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이 직면한 전환기란 18세기에서 19세기에로의, 
즉 성리학 지상주의의 동요기에서 쇠퇴기로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 전환기는 현대에서 본다면 신시대 탄생의 
태동기였다. 그러한 전환기의 고뇌를 황사영은 구시대에 
대한 반역자 바꾸어 말하면 신시대에 대한 건설자로서 
심각하게 맛보았다. 남인 · 중인 서민부녀 등의 피압박 
계급한테 환영되고, 성리학지상주의를 파괴하여 
신규범하에 신사회를 건설하려는 전통파괴적 작용을 하고 있었던 천주교의 지도자로서, 황사영이 시대에 앞서는 
지식인의 고뇌를 토로한 것이 황사영 백서였다.

반면 1894년 2월 입국 이후 4년간 이 땅 곳곳을 누빈 
이사벨라 버드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은 농민봉기를 ‘반란자들(rebels)‘이 아닌 ‘무장개혁가들(armed reformers)‘이 일으킨 ‘무장개혁운동(armed reform movement)‘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동학군이 부패한 관료들과 배반한 밀고자에 
대항해 우발적으로 봉기한 농민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왕권의 확고한 충성을 고백하는 그들의 선언으로 판단해 볼 때, 한국의 어딘가에애국심의 맥박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농민들의 가슴속뿐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동학군의 봉기는 과격한 충돌이나 쓸데없는 피 
흘림은 없는 것처럼 보였고 자신들의 개혁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한 시도에 자신들을 한정시키고 있었다. 
정부의 실정이 더 이상 지속될수 없고, 부패한 관리들의 
참기 어려운 강탈에 대항한 평범한 농민봉기보다는 훨씬 
큰 규모의 무장항쟁을 벌일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몇몇 외국의 동정은 동학군에게 쏠렸다. 
동학군은 너무나 확고하고 이성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반란자들‘이라기보다 차라리
 ‘무장한 개혁자들‘라고 부르고 싶다.

동학농민전쟁 연구 중 ‘대원군 밀약설‘을 다루고 있는 
연구들은 논점에 따라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첫째, 대원군이 동학농민군과 관계를 맺고, 농민군 동원을 
사주)하였다고 주장하는 소위 ‘대원군사주설‘이 그것이다.

둘째, 전봉준과 대원군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었다는 
소위 ‘대원군 연관설(이설)‘이 있다. 

셋째, 전봉준이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맞추어 ‘대원군‘의 
정치적 명성을 활용한 것으로 보는 ‘대원군 원격 활용설‘이 있다. 

본 연구는 특히 유영익의 소위 ‘대원군 사주설‘에 대한 비판적 사료 검토에 주안점을 두었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 이전 대원군과 전봉준의 
밀약설 주장은 강한 추정에 불과하다. 둘째, 대원군 사주에 의한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설에 동원된 기존 사료를 검토한 결과 ‘국태공 추대‘는동학농민군이 정부 관속에게 
보내는 ‘호소문‘, ‘화유문‘에만 나타나고있는 점에 비추어볼 때 동학농민군이 필요에 따라 대원군을 이용한 것으로 보
인다. 셋째, 대원군 측의 ‘사주‘ 내용이 실체적으로 확인되는 동학농민군의 재기포의 경우 대원군의 ‘사주‘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향한 일방적 ‘사주‘였고, 동학농민군은 이 실패한 ‘사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동학농민군 재기포의 목적은 ‘아국국토에 대한 침략‘(경복궁 무력 점령)을 
감행한 일본군에 대한 항거에서 비롯되었음을 재차 확인했다(이영재).

필자는 동학농민봉기를 "농민전쟁과 농민혁명으로 
간주하면서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투쟁이 고조· 
격화되면서 역사발전 법칙상불가피하게 일어난 민중운동이나 계급전쟁이라고 보는 민중주의와 민족주의 사가들의 
역사해석은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연역적으로 만들어진 도식적 역사서술의 산물이라고 본다.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민중혁명 필연론은 공산주의의 실현을 더 이상 반드시 구현되어야 할 역사적 진보나 필연으로 
보지 않는 냉전 붕괴 이후 신좌파들의 지적 흐름에 비추어 
시대착오적일 수 있으며, 저항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도 
어찌 보면 개인에게는 외세와 마찬가지로 억압기구이자 
탄압의 기제로 작용할 수 있는 거대담론이라는 점에서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운위하는 오늘의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라면, 오늘 우리의 지향이 썩지 않게 하는 성찰의 기억으로 역사는 쉼 없이 다시 쓰여야 한다. 

오늘의 한국인은 자본가와 노동자, 도시민과 농민,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민권자와 이주노동자 등 생각과 지향과 이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원화된 
시민사회를꿈꾼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둘러싸고 국제전과 내전의 포연이 가득한 이유는 침략의 과거사를 영광의 
역사로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가 결과할 미대상에 대해 
동아시아와 일본의 시민사회가 품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잘못을 나무라기 위해서는 내 결함도 살펴야 
하는 법이다. 반면교사로서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일본 내의 내전을 보면서 한국의 경우도 역사 교과서를
 반성적 · 비판적 입장에서 성찰해야 함을 절감한다.

왜냐하면 한국 시민사회도 타자와의 공존을 지향한다면, 
지난 고난의 역사에서 배태된 저항 민족주의에서 기인하는 배타성과 우월의식을 남의 눈을 감당할 수 있는 일반적인 
문제로 어떻게 환원시킬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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