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과 타자화 스투디움 총서 3
임춘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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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현대문학사 쓰기의 새로움과 낡음

 

 

1. 임춘성은 내게 '펑요''따거'이자 '쉬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서평 관례를 깨뜨리고자 한다. 서평이란 이름 아래 지루하게 책을 요약하고나서는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눈꼽만큼의 비평, , 이미 '빨아준' 범죄에 대한 알리바이를 어설프게 덧붙이는 식의 드립질은 하지 않으려 한다. 책 내용에 대해서는 임춘성 스스로가 책머리에 붙인 간결한 설명과 인터넷 쇼핑몰에 떠있는 출판사의 소개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먼저 자잘한 것부터 트집 잡아 보자. 임춘성은 근대, 현대, 당대라는 말 대신 셴다이, 진다이, 당다이란 말을 쓴다. 왜 그랬는지가 이 책에서 속시원하게 밝혀 있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었다. 아마도, 중국 대륙에서 통용되던 삼분법, 그러니까 근대는 아편전쟁 이후, 현대는 5.4운동 이후, 당대는 1949년 이후를 가리키는 바의 홍색-파쇼적 용례를 임춘성 스스로가 지향하는 바의 '동아시아 근현대'와 비판적으로 구분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책값이 115위안이 넘으니까 독자에 대한 서비스로서는 형편없는 셈이다. 반면에 'post-socialism''后社会主义''hòushèhuìzhǔyì'에 상응하는 한글 표기가 아니라 '포스트사회주의'로 표기된다. 아마도, 무엇보다 '포스트'에 담긴 여러가지 뜻을 죄다 살리기 위함일 텐데 암튼 '셴다이' 등과는 대조가 된다.

이 책은 첫 글 "120세기 중국문학과 두 날개 문학"이 제일 중요하다. 원래 논문의 제목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과 타자화의 정치학"에서 이 책 제목 <중국 근현대 문학사 담론과 타자화>가 나온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담론들을 아주 계몽적으로 잘 요약, 소개하고 있다. 임춘성의 입장은 뒤 부록에서 번역한 황쯔핑 등의 담론과 판보췬의 담론 등이 그 이전의 다른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들에 비해서 타자를 억압, 배제, 침묵시키는 바의 한계를 일정하게 극복했다는 것이다. 임춘성은 이런 맥락에서 '센다이' 등의 기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국족(國族)' '국족주의' 등도 너무 거슬린다. '셴다이' 식이라면 '국족''궈쭈'가 되었어야 했다. '국족'이란 말은 국민국가와의 연관 때문에, 그리고 손문 이래 중국에서의 용법을 감안해서 쓰고자 하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내 생각에는 네이션, 내셔널리즘 등이 더 낫을 것 같다. 아니면, 맥락에 따라서, 국민이나 민족 등으로 나누어 쓰거나 말이다. 아무튼, 국가를 갖지 못한 네이션이 지구상에 적지 않다는 점, 그리고 네이션과 에스닉의 차이라는 것도 임춘성이 즐겨쓰는 바의 타자화라는 역사적-정치적 과정의 결과로서 담론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이지 무엇인가 그 자체로 실체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사람 이름의 표기도 헷갈린다. 무협소설가 김용은 진융으로, 영화 감독 왕가위는 웡카와이로 표기되어 있다. 대륙의 표준 중국어 발음이 아니라 광동어 발음을(김용의 경우), 또는 더 나아가서 본인이 원하는 영어식 표기를(왕가위의 경우) 한글로 적어낸 것이라고 짐작된다. 레이 초우(周蕾)는 홍콩 출신 아시아계 미국인이어서 그런 순서인 거고, 얼마 전 서거한 렁핑콴(梁秉鈞)은 아마도 웡카와이식 표기인 듯하다. 이 점에서 임춘성의 원칙은 분명하고 일관되어 있다. 중국 사람 이름이라고 해서 모조리 대륙의 보통화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은 궈쭈적-언어적 폭력일테니까.

그렇지만, 소설 <장한가> 주인공 이름은 '왕치야오'인데, <천룡팔부> 주인공들의 이름은 '소봉' '단예' '허죽'으로 표기되어 있다. 소설에서 '교봉'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소봉'으로 이름을 바꾼다. 그런데, 왕가위/웡카와이식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 '蕭峰'의 올바른 표기는 '소봉'도 아니고 'Xiāofēng'에 상응하는 한국어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를 계속 밀고나간다면, 이제 蕭峰, 적어도 임춘성의 책 안에서는, 몽골어에 가깝다고 추정되고 있는 거란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해야 맞을 것이다. 진융이야 제 소설 안에서 蕭峰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작가의 이름의 경우, 내게, '왕안이''왕안억'보다 친숙한 것은 분명하다. 왕안이라는 소리 기표가 王安憶이라는 문자 기표보다 먼저 와서 내가 그것에 내내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용의 경우는 다르다. 내게, 모택동이 마오쩌둥과 엇비슷하거나 혹은 약간 더 우세한 것과도 엄청 다르다. 임춘성의 책을 보기 전까지, 나는 진융이란 기표를 귀나 눈으로 접해본 적이 전혀 없었다.

