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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음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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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개인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자.
지역경제와 인구경제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울산과 지역소멸 이슈를 접할 때마다 이상함을 느낀다.
울산을 포함한 동남권 제조업 도시들의 몰락과 지역소멸 문제가 심각하다고는 하는데,
데이터를 찾아보면 통념과 다르게 나오거나 의아하게 나올 때가 많다.

먼저 울산의 이상한 점부터 이야기해보자.

1) 첫째, 울산은 비수도권에서 이상할 정도로 GRDP와 소득 수준이 높다. 그렇게 서울로 집중되서 문제라고 하는데, 울산은 GRDP나 소득 기준으로 서울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
2) 발전한 광역시라 중소도시/군을 포함한 도 지역에 비해 남초 현상이 옅어야 하나 남초 현상이 도 지역 급으로 심각하다. (위의 첫번째 사진) 다른 대도시들은 도에서 여성을 끌어들여 남초 경향이 도에 비해 옅은 편인데, 울산은 예외이다. 
3) 발전한 도시임에도,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이 제일 심각한 축이다. (위의 두번째 사진)
4) 분명히 조선업은 위기를 넘겼다던데, 노동시장에서 들려오는 괴담들을 보면 정말 위기를 넘겼나 싶다.

더 나아가서 한국의 지역격차 문제도 사실 이상하다.지방 소멸이 어떠니 수도권-지방격차가 심각하니 하는데, 
한국의 지역격차는 사실 OECD에서 제일 낮은 축이다! GRDP, 소득 어떤 기준으로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사람들은 지역소멸 문제가 생각하다고 보는 것일까. 

그러던 나는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게 되어 서평 신청을 했고, 인상깊게 잘 읽었다.  
고백하자면, 예전부터 이쪽 이슈에 관심이 많았기에 들어본 이야기가 많았지만, 
잘 쓰여 있어서 내용을 다시한번 포괄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울산을 위시한 한국의 동남권 도시들은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여 한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고 고도성장을 일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울산은 임금이 꽤 높은 제조업 대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투쟁과 불신으로 가득한 노사관계는 탈숙련 자동화에 치중된 산업구조를 만들어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어렵게 만들었다. 대기업들은 고임금을 주지만, 이들이 사람을 안 뽑는 상황에서 원하청 관계의 악화로 남은 일자리는 저임금 하청 일자리뿐이다. 기업과 대학 간의 연계는 충분하지 못하며, 혁신을 이끌어야 할 과학기술 인력과 연구소는 죄다 수도권과 충청지역에 위치하여 현장 공장과의 괴리가 생겼다. 남초 고임금 제조업에 치중된 산업구조로 여성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는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외벌이 가족이나마 가능케 한 가부장적인 고임금 남성 외벌이 모델은 남성 제조업 일자리의 열화로 수명을 다했다. 그렇게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울산을 떠나고 있으며, 이 문제는 구조적이기에 일시적인 위기 극복 정도로 회복할 수 없다. 울산은 이대로라면 구조적인 몰락은 피할 수 없다!

GRDP/소득이 높다는 통계 이면에 숨어있는, 원하청 착취에 기인한 남성 외벌이 고임금 일자리로 겨우 지탱되어온 가부장적 가족 모델. 그 모델이 무너지는데, 여성이 취직할만한 제조업 밖 좋은 일자리는 전무한 상황. 
청년들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울산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위에서 언급한 울산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GRDP/소득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국 지역격차의 문제를 곱씹어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인 의문을 많이 푼 것을 넘어, 전반적으로 기대를 한참 뛰어넘은 명저이다.  
비수도권의 쇠락, 제조업 위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필독서이다.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첫째로, 울산의 구조적 문제를 매우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노사관계, 산업구조, 기술과 혁신, 국제정세, 젠더 이슈, 지역경제, 대학과 산업 등등. 뒤에서 상술했듯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개론서로서 매우 적합하다. 머리속에 큰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도록 쓰였다. 

