자가용여행을 하기에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떠날수 있었다.
빌브라이슨은 항상 여행기에서 숙소와 식사를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때로는 무척 만족하고 어떨때는 투덜대며 불평을 하는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행은 정말 의식주 중 '식'과 '주'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매번 준비해야하는 정해지지 않은 번거로운 일이란 걸 일깨워주곤 한다.
또 빌브라이슨의 책에는 자주 등장하는 일화와 실제인물들이 있는데, 다른책에서 읽었던 이런 부분을 다시보게되면, 현실감과 반가움이 동시에 고개를 든다. 이를테면, 항상 멍하지만 자상한 어머니, 심각한 구두쇠이지만 훌륭한 스포츠기자였던 아버지는 물론, 할아버지와 허리케인 이야기, 유일하게 나쁜 남서부인으로 등장하는 파이퍼영감(미국학에서도 잠깐 욕이 나온다), 이책에는 않나온 오랜친구 스티브 카츠 등등.. 빌브라이슨은 물론 주변인에 대해서도 알게되면서 내가 브라이슨과 아는 사이라는 막연한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20년 전이기는 하지만 어느정도 지금에도 느껴지는 미국 각 주의 분위기를 대충 느낄 수 있다. 부유함이 넘치는 동부의 뉴잉글랜드, 친절하고 목가적인 남서부, 사투리가 심한 남부,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상막한 서부.. 이런 지역색은 각 지방의 기후와 자연환경, 역사, 주민들의 구성비율과 경제력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나타난 특성이라는 것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 워낙 방대한 규모의 북아메리카이기에 어떤 주는 유럽의 한 나라보다도 크면서 인구밀도는 극히 낮아서 하루에 사람 한명 보기 힘든 곳도 있다.
'유럽산책'과 '영국산책'에서는 각 장마다 여행하는 곳의 지도가 표시되어있었는데 이 책은 첫페이지에 미국지도가 한번 나오기에 계속 책을 읽으면서 앞페이지의 주를 살펴보곤 했다. 오히려 이게 어느 주가 어디 붙었는지와 전체적인 여행경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한번 가보긴 했으나 어디 붙어있는지 솔직히 몰랐던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위치는 물론 대부분의 미국 주 이름과 대략적 위치를 알게 되었다. 사실 난 메인주가 주요 주들을 의미하는'main'인줄 알았으나 'Maine'이라는 주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러 인종이 모여사는 미국답게 음식하나를 주문하는데도 온갖 옵션 선택이 가능하고, 10m거리일지라도 차없이 도보로는 다닐 수 없는 쇼핑몰 등 사소하지만 실제 가서 겪어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미국생활의 일면들도 다루고 있다. 두달전 부모님이 한달간 뉴욕여행을 다녀오셨는데 엄마가 작은아빠가족과 함께 스파게티식당에 갔다가 화장실에 다녀와서 보니 친척언니가 여러장으로 된 종이를 시험지를 풀듯이 넘겨가며 펜으로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길래 뭔가 보니 토핑과 옵션 등에서 원하는 부분에 체크를 하고 있었다며 놀라셨었다. 처음이라면 좀 낯설고 불편하겠지만 익숙해진다면 나의 경우 이런 취향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부분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역사,환경,과학,사회 등 다방면의 교양을 바탕으로 필그림파더들이 처음 디뎠던 미국땅, 각종 전쟁유적지, 유명인들의 생가는 물론 오대호 오염의 심각함과 미국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 '거의 모든것의 역사'에서도 언급되었던 관광지로서는 엄청난 위험이 내재된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간헐천 등등 다 언급하기 어마어마한 무수한 곳들을 돌아본다.
트루먼카포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 콜드 블러드'의 배경인 캔자스 주 홀컴 지역의 주민들은 정작 그소설을 읽어보기는 커녕 존재조차 잘 모르며, 그런 잔인한 살인사건들이 쉽게 많이 벌어지면서도 놀라울만큼 미결로 끝날수 밖에 없도록 쉽게 총기를 소지하면서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목격자가 없을만큼 낮은 인구밀도와 넓은 땅덩어리때문에 실종자는 며칠뒤 찾을수 없는 수백킬로미터 너머의 다른 주에 버려질 수도 있는 위험한 환경에 대한 문제점도 생각해볼수 있다. 또한 카포티덕에 그 살인사건은 유명해졌지만 그런 일들이 너무 비일비재하기에 인근 지역에서만 짤막하게 뉴스에 보도되고 다른주에서는 사건의 발생 자체조차 모르고 넘어가 버릴수 밖에 없는 현실도 언급하고 있다.
오랜 영국생활로 영국인화된 이방인으로서의 미국여행이었기에 자신이 자라던 때와는 달라진 미국의 환경에 불만과 실망도 자주 터트린다. 특히 광고로 도배된 상업화된 환경과 점차 재미없고 낭만이 사라지는 타운들의 분위기에 안타까워하곤한다.
까다로운 빌브라이슨이 꿈꾸는 도서관과 영화관, 볼링장, 고풍스런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고 걷기 좋은 길과 근사한 공원,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상적인 '모아빌'은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가 책의 중간부터 아직까지 남아있는 근사한 곳들이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조리 표시해놓았다가 훗날 미국에 다시 가게 된다면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읽다보니 너무 많이 나와서 다 체크하지 못했다. 우선 조지아의 사바나, 메릴랜드의 체스터타운, 필라델피아의 페어마운트 공원, 버몬트의 도셋(여기는 너무 완벽해서 빌브라이슨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지 못했다), 뉴욕의 쿠퍼스타운 까지만 표시해두었다.
읽고 나서 기억에 남는 꼭 가고픈 곳으로는 풍요로운 뉴잉글랜드 지역 두루, 브라이슨이 수준급 묘사가 일품인 그랜드캐니언,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인 나무가 살고 있는(?) 세쿼이아 국립공원 이 생각났고, 그밖에도 좋은 곳들이 너무 많아서 떠나게 된다면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