어쨌거나, 임춘성은 이 점에서 나름의 분명한 원칙과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중국 문학사 담론과 관련된 임춘성의 기표적 민감성은 여전히 낯설고 껄끄럽다. 저자 스스로도 무협소설 주인공의 이름 표기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러했듯이, 고유명사나 통용되는 개념의 관례적인 표기는 그 나름대로 존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 문제는 따지기로 치면 밑도 끝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2. 이 책 뒤에는 부록으로 중국 근현대문학사론 관련 논문이 두 편 번역되어 있다. 황쯔핑 등의 것과 판보췬의 것이다. 둘 다 중국 근현대문학사에 관한 이론적 성격의 글들이다. 전자(1985)는 소위 삼분법을 넘어서서 '20세기 중국문학'이라는 개념을 제출하고 있고, 후자(2007)"통속문학과 두 날개문학"이라는 번안된 타이틀을 달고 있다. 이 두 논문은 중국 근현대문학사에 관한, 임춘성의 주장과 입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제시된 것이다.

이제 이것들에 시비를 걸어서 2:1, 혹은 4:1로 붙어보자. 물론, 이 싸움의 책임이, 엄밀히 따져서 임춘성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황쯔핑 등의 글은 앞부분에서 '세계문학'을 언급하는 데서 짜증이 확 나버렸다. 황씨 등은 괴테와 <공산당선언>을 인용하면서 세계문학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문학이 초보적으로 형성된 시대가 20세기, 혹은 그 상한선이 19세기 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1980년대 초반 문학운동의 기억에 기대서 내뱉는 한에서, 이들의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은, 시인 고은 등이 최근 몇 년 동안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 나라 안팎에서 벌여온 추잡한 앵벌이짓만큼이나 아주 웃긴 것이고, , 왕쯔핑들 스스로 괴테와 <공산당선언>에 기대는 한, 그 시기 획정도 틀린 얘기다. 이들의 세계문학 개념도 무슨 얘기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특히 내 뚜껑이 확 열려버린 까닭은, 황씨 등이 그 시기와 관련해서, 괴테 얘기를 꺼내면서 각주에서 소위 세계문학의 개념은 "괴테가 중국 전기(傳寄)--아마도 <風月好逑傳>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읽은 후 형성된 생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317) 스치듯 덧붙였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 대목에서 '짱꼴라 문발이'들의 내셔널리즘이 은근히/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소위 세계문학이라는 '장궤(掌櫃)'에서 고작 꺼내든 게 바로 괴테에 의지한 바의 자기네 고전, 그것도 고작 <풍월호구전>이라니. 그러니까, 내 말은 "<금병매><홍루몽>이라면 몰라도"라는 얘기다. 이 둘은 나도 들었다가 놔 보기는 여러 번 했으니까.

에커만과 나눈 대화(1827.1.31)에서 괴테가 세계문학을 언급한 대목에서 중국 작품을 예로 든 것은 사실이고, 괴테가 일정하게 상당한 중국 취향에 빠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괴테가 소위 세계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바로 그 개념을 형성하게 된 것은 단지 '짱깨' 안에 든 것 말고도 꾸란이라든가 페르시아의 고전 시라든가 여러 비유럽 텍스트들 모두를 통해서다. 괴테가 거기서 <겐지노모노가타리>를 언급했으면 어쩔뻔 했냐, 너희들은.

괴테가 세계문학을 말하면서 예로 든 작품이 과연 <호구전>인지 아닌지는 현재 내 수준에서는 정확히 가려낼 수는 없다. 어쨌든 간에, 어떤 이는 그게 <화전기(花箋記)>라고 하고 어떤 이는 <옥교리(玉嬌梨)>라고 하고 있다. 아무튼, 유럽에서 <호구전>1766년에, <화전기>1824년에, <옥교리>1826년에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 셋 모두, 보통사람은 겪기 어려운 기묘한 애정 관계를 다룬, 명말청초의 소위 재자가인 소설이다. 아마도 이 소설들은 18세기에서 19세기 초에 광동 지역에 접근한 유럽인들(처음에 온 사람들은 아마도 상인들)에 의해서 유럽으로 전파된 듯하다.

물론 나는 이 셋 모두 읽어보지를 못해서 그것들이 <금병매>보다 문학적으로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홍루몽>보다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제재와 그 제재를 다루는 태도라는 점에서 이 재자가인 애정소설들이 <금병매><홍루몽>이 이루는 커다란 서사 사이클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또한, <홍루몽>의 갑술본 초본이 간행된 것은 <호구전>이 유럽에서 간행된 1766년보다 이전이었으므로, <호구전>과 비교할 때, <홍루몽>이 유럽에 더 먼저 전해질 수 있었던 형식적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황씨 등은 '아마도'라는 부사로 한정하기는 했지만, <화전기><옥교리>보다는 훨씬 앞서서 유럽에 소개된 <호구전>을 예로 들고 있다. 경박한 내 머리로는 황씨 등의 의도가 아주 금방 쉽게 이해된다. 그들은 중국문학사의 작품이 유럽에 전래되어 그것이 괴테에게 영향을 미친 시기를 가능한 한 앞당기고 싶은 것이다. 세계문학의 형성 시기를 늦추고 싶었듯이.