두번째로, 전반적인 경향성을 강조하면서도 경향 내부에 숨은 이질성을 놓지지 않는다. 이는 저자의 깊은 식견과 공정한 견해를 드러낸다. 세 가지 예시만 들자면
1) 울산의 일자리와 가족 형성 문제를 남성과 여성 모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2) 울산의 대학을 단순히 지방대로 싸잡지 않으며, 과학기술 중심의 UNIST와 종합대학교인 울산대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UNIST가 성과만 보면 국내 탑 티어급 대학인데, 왜 지역에서 비판을 들으며 지역경제 혁신을 뒷받치는 데 한계가 있는지를 잘 알게 만들었다.  
3) 울산을 제조업도시로 유명한 동남권의 포항/창원시와 비교하며 울산의 특수성을 부각시킨다. 그리하여 울산을 한국 제조업 도시들을 대변하는 예로 쓰면서도, 울산 특유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다.

세번째로, 울산 더 나아가 동남권 산업도시들의 분명한 위기를 이야기하면서도, 한국 제조업의 몇몇 성취와 잠재력을 인정하여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삼으려는 멋진 태도를 보인다. 보통 이런 주제의 사회이슈 고발 책은 명료한 비판을 위해 한국을 과도하게 깎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러한 경향의 예외이다. 한국의 눈부신 성취를 인정하며, 다음 시대를 위한 어젠다를 자신있게 내세운 책 『추월의 시대』 공저자의 후속작답다.


물론 책에 아쉬운 면모도 여럿 있었다.

첫째, 서구 선진국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경제 발전 시점의 차이에 덜 집중하였다. 이 책은 왜 한국 제조업 벨트가 유럽 도시들에 비해 숙련성이 약하며 자동화에 집중하였는지를 노사관계와 원하청 관계, 미국의 트렌드에 치중하여  서술하였다. 비록 포괄적인 분석이긴 하나, 한국은 신흥국이며 유럽은 기성 선진국이었다는 구도를 간과한 듯 하다. 유럽은 기술 수준이 낮던 시기에 산업을 발전시켰고 신흥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국은 기술 수준이 고도화된 뒤늦은 시기에 산업을 발전시켰고 유럽을 앞서야 했던 상황이다. 저자는 유럽의 고숙련 저자동화 경로를 따라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살짝 동경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유럽의 경로대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이 요소를 감안하지 않으면, 한국 입장에서 과도하게 가혹한 평가가 될 소지가 있다고 본다.

둘째, 베이비붐 세대(광의의 관점에서 1955-1974년생)의 은퇴가 울산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인구 문제는 매우 심각하고, 지역의 흥망성쇠와도 깊게 관련된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 곧 들이닥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건 아쉽다.  물론 이 문제에 저자가 어떤 식으로 답할지는 예상되긴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는 커녕, 저임금 하청일자리와 자동화된 공장만 남긴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 부분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 건 아쉽다. 홍춘욱은 『인구와 투자의 미래 확장판』 신간에서, 호봉제 체제를 통해 과도한 고임금을 받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져다줄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강조한다. 이 낙관론에 개인적으로는 100% 동의하지 않지만, 검토해볼 만한 주장은 된다고 본다. 인구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셋째, 울산의 삶의 질과 인프라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다. 물론 울산시의 몰락을 제조업에 집중하여 분석한 책이기에, 교통, 문화산업 등에 대한 언급이 적은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울산 위기의 중심에 놓인, 울산 여성들이 일할 괜찮은 일자리(특히 고임금 서비스업)가 부재하다는 문제를 인프라와 무관하게 놓을 수 있을까? 많은 한국의 비수도권 거주자들은 수도권에 비해서 일자리 뿐만 아니라 인프라나 삶의 질 수준이 낮다고 불평한다. 만약에 보건, 문화 인프라가 울산에 더 지어진다면, 그 인프라는 특히 여성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개연성이 높다. 철도 등 교통 인프라를 더 지을 경우(당장 올해부터 태화강역을 지나는 중앙고속선과, 강원도 영동과 부산을 잇는 동해선이 지어질 예정이다) 동남권 벨트의 시너지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짓는 메가시티 담론에 살짝 언급된 후 더 나아가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울산은 돈을 많이 버는 도시인데 삶의 질은 그만큼 높은지 고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구 100만을 넘었음에도 제대로 된 도시철도 하나 없는 도시가 울산이다. 그리하여 차를 끌게 반강제하는 도시 문화는 청년, 특히 여성에게 매력을 낮출 개연성이 높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훌륭한 저서이다. 
이 책이 영양가 있고 포괄적인 지역경제 논의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제조업 몰락과 지역 소멸 문제는 그 자체로 사회문제이지만, 사회문제를 넘어 한국이라는 운명공동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기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서평단으로 선정되고 책을 지원받아 리뷰한 것입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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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게 읽는 러시아 역사
마크 갈레오티 지음, 이상원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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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그 러시아의 역사를 232페이지에 압축해놓았다는 책 소개를 보고 든 첫 인상은 반신반의였습니다.


