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학자의 주관적 해석이 아니다. 역사가의 존재 이유는
사실 중심의 객관적 역사서술을 함으로써 시민 스스로
다양한 역사해석을 할 수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시대의 역사인
당대사(contemporary history)는 오늘 우리를 있게
한 토대이자, 미래의 진로를 비추는 등대다. 우리가 누리는 물적 풍요와다원적 시민사회는 그들의 피와 땀이 씨앗이
되어 거둔 결실이다.
그들의 삶의 발자취가 담긴 근현대사를 모르고 미래 시대의 앞길을 열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책의 목적은 현재진행형인 역사가들의 충돌하는
역사관의 요체를 황사영 백서(1801) 동학농민봉기
(1894-1895), 대한제국(1897-1910), 현행 검인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현대사 시술에 보이는 문제점,
그리고 근현대 문명전환의 주체를 둘러싼 논쟁등을
살펴봄으로써 역사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나름의 관건을
제시해보려는 데 있다.
-머리말 중에서
1980년대 신군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성장한 586
운동권 세대는1990년 냉전 붕괴 이후 실존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민중민주주의 계급혁명 (social revolution)을 꿈꾸어왔다. 특히 이들이 파워엘리트 집단으로 군림한 문재인 정권은
시민공동체의 통합을 해치는 분열의 정치와 역사 기억의
왜곡을 추동한 바 있다. 이들은 한세기 전 실패의 역사를
일본과 서구열강의 침략 탓으로 돌리며, 외세의 침락이
없었다면 조선왕조가 주체적으로 근대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강변한다. 1948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은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경제적 번영과 시민적 자유를 누리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기적과도 같은 성취를 일구어냈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한민국현대사를 친일파가 주도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부끄러운 역사라고 오도한다.
이러한 역사해석은 사실이 아니다.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학자의 주관적 해석이 아니다. 역사가의 존재 이유는 사실 중심의 객관적 역사
서술을 함으로써 시민 스스로 다양한 역사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근대란 무엇인가? 부르주아지가 일찍 자라난 선발국 영국과 프랑스에는 굴뚝과 인권 세우기가 함께 행해진 시대였고,
그렇지 못했던 후발국독일과 일본에는 인권을 유보한 국가주도의 산업화가 추동된 시대였다. 백색 전체주의로 갈 수밖에 없었던 후발국 일본과 독일의 역사 경험에 비춰볼 때
개인의 발견이 없는 한 우리에게 진정한 근대는 없다.
그렇다면 국가권력의 횡포에 맞서 개인의 기본권인 신앙의 자유를 쟁취하려한 백서의 역사성도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는 먼저 황사영은 누구이고, 백서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다음으로 조선왕조에서 오늘에 이르는 역사관에 따라 다른 역사가들의 백서에 대한 평가를 살펴본 후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시좌에서 백서에 대한 나름의 관견을 밝혀보려 한다.
역사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나 사실에 입각한 역사서술이어야 하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