그러나, 괴테가 세계문학을 말할 때 정작 마음 속에서 간절히 떠올리고 있었던 것은 '하나의 보편적인 유럽문학'이라고 나는 감 잡고 있다. 그런데, 그 유럽문학이라는 것은, 그리스나 라틴의 고전문학이나 괴테의 동시대 직전까지 프랑스문학이 지녔던 문화적 헤게모니가 주는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서 바야흐로 독일문학을 승격, 포섭시키려고 했던 한에서의 바로 그 유럽문학인 것이고, 이 과정에서 비유럽의 여러 텍스트들은 단지 조연이나 엑스트라 수준에서 등장한 것이라는 게 내 '통박'이다.

특히, 유럽에 번역된 <화전기>에는, 설화 등에서 전래된 여러 전설적 미인들의 목각판화 카탈로그인 <백미신영(百美新詠)>이 도판 이미지는 빼고 글 부분만 번역되어 부록으로 달려 있다. 또 바로 그 뒤에는 청나라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그리고 중앙 부서의 재정에 관한 사항이 부록으로 달려 있다. , 여자와 돈이라니!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에게는 이게 오리엔탈리즘 판타지의 전부가 아니던가(http://archive.org/details/chinesecourtshi00thomgoog).

아무튼 이 중국 미인들 얘기에서 푹 빠졌던 괴테가 시 몇 편을 짓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이 얘긴 중국에서 1930년대 초에 이미 알려졌다. 임춘성 책의 독자들이라면, 이 시들이 로맨티시즘/에로티시즘과 오리엔탈리즘이 전형적으로 결합한 소산이라는 것을 굳이 사족으로 달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판보췬 얘기도 별로 어려울 건 없다. 다만, 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왜 소위 통속'문학' 작품들만이 중국 근현대문학 안에 들어가야 하는가다. 양달(楊達)이 일본어로 쓴 작품은 왜 중국 근현대문학사 안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가? 임소(林昭)의 혈서는 왜 문학 작품이 아닌가? 고준(顧准)의 일기는 왜 중국 근현대 문학의 날개가 될 수 없는가? 푼왕(Phuntsok Wangyal, 平措汪杰)의 자서전은 왜 또다른 날개가 되지 못하는가? 결국 이러한, 한국 80년대식의 프로메테우스적 물음에 제대로 답하고자 한다면 중국 근현대문학은 두 날개로 나는 새가 아니라 수십 개의 촉수를 지닌 에어리언이나 여러 개의 목을 가진 히드라로 표상되어야 한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관점이나 오리엔탈리즘의 비판이라는 입장에서 냉정하게 본다면, 결국 괴테의 세계문학 논의에서 중국문학 작품이 부차적으로 끼어들어가는 것이 정작 중국문학 입장에서는 자랑할 일은 결코 아니다. 아무튼, 그 이전까지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 자국 문학을 소위 세계문학 안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괴테가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황씨 등은 중국문학에 대해서 하려고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서 임춘성 책의 미덕이 드러나는 셈인데, 임춘성은 바로 황씨 등의 이러한 프로젝트에서 타자화되고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비판적으로 다루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3. 차 여러 잔 마실 시간이 지났으므로, 이제 임춘성과의 보스전을 치뤄야 한다. 사실, 이건 자신 없는 분야다. 내가 익힌 무공이래봤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은 능파미보(凌波微步)와 동귀어진뿐이기 때문이다. 동귀어진은 엄밀히 말해서 무공이랄순 없는 일종의 전술인 거고, 능파미보도 구결로만 알고 있는데다가 얼마 전에 생긴 오른쪽 아킬레스 건 염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저자와 독자가 겨룰 때 결국에는 독자가 유리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냐면, 어느 책이든 독자는 읽어나가면서 그 전에는 전혀 몰랐던 외공들을 두루 익힐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 독자야말로 흡성대법(吸星大法)의 대가인데, 바로 그 흡성대법으로 저자 평생의 내공을 죄다 빨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서는 저작이나 집필보다 즐겁고 쾌락적이다. 읽기가 쓰기보다 더 좋고 낫다.