"이게 가능해? 수박 겉핥기식 수준에 머물지 않을까?"


유럽인듯 유럽아닌 유럽같은 나라 러시아.

정교회의 국가로서 동로마 비잔틴을 계승하여 요즘 인터넷 밈인 '로마 후계자'였던 러시아.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한때는 북미까지 걸쳤던 세계에서 제일 큰 영토를 지닌 러시아.

20세기 두 이데올로기의 하나인 공산주의의 중심국 위치를 차지한 소비에트 연방의 러시아.

미국, EU, 중국, 인도 등와 함께 다극체제의 여러 중심 중 하나로 지목되는 푸틴의 러시아.


이런 어마어마한 나라의 역사를 단 232페이지로 요약하다니...

솔직히 말해서, 제가 서평이벤트에 참여한 건 요약을 제대로 했나 궁금했던 게 컸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은 책을 읽고 감탄으로 바뀌었습니다.

232페이지로 러시아 역사의 핵심을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구나!


저자는 러시아 역사를 하나의 테마를 통해 분석합니다. 이는 부제에도 암시되는데요.

'매력적면서[표지에 오타를 내다니;;] 괴이한, 영광스러우면서 결사적인, 극단적으로 잔혹하면서도 영웅적인 한 나라의 이야기'

저자는 러시아가 방대한 영토에서 벌어진 복잡한 역사를 통해 수많은 왕조, 문화, 민족, 종교, 이데올로기 등을 하나로 융합하였기에, 굉장히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복합성은 혼돈이 되기 쉬운데, 러시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지난' 역사를 '창조'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왜곡에 가까운 창의적 역사해석, 전혀 성격이 다른데 나란히 놓여있는 역사적 위인동상들은 그 창조의 증거이고요.


저자는 이렇게 창조되야만 했던 긴 역사를 8개의 핵심적 인물들과 시기 - 키예프 루시, 몽골통치기, 이반 4세, 표토르 대제, 예카테리나 여제, 19세기, 소련, 소련 해체 후 러시아 - 를 간략하면서도 재미있는 글빨로 요약합니다. 

232페이지라는 짧은 분량 안에서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인지, 위트있는 표현과 적극적인 역사비평을 서슴지 않습니다. 특히 부연설명을 빙자한 괄호 안 문구들의 촌철살인이 정곡을 찌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정치 특성을 몽골 탓으로 돌리는 것은 편리한 핑계에 불과하다. 러시아인들 입장에서는 몽골이 알리바이를 제공한 셈이다. 과거와 현재의 이방인 비평자들도 몽골 통치를 근거로 러시아를 타자화한다. 동유럽이 아닌 서아시아로, 기껏해야 잡종 악당으로 보는 것이다." - 66p.


"1625년 모스크바와 전 루시의 총주교가 된 니콘Nikon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마지못해 맡은 직분이기는 했지만 일단 총주교 위치에 오른 그는 달변과 권력을 총동원하여 교회 정화에 나섰다. 그리스 비잔틴 원형에서 너무 많이 벗어난 교회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리스의 의식과 예배가 새로 도입되었다.(목숨이 아깝다면 그리스보다는 당시 러시아가 옛 비잔틴 전통에 더 가깝다는 역설을 언급해서는 안 됐다.) 새로운 양식의 이콘 성화는 금지되었다. 니콘 추종자들은 모스크바 전역의 교회와 가정집에 들어가 이콘 성화를 압수해 불태웠다. 그 이콘을 그린 화가들은 눈알이 뽑힌 채 사방으로 끌려 다니며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성자와 종교적 장면을 그린 이 화풍의 발전은 실상 근대 초기 러시아 예술 문화의 핵심이었는데도 말이다.)" - 102~103p.


예카테리나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실은 정반대이다. 당시는 괄목할 만한 진보와 변화의 시대였다. 과거 금지되거나 무시되던 외국 서적이 번역되었고, 많은 이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연두 예방접종이 도입되었다. 여제는 종교 면에서도 관용을 보였으며 (그 와중에 교회가 소유한 마지막 땅이 몰수되기는 했다) 고문도 폐지했다. (이론적으로는 그랬다.) [중략] 하지만 개혁의 핵심부는 비어 있었다. 예카테리나는 자유와 법률의 중요성을 진심으로 믿는 듯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와 군주가 법의 통제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여제는 저항이나 이견을 허락하지 않는 완고한 전제군주였다. - 132~133p.


