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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대사상사론 한길그레이트북스 71
리저허우 지음, 임춘성 옮김 / 한길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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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책상 위에는 3권의 ꡔ중국 근대사상사론ꡕ이 놓여 있다. 베이징 인민출판사본(1979년)과 안후이(安徽) 문예출판사본(1994년), 그리고 톈진(天津) 사회과학출판사본(2003년). 10여 년 간격으로 판본을 거듭하여 재출판되었다는 것은 개혁․개방 시기의 중국에서 이 책이 지니는 무게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처음 책이 출간되고 25년이 넘었으니 한국에서 이제 번역․출간된다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늦은 봄 꽃 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 코에 대는” 격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사실 한동안은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 빨리 번역해주어서 이 책을 읽는 개인적인 수고를 덜 수 있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격으로 조금씩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워낙 난해한 문장이 많아 우리말로 옮겨놔야만 내용의 구석구석이 명료하게 와 닿는 아둔한 내 공부방식의 탓도 있었으리라.

처음 이 책을 번역하면서는 연구관심 영역을 사상쪽으로 넓히는 것과 시기적으로 ‘근대’로 거슬러올라 간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나름대로는 자못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번역하는 동안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혔고, 그때마나 원고를 던져두었다 다시 잡곤 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처음 중국문학에 입문할 때 류다제(劉大杰)의 영인본『중국문학발전사』를 보면서, 제자백가서와 역사서가 문학사에서 서술될 수 있다는 사실이 퍽 경이로웠고, 그 경이로움으로 석사과정 첫 학기에『사기』(史記)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선진(先秦)시기와 진한(秦漢)시기의 문장을 읽어내는 일이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독회를 통해 원전들을 읽어나갔다. 돌이켜보면 박사과정 수료 직후 근현대문학으로 방향을 바꾸기 전까지, 대학원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원전강독과 씨름하면서 보낸 셈이다. 그것을 밑거름으로 삼아 문사철(文史哲)을 경계 없이 넘보고자 했으며, 나름대로 오늘날 중국 및 중국학에 대한 커다란 그림 한 가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중국학의 기본은 문사철의 통합적 이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고가 바탕이 되었기에 과감하게 이 책을 번역․출판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집중적으로 번역한 때는 1998년 9월부터 1999년 8월까지 옌타이(煙臺) 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던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그 기간은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이 책의 번역작업 틈틈이 손에 잡은 책이 진융(金庸)의 작품이었고, 그것을 계기로 무협소설 연구에도 손을 대고 계속 영화로 이어지는 등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옌타이 대학에서 안식한 그 1년은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자 이 책의 번역에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관심으로 량치차오(梁啓超) 관련 문장을 번역한 것은 1995년 무렵이었고, ꡔ중국 근대사상사론ꡕ을 우리말로 모두 번역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97년 한길사의 제안을 받았을 때였다. 꼬박 10년이 걸린 더딘 작업이었다. 김태성 선생의 소개로 홍콩에 가서 류짜이푸(劉再復) 선생을 만나 밤이 이슥하도록 근현대 중국의 역사와 혁명을 논한 것이 2002년 가을이었고, 류짜이푸 선생의 주선으로 미국에 체류하는 리쩌허우 선생에게서 출판동의를 받았다. 곳곳에 벌겋게 표시를 해두었던 요령부득의 문장을 가지고 리쩌허우 선생과 여러 차례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번역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리쩌허우의 문장은 난해하다. 그의 3부작이라고 하는『중국 고대사상사론』,『중국 근대사상사론』,『중국 현대사상사론』가운데 나의 경우는 유독『중국 근대사상사론』이 난해했다. 그 난해한 원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는데, 첫째는 문장의 호흡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이다. 둘째는 인용하는 원전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자신의 논의 전개에 종횡으로 배치하되 그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날것이 많다는 것이다. 셋째는 도치문을 빈번하게 사용한 데서 오는 난해함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법은 번역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몇 가지로 수렴되었다. 첫째, 원문의 맥락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한 문장을 여러 문장으로 과감하게 나누었다. 둘째, 명확하게 인용문 출처를 밝힌 것을 제외하고는 원전에 있는 수많은 인용 표시를 생략하여 문장 안에 흡수하여 번역하되, 가능한 한 원전을 거의 확인하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의 인용 오류 혹은 인쇄상의 오류 확인도 적지 않았다. 이는 필자와 상의 후 정정했다. 셋째, 문장의 도치는 레토릭의 일종이거나 필자 특유의 문체이므로 최대한 존중하되 우리말로 옮겼을 때 어색한 경우에는 문장 구문을 정치(正置)시켰다. 그리고 근현대문학 연구를 하면서 별다른 필요를 느끼지 않던 자전을 다시 꺼내 들었다. 특히 ꡔ漢語大詞典ꡕ(1~12, 漢語大詞典編纂委員會 漢語大詞典編纂處 編纂, 漢語大詞典出版社)의 도움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1999년 가을, 번역의 초고를 마쳤을 때는 이 책을 김명호 선생의 주관 아래 출판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 즈음에 김 선생은 <마르코 폴로 총서>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옮긴이에게 여러 가지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때의 따뜻한 성원에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의 출판과 관련하여 유세종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유세종 교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번역 초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고 교정했다. 이 과정을 통해 적지 않은 오역을 발견하여 바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직역 위주의 문어투를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바꿀 수 있었다. 특히 ‘아름다운 한국어’를 고집하는 그는 문장의 리듬과 단어의 선택에서 거의 소모적이리만치 나와 피곤하게 논쟁하기도 했다. 탄쓰퉁 부분을 교정하면서 울었다고 하는 그는 수시로 날카로운 비판과 격려로 나를 지지해주었다. ‘난해한 암초’를 만나 내가 너무 오래 딴전을 피우고 있으면, 이 번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고 하면서.


최근 나의 연구와 관련된 교류는 주로 목포대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학술공동체를 지향하는 아시아문화연구소의 동아시아학술포럼은 내가 주로 노니는 중국현대문학학회 이외의 또 하나의 학문적 둥지다. 그곳에서 학제간 연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분과학문에 매몰되기 쉬운 연구의 균형감각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인문관 교수들의 공부모임인 ‘문학/문화 이론연구회’는 부족한 공부를 서로 채찍질해주는 유쾌한 시공간이다. 몇몇 동료 교수는 이 책의 출간이 늦어지는 것이 나의 게으름 탓이 아닌가 하고 충고와 격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10년을 헤아리는 시간을 함께해온,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할 동료 교수들에게 두루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처음 번역을 제안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난삽하고 방대한 원고를 꼼꼼하게 교정하고 우아한 책으로 꾸며준 한길사 편집부의 안과 밖 식구들에게도 모두 감사를 드린다. 옮긴이의 불성실로 인한 오류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강호제현의 날카로운 비판과 충고로 계속 수정 보완할 것을 기대한다.

이 책은 안후이 문예출판사본(1994년)을 저본으로 삼았고 베이징 인민출판사본(1979년)과 톈진 사회과학출판사본(2003년)을 참고하였다.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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