임춘성이 잘 쓰는 비평적 용어로 '두꺼운 텍스트'라는 게 있다. 그는 김용 소설들과 왕안이의 <장한가>의 분석에서 이 개념을 쓰고 있다. 그는 미국 인류학자 기어츠로부터 이 개념을 전수받았다고 말한다. 임춘성이 밝히는 사문 내력에 의하면, 임춘성의 사조, 그러니까 기어츠의 사부는 철학자 길버트 라일이라는 것이다. 기어츠는 '두꺼운 기술(thick description)'이란 개념을 라일로부터 빌어 왔고, 임춘성 자신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복합적인 의미구조를 가진 텍스트를 '두꺼운 텍스트'로 상정하고, 그런 텍스트가 가지는 문화적 함의를 '문화적 두꺼움'으로 명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253). "그렇다면" 하고나서, 나는 속으로 외친다. "쫄지마, 별 거 아냐"

'두꺼운 기술'이란 개념은 영미의 1960년대 분석철학이나 1970년대의 인류학과 같이, 그 전까지는 아주 팍팍하고 삭막한 행동주의적-실증주의적 동네, 그러니까 산해관 바깥에서야 그럴듯하게 통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복합적인 의미연관 혹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맥락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수백년 전부터 '구라파'(임춘성이 싫어하는 바 동방불패류의 바늘이닷!)에 있었다. 20세기 들어와서도 철학 분야에서는 해석학, 그리고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이해의 사회학'쪽에서 많이 했던 얘기다. 또 외국문학 연구 쪽에서는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되, 중원의 문학(비평)판에서는 아주 흔하게 떠돌던 식상한 얘기다. 이런 당연하고도 초보적인 무공을 상대가 여러 번 되풀이해서 자주 쓸수록 초식 대결은 더 편하다. 뒷짐 지고도 다 막아낼 수 있으니까.

물론 임춘성의 사부가 기어츠 하나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강호 무림과 서역 등의 변방 에서 임춘성은 온갖 기연을 겪고 기인을 만났다. 그 중에는 포모파의 고수들, 포콜파의 고수들, 그리고 동아시아 담론파의 고수들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굳이 사제지간의 법도와 예 없이도 춘성에게 무공을 전수했다. 춘성은 '타자화' 비판이라는 무공을 포모파의 복가(米歇尔·福柯) 선사에게 배웠다. 중국 근현대사상사파(개방파?)의 개조 이택후는 실용이성이라는 무공을 동파육 한 접시와 바꿔서 춘성에게 가르쳤다. 실용이성은 남을 쉽게 이기기도 힘들지만 남들에게 쉽게 지지도 않는 그런 무공이다. 예컨대 오늘날 중국 바둑 기사들의 공통된 기풍처럼 말이다.

두꺼운 기술이라는 무공이 별 거 아님에도 불구하고 춘성이 크게 다치지 않고 강호를 떠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실전에서 여러 고수에게서 배운 다른 무공들을 섞어 썼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 춘성의 기골이 장대한 데다가(그의 장딴지 굵기를 보라!), 십 몇 년 전에 김용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임독 양맥이 트인 뒤로는 누구와 대련하더라도 싸우면서 바로 그 사람의 무공을 조금씩 훔쳐배워서 두루 쓰는 바의 재주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임춘성이 사귄 고수들 중에 강호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문파인 포사파에 속한 이들이 있다. 포사의 정식 명칭은 포스트사회주의다. 포사파는 문화대혁명이 종료되고 중국 대륙이 대놓고 자본주의로 회귀, 전환하면서 생겨난 문파인데, 원래 이 문파는 '신시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신시기 문학이란 말이 굉장히 엉성하고 애매하기 때문에 문파 이름을 바꾼 것이고 그 뒤로 크게 문파의 세를 떨친 것이다. 포사파의 무공은 '독고구검' 같은 것이어서 본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고 자본주의로 회귀, 전환해버린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정해진 초식 없이 모든 유형의 초식을 이기는 것이다. 임춘성은 포사파의 무공 심결을 바탕으로 해서 포모파, 포콜파, 동아시아 담론파, 중국 근현대문학 연구파의 무공을 종합해서는 중국 근현대문학사 새로 쓰기를 평정하려고 하는 바의 원대한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 평정의 한 시도가 바로 이 책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중국 근현대문학사 연구라는 정파와 문화연구라는 사파를 아우르면서 개최한 무림대회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무림대회에 독자-구경꾼으로서 참석한 셈이다. 나로서는 각주나 참고문헌의 무림첩에 나와 있는 이름들과 비급 목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많았다. 인명 색인에 나와 있는, 초청된 무림 인물들 숫자만 해도 300명이 넘는다. 13과장으로 이루어진 이번 무림대회에서 매번 임춘성은 위명이 쟁쟁한 무협들과 각 문파의 장문인급 고수들로 하여금 서로 초식 대결을 시키고난 다음에야 자기 무공을 슬쩍 펼쳐보인다.