1917년에 권력을 잡은 인물은 '실용주의자 레닌'이었다. 그는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성숙한 거대한 노동계급을 갖추지 못했고, 아직 사회주의를 건설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준비 안 된 나라에 사회주의를 억지로 도입했다가는 보수적인 성향에 혁명 에너지만 넘치는 정권을 낳는 역효과가 나타난다고 경고했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경고가 옳다는 것은 스탈린이 증명했다.) - 182p.


이렇게 단어, 문장, 문단 하나하나를 계산해서 쓴 듯한 기적의 필력은 232페이지라는 분량을 말도 안 되게 알차고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이 능력만으로 호평을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습니다.

매우 간략하게 묘사된 거야 분량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분량 생각하면 매우 요약 잘 된 편입니다),

책을 하나의 테마에 녹아들게 재미있고 알차게 묘사하려다보니, 분량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비평이 많습니다.

자칫 초심자에게 특정 관점을 팩트처럼 받아들이게 만들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었어요.


전체적으로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부정적으로 묘사하진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러시아의 전제성과 낙후성, 학살과 역사 왜곡을 좋게 보긴 어렵겠지만,

위트의 자극성을 좀 줄이고, 보다 애정있는 묘사를 했으면 더 알차지 않았을까 아쉬움은 듭니다.


위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그 긴 역사를 232페이지 안에 글빨 갖춰 재미있고 알차게 요약하는건 아무나 따라 못 합니다.

러시아사에 관심있는 사람한테 추천하고 싶습니다.

내용이 아쉽다 싶으면 저자들도 챕터 말미마다 책들을 추천한만큼 찾아서 읽으면 되고요.

(아쉽게도 언어장벽으로 인해 한국어 책들은 찾기 힘들겠지만)


개인적으로 5점 만점에 4점 ★★★★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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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 그들 - ‘그들’을 악마로 몰아 ‘우리’의 표를 쟁취하는 진짜 악마들
이안 브레머 지음, 김고명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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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안 브레머는 세계적인 정치 연구자로, J커브 이론과 G-Zero 세계 등의 도발적인 이론을 제시하여 인기를 끈 학자이다. 그의 저서 중 『리더가 사라진 세계 - G제로 세계에서의 승자와 패자』는 명저로서, 현재 국제질서를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브렉시트도 트럼프 열풍도 없던 2012년에 출간된 책이라고 믿기지 않는 통찰력과 예지력을 지녔다. 서평단에 지원한 것도 저자가 이 책에서도 눈부신 통찰력을 보여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참고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Ian Bremmer라는 이름 계정이 있으니 한번 구독하길 바란다. 사회 현안에 대한 통찰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위트가 넘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기대에 못 미친 책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별로일 책은 아니다. 뒷부분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내가 이 책을 별로라 생각한 이유부터 설명해 보겠다.

일단 책 제목과 내용 간에 괴리가 좀 있다. 한국어로는 『우리 대 그들』, 원서로는 더 직관적인 『US vs THEM』이다. 서평단 광고나 책 표지만 보면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언급할 것 같은 책인데, 포퓰리스트들이 스스로를 '우리 인민을 위하는 정치인'으로 표방하고 이에 대비되는 '가공의 적'을 만들어 우리 편을 결집시키고 상대를 악마화한다는 전략을 쓴다는 건 많이 알려진 터라, 제목 자체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문제는 이게 세계적인 포퓰리즘 현상과 그 양상을 묘사한다기보다는, 포퓰리즘이 유행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책에 가깝다는 거다. 세계화가 국가 내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이민자 유입되면서 국가 정체성 위기가 생겨 국민들은 불만에 빠졌으며,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자극되었다. 그 결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양산되었다는 게 책의 요지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어떻게 '우리 대 그들을' 가르고 이 대립을 이용하는지는 뒷부분에 가야 나타나며, 그나마도 현황이 이렇고 앞으로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짤막하게 언급되었다. 포퓰리즘의 패턴과 전략 및 역사와 같은 구체적인 분석은 없다. 제목만 보고 책을 산 사람 중 실망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언 브레머는 이 책의 제목을 세계화와 포퓰리즘 같은 걸로 바꿨어야 했다.