무림대회의 회주답게 임춘성은 초청된 세계적인 무협들을 독자들에게 잘 소개해준다. 무협들의 이름과 그들의 무림비급, 그리고 무협들의 주요 내력과 은원관계와 무공의 핵심 비결을 간결하게 잘 정리해주고 있다. 이번 무림대회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많다. 예컨대, 황씨 등이 '20세기 중국문학' 개념을 내세우면서 그 기점을 1898(무술!변법)으로 내세웠다는 것, 또 판씨가 "고대문학의 노선에서 근현대문학의 노선을 환승하는 지점"이 바로 <해상화열전>(1892)라고 주장한다는 것 등이다.

정파 쪽에서는 무명소졸이지만 녹림 쪽에서는 좀 놀던 나로서는 의심스러운 게 하나 있다. 과연 회주 임춘성은 과연 과두문자로 된 비급 <해상화열전>을 읽어보기는 했는지. 미리견합중국(美利堅合眾國)에서 사망한 여협 장애령이 일찍이 이 비급을 중원의 만다린어로 번역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번역된 비급을 읽는 것은 우리는 읽은 거로 쳐주지 않는다. 일찍이 '협객행'을 해본/읽어본 우리로서는 과두문자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몸으로 읽어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과연 그 비급을 직접 읽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졸립고 지루한 건지가 매우 궁금하다는 건데, 아무튼 책 뒤 부록의 판보췬의 글은 사실 내 입장에서는 영화 <해상화열전>보다 훨씬 더 지루했다.

 

4. 다시 '두꺼운 텍스트'로 돌아가서 말한다면, 텍스트 자체에 두껍고 얇은 게 있는 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두꺼운 기술이라는 개념에서 두꺼운 텍스트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고 쓰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이고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두껍든 얇든, 기름지든 퍽퍽 하든, 복합적이든 단순하든 간에, 어떤 대립적이고 이원적인 규정을 통해서라고 할지라도, 텍스트 자체에 귀천이 있다는 식의 접근은 본디 '문화연구'의 정신이랄까 태도에는 반하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근대국가를 단위로 한, 그것도 근현대의 문학사의 서술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소위 정전 개념 자체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정전 개념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까탈스런 입장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할지라도 말이다. 문학사 서술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예시적으로 열거하거나 설명하는 행위 자체가, 더 무언가 정전에 속하는 듯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임춘성이 '두꺼운 텍스트' 개념을 만들어 내고 이 개념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한 것은, 한편으로는 문학사 서술에서 불가피한 바로 그 정전 개념의 난점을 우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예컨대, 문화연구 분야에서 잘 알려진 바르트 식의 텍스트 이분법(lisible vs. scriptible)의 엘리트주의적 성향도 일정하게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핵심은 임춘성이 두꺼운 텍스트로 분류한 작품들이 과연 어떠한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이 책에서 임춘성이 공들여 다룬, 김용의 소설들, 가오싱젠의 소설, 왕안이의 소설이 중국 근현대문학사 연구 및 포사 문화연구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임춘성 자신의 연구나 비평이 두껍게 이루어진 결과로서 획득된 것이지, 그것들 자체가 두꺼운 텍스트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오싱젠과 왕안이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적어도 왕안이의 작품은 기회가 닿으면 꼭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을 이번 기회에 가지게 되었다. 왕안이 작품에 대한 임춘성의 연구-비평적 디스크립션은 두텁게 성공한 것이다. 한편, 나는 가오싱젠의 작품에는 끌리지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바로 임춘성의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원래 이런 류의 서사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가오싱젠은 그 자체로 매우 지겹고도 싫다. 노벨상을 탔다고는 하지만 내게는 그다지 노벨스럽지 않다.

임춘성의 경우, 전반적으로 각 글들의 많은 분량이 해당 분야, 그러니까 여러 '문파'들의 선행 이론이나 연구나 비평의 소개에 할애된 것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다 갖는다. 대학 상급생이나 대학원의 연구 입문자에게는 필수적인 배경 지식을 선별, 요약해서 알려준다는 점에서 아주 긍정적일 것이다. 아무래도, 중국문학 연구자들에 대한 과거의 내 선입견 내지는 편견에 의하면 특히 그렇다. 문화연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문학 연구자들이 무식 내지는 무지하다는 게 과거의 내 견해였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에 내가 읽어본, 중국 문학연구 분야의 글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기는 하다.

나쁜 점은 선행 이론이나 연구나 비평에 대한 상당 분량의 요약이나 설명, 혹은 더 나아가서 이런 것들끼리 서로 토론시키는 바의 소위 다성적 접근은 그것 자체로 힘이 부치고 지면을 많이 잡아먹는 법이라서 그런지, 정작 임춘성 자신이 자기의 목소리로 논해야 할 대목에서는 싱겁게 끝나버린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특히, 타이완과 홍콩에 관한 글이 심했고, 제일 실속이 없는 글은 중국 근현대문학 연구 성과를 개괄한 제13장이었다.

다른 이들의 견해에 대한 소개 및 요약이나 설명 등이 많다는 것은, 달리 이해하자면, 그 만큼 중국 근현대문학사 연구에 임할 때 문화연구에 아주 친화적이라는 임춘성의 입장이나 관점 자체가, 한국에서 이뤄지는 중국 근현대 문학사 연구 및 서술의 장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타자화되어 있다고 임춘성이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곰곰이 따지고 본다면, 문학 분야에서든 그 밖의 다른 분야에서든 '근현대'의 형성이라는 것은 담론적으로 보아서 소위 타자화의 메카니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것은 어느 국민국가에서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소개 등에서 힘을 빼버려서 정작 제 이야기는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랑은 이번의 이 책으로 충분한 듯싶다. 앞으로는 두텁든, 깊든, 꼼꼼하듯, 섬세하든 간에 임춘성 나름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다.

타자로 배제되었거나 억압된 작품들을 문학사에서 발굴해내는 일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배제되었거나 억압된 작품들을 중심에 놓고 말한다면, 문학사라는 것은, 정전을 중심으로 한 영광스러운 만신전이 아니라 결국 일종의 버려진 낡은 묘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버려져서 터만이 남은 옛 묘지에서 묘비명도 없이 묻힌 작품들을 찾아내서 그것을 조심스레 이장하거나 안장하는 행위는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다. 문학사적 유골 파편을 정밀 감식하는 일은 연구자 자신의 개성적인, 동시에, 임춘성 자신의 표현을 빌면, 두꺼운 비평적 실천의 목소리에 의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비평적 실천은 결국 일종의 굿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무당-연구자의 목소리와 죽은 저자-텍스트의 목소리를 동시에 듣게 되는 것이다

 

* 이 글은 [문화/과학] 74호에 실린 이재현(문화평론가)님의 서평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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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과 타자화 스투디움 총서 3
임춘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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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과 통섭을 위하여

 

 

1.

 

중국 근현대문학은 세계문학사의 맥락에서는 제3세계문학에 속하는 주변부문학이고, 한국문학계에서는 비주류문학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문학을 업으로 삼다 보니 본업뿐만 아니라 중심부와 주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문사철文史哲을 근간根幹으로 하는 중국학sinology에 대한 공부 또한 게을리 할 수 없었고 나아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등의 사회과학에 대해서도 공부를 등한시할 수 없다. 이들 공부는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총체적 관점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선택은 개인의 자유의지였지만 세계문학사와 한국문학계의 담론권력 구조에서 주변이자 비주류인 중국문학을 선택한 순간 내 공부의 운명도 결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문학 분야에서 중심은 영미와 프랑스 중심의 서유럽문학이었고, 한국문학계에서는 서유럽문학과 교배한 한국문학이었다. 중국문학은 2천 년이 넘는 연속적 흐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학사와 한국문학계에서는 제3세계문학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나마 고대문학 작품 몇몇은 고전으로 인정되어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지만, 근현대문학의 경우에는 한국문학계라는 콘텍스트에 부합할 때 잠시 주목을 받는 장신구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문학은 문자 그대로 중국과 문학으로 구성된다. 전자에 방점을 두면 중국연구Chinese studies의 일부로서의 중국문학이 되고 이때 문학 텍스트는 중국 이해하기의 사례 또는 경로로 자리매김 된다. 문화연구에서도 그것은 서양 최신 이론의 가공을 기다리는 원재료이기 십상이다. 이를 돌파하는 방법으로 지금 여기now here’가 거론되지만 그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다. 후자에 중심을 두면 보편적인 문학 일반 가운데 특수한 중국의 문학이 된다. 중국 중심의 사유와 문학 중심의 사유가 중국문학 내부에서 화합하기는 쉽지 않아서 지금껏 중국문학은 중국과 문학을 아우르기보다는 양자의 교집합을 대상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해온 셈이다.

중국 근현대문학은 여기에 근현대라는 범주를 추가한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중국문학그리고 근현대의 교집합만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영역을 축소했다. 이제 그 울타리에서 나와 중국과 중국, 문학과 문학 그리고 근현대와 근현대를 횡단하고 나아가 이들을 통섭하는 것을 공부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공부는 학문의 경계에 놓여 있다. 경계는 담론 권력의 바깥을 주변화 시킨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변의 관점에 철저할 필요가 있다. 주변의 관점은 우리에게 철저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간 세계문학의 주변부였던 한국문학은 국내에서 중심부 서양문학과 손을 잡고 기타 문학을 다시 주변화 해왔다. 주변이 그 장점을 온존하면서 중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담론권력 구조에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은 내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부분이 근현대적 분과학문 체계를 뛰어넘어, ‘예술과 학문과 사회 간의 수평적 통섭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인류 앞에 통제사회와 문화사회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는 심광현의 주장을 음미해야 할 지점이다. 지역연구와 문화연구는 분과학문 체계에 갇힌 중국문학 연구에 학제간의 횡단 나아가 통섭의 가능성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2.