내용도 사실 진부한 부분이 많았다.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과 이민 유입이 포퓰리즘을 양산했고, 포퓰리즘이 우리 대 그들 구도를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거라 자부하지만 문제 해결은 커녕 새로운 문제를 양산할 뿐이라는 분석은 하도 많이 나와 지겨울 지경이다.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 기사든 칼럼이든 책이든 많이 읽은 사람 입장에선 더더욱. 참신하지 않다면 깊이있게라도 분석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해결책이라고 내세운 것도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고, 배제하는 사람 없는 포괄적인 사회시스템을 짜자는 뻔한 내용밖엔 없었다. 현실성도 많이 의심스럽고. 고전적인 좌파들이 내놓았을 방안인데, 세계화로 인한 바뀐 현실을 얼마나 반영한 건지 의심스럽다. 저자가 내놓은 해결책이 실현 가능했다면 왜 그렇게 못 했을까 하는 생각만 자꾸 든다. 가망이 없어서 그냥 자포자기 식으로 내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책이 이렇게 된 제일 큰 이유는 아마 분량이 너무 적어서였을 것이다. 미주를 빼면 겨우 250페이지 남짓인데, 포퓰리즘은 깊게 파고들면 분량이 충분히 길어질 주제다. 그걸 250페이지로 압축해서 썼으니 세부적인 내용 상당부분이 빠져나가는 부작용이 벌어질 수밖에. 자가 『리더가 사라진 세계 - G제로 세계에서의 승자와 패자』에서 보여준 통찰력을 생각하면, 분량이 두 배였으면 언급한 문제가 상당 부분 없어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책에서 건질 내용이 분명 있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파괴 문제를 제기한 것과, 개발도상국을 포퓰리즘 유행에 특히 취약하다고 진단한 것이 그것이다.

알파고와 4차 산업혁명 문제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저자가 그런 불안감을 잘 설명해주었다. 특히 '자동화가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속설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동화 전과 후의 일자리 구성은 분명 다르므로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에 적응 못해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저자의 통찰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걱정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수준의 자동화로도 서구 선진국들이 난리가 났는데, 앞으로 있을 변화엔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또 포퓰리즘 유행을 서구 선진국에만 국한시켜 분석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개발도상국과 권위주의 국가에 확장시켜 설명했다. 포퓰리즘은 단순 선진국만의 현상은 아니며, 정체(政體)라기보단 정치적 스타일에 가깝다보니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 개발도상국과 권위주의 국가는 세계화로 인한 폐해를 해결할 사회적인 부, 신뢰, 인프라, 시스템 등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해 더 위험하다는 걸 지적한 것이 인상 깊었다. 나만 하던 생각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몇몇 개발도상국 사례까지 들어 언급하니 더 실감이 잘 났다.


그럼 왜 이 책이 모두에게 별로인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 쓰여진 내용은 국제정치에 관심 많고 책 많이 읽는 계층의 시선에서 쓰여진 서평이기 때문이다. 부실하고 뻔한 책 내용은 그런 독자들에겐 큰 문제이지만, 세계적인 포퓰리즘 현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거나 책을 잘 읽지 않는 독자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들에게는 이 책이 괜찮은 책일 수 있다. 이론보다는 실화 위주고, 분량도 짧아서 읽기에도 편하며 어렵지 않은 책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자가 이런 사람들을 노리고 책을 쓴 거라면 나쁜 책은 아니다.


건질 내용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책이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분량만 좀 많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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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 최고의 범죄학자가 들려주는 진화하는 범죄의 진실
이창무.박미랑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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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에 대해 잘 몰랐던 사실이나 편견들을 잘 짚어준다. 한국 범죄 현황이나 범죄학 전반의 깨알같은 팩트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관심 있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특히 책 후반부엔 핫토픽인 여성, 아동 대상 폭력도 나오는데, 인터넷의 왜곡 선동 없이 분야를 정확하게 이해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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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말하다 - 세계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김환영 지음 / 프리이코노미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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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에도 나왔듯 독서광이나 박학다식한 사람들은 인터뷰가 진부하고 뻔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한 사람당 대화분량이 10-20분, 페이지로는 5-10페이지밖에 안 되는 게 문제다. 그래서 속독하면 별 내용 없다. 이 책은 정독해야 인터뷰어들의 핵심 포인트들이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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