 

근현대문학이란 개념에 처음 생각이 미친 것이 벌써 15년이 넘었다. 20세기중국문학사 담론의 제출과 확산 과정을 보면서 담론에 작용하는 권력을 인지했고 그것이 텍스트를 선택하고 지배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를 이 책에서는 타자화othernization’라 이름했다. 이 지점에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의 만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책을 관통하는 방법론이 있다면 그것은 푸코에게 빚지고 있다. 처음부터 푸코를 독파하고 내면화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 근현대문학의 연구 현장에서 가졌던 문제의식들을 헤쳐 나오다 보니 어느 지점에선가 푸코를 만나게 되었다. 푸코의 담론 개념은 배제exclusion’를 전제하고 있다. 그의 기본적인 가설은 이렇다.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재하는 일련의 과정들담론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담론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담론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 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배제의 과정들이라 일컬었다. 회의주의와 비환원적 태도를 특징으로 하는 푸코의 시선을 통해 보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문학 등의 근현대 분과학문과 대학 제도라는 관행의 이면에 무엇인가 작용해왔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푸코는 그것을 권력훈육 권력’, ‘지식 권력’, ‘담론 권력등등이라 일컬었고 푸코의 학문적·실천적 삶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스트주의postism 또는 포스트학postology이 출현하면서 그 이전, 즉 근현대시기에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수도 없이 반복 낭독하고 청취하다가 무의식에까지 각인된 민족nation’상상된imagined’(Anderson) 것이고, 오래 전에 형성되어 면면히 흘러내려와 반드시 수호해야 할 것으로 알았던 전통tradition만들어진invented’(Hobsbawm and Ranger) 것이며, 심지어 이성과 함께 근현대를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주체subject’구성된consisted’ (Foucault)이다. 근현대 분과학문 체계도 포스트주의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속(after, )’발전(de-, )’의 의미를 절합하는 포스트의 방법론을 온전하게 전유할 때 중국 근현대문학은 중국문학그리고 근현대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횡단과 통섭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푸코 및 포스트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빌어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관행을 파헤치고 새로운 문학사의 구성을 위해 몇 가지 지점을 점검하는 것이다.

 

3.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총론으로, 이 책의 대주제인 담론과 타자화의 두 가지 사례를 20세기문학과 두 날개 문학근현대문학사 기점과 범위로 나누어 고찰했다. 전자는 신문학’, ‘셴다이문학’, ‘진셴다이近現代 100년문학’, ‘20세기문학’, ‘셴당다이現當代문학’, ‘두 날개 문학등 계속 미끄러져온 기표를 일단 근현대문학으로 고정시키고, 5·4 이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온 근현대문학사에 관한 담론을 고찰하는 동시에 그 내부에 온존하고 있는 타자화의 정치학politics of othernization’을 규명했다. 후자는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기점과 범위에 초점을 맞췄다. 기점 면에서 첸리췬 등의 20세기중국문학사가 1898년을 기점으로 제시했고 판보췬은 1892년으로 앞당겼으며 옌자옌은 1890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왕더웨이에 따르면 1851년 태평천국太平天國 시기로 앞당겨진다. 문학사 범위도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삼분법 시기의 셴다이문학사는 좌익문학사였지만, 20세기중국문학사에서 우파문학을 복권시켰고 두 날개 문학사에서 통속문학을 복원시켰다. 21세기 들어 중국 근현대문학사는 초국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중국문학Chinese Literature’으로부터 중어문학漢語文學. Chinese Literature’으로 그리고 중국인문학華人文學. Chinese Literature’으로 자기 변신하고 팽창하면서 재구성 단계에 들어섰다.

2부에서는 중국 근현대문학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관건이 되는 몇 가지 주제를 선택했다. 먼저 언어와 장르에서는 54백화문운동에서 제기된 구두어의 실체와 문제점, 54식 백화를 비판하며 전개된 대중어운동과 라틴화운동을 고찰했고, 고대 장르에서 근현대 장르로 전변하는 과정에 대해 고찰했다. 대중화와 실용이성은 그동안 배제되었던 통속문학을 고찰하는 핵심어다. 중국 근현대문학 대중화의 허실을 검토한 후 무협소설과 대중화의 관계를 고찰하고 리쩌허우의 실용이성을 빌어 진융 무협소설에 나타난 위군자의 권력욕망과 진소인의 생존본능을 분석했다. 동아시아 문화 횡단과 공동체의 가능성에서는 중국 근현대문학사를 보기 위한 동아시아 시야와 관련해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유동과 횡단, 반한과 혐중, 포스트한류와 한국문학, 동아시아 공동체 등을 고찰했다. 마지막으로 중체서용과 지식인의 문화심리구조는 문사철 전통이 승한 중국에서 근현대 지식인이 전통의 창조적 계승과 외래의 비판적 수용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기본적인 문화심리구조에 대해 논했다. 주로 중체서용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 민두기의 새로운 해석 그리고 리쩌허우의 서체중용 등을 통해 고찰했다.

3부는 각론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성찰적 글쓰기와 기억의 정치학에서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글쓰기를 상흔 글쓰기와 성찰적 글쓰기로 나누고, 그 가운데 성찰적 글쓰기에 대해 고찰하면서 폭력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아울렀다. 그리고 가오싱젠의 작품을 통해 기억의 정치학을 고통의 기억, 기억의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했다. 포스트사회주의시기의 문학지도에서는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인 포스트사회주의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한 후 이 시기의 문학지도를 그려보았다. 포스트냉전시기 타이완 문학/문화의 정체성에서는 계엄 해제 이후 타이완의 문학/문화의 정체성을 포스트냉전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했다. 먼저 아시아의 냉전과 포스트냉전에 대해 검토한 후 최근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타이완문학 기술의 변화를 분석했다. 그리고 계엄 해제 이후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이 문제가 여전히 타이완문학과 문화에 중요한 논점임을 확인했다. 홍콩문학의 정체성과 포스트식민주의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의 관점에서 홍콩문학의 정체성을 논했다. 먼저 홍콩문학을 바라보는 기존의 두 가지 시선을 검토한 후 새로운 시선으로서 포스트식민주의를 제시했다. 무협소설 전통의 부활과 근현대성에서는 개혁개방시기 유행한 신파 무협소설이 사실은 1949년 이전에 흥성했던 구파 무협소설과 연계되어 있음을 밝히고 무협소설의 근현대성을 애국 계몽과 상업 오락, 한족 중심과 오족공화, 다양화와 혼성성에 초점을 맞춰 고찰했다. 도시문학과 상하이 글쓰기는 포스트사회주의 시기 급속히 진척된 도시화에 초점을 맞춰 도시문학과 상하이 글쓰기에 대해 논했다. 주로 상하이 도시공간에 대한 담론에 중점을 두었다. 아울러 왕안이의 장한가상하이 민족지ethnography’로 설정해 문학인류학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보론 한국의 중국 근현대문학 연구에서는 1970년대까지를 연구의 전사(前史), 1980년대를 개척기로, 그리고 1990년대 이후를 발전기로 설정하되, 1990년대 이후의 현황을 중심으로 그 주요한 흐름을 따라 간략하게 정리하고 몇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부록에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20세기 중국문학을 논함1985년 발표되자마자 국내외의 호응을 얻었던 글이다. 통속문학과 두 날개 문학은 바로 순문학과 통속문학의 두 날개가 ‘20세기 중국문학사를 제대로 날게 할 수 있다면서 통속문학을 근현대문학사에 편입할 것을 주장했다. 두 편의 글은 각각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던 ‘20세기 중국문학담론과 두 날개 문학담론의 선언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느지막이 읽고 쓰는 일에 재미와 의미를 부여하고 한 걸음 씩 걸어가는 사람을 묵묵히 지켜보며 성원해주는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동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읽고 쓸 수 있는 근거와 조건을 제공해준 목포대학교와 그간 함께 해온 동료 교수들 그리고 내 강의를 경청해준 학생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뒤늦게 조우한 문화/과학의 동인들은 횡단과 통섭의 안내자이자 동반자다. 생산적이고 치열한 만남을 다짐해본다. 끊임없이 차이를 반복함으로써 불편한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아내 유세종은 나를 되비치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부디 건강을 회복해 더불어 반복의 차이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흔연히 출판을 수락해주신 문학동네 강병선 대표님과 인문팀의 고원효 편집장 그리고 송지선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함께 하지 못한 시공간에 대한 작은 보상의 의미가 되길 기대하며 은영과 하영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은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재단)의 인문저술사업의 지원을 받았고, 지금까지의 공부를 일단락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가고픈 열망을 담았다. 강호 제현의 질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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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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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모리 요이치 의 [무라카미 하루키론]을 읽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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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대사상사론 한길그레이트북스 71
리저허우 지음, 임춘성 옮김 / 한길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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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중국의 부상(the rise of China)’에 대한 언설이 저널리즘의 표제를 넘어 학문적 의제로 제시되고 있다. 그 가운데 ‘세계체계론’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아리기(Arrighi, Giovanni)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in Beijing)』(2007)는 주목을 요한다. 아리기는 현재 진행 중인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지가 북아메리카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하는 현상을 애덤 스미스의 경제 발전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우리 인류 앞에 부상하는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시장 사회(a world-market society)’의 길과 기울어가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세계 제국(global empire)’의 길이 놓여 있다고 제시한다. 물론 아리기가 전망하는 것은 아시아와 유럽의 두 유산이 근원에서부터 교배하여 열매를 맺는 ‘신아시아 시대’(the new Asian age)이다. 신영복 선생 또한 중국이 ‘자본주의를 소화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양(止揚)한 새로운 구성 원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류가 나아갈 제3의 길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사회주의 중국이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수용해서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길로 나아갈지는 인류의 역사에 중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봉건 중국이 아편전쟁 이후 자본주의 서양을 학습하는 동시에 배척했던 ‘근대’ 80년의 시간이 중첩된다. 리쩌허우는 근대 진보 사상사의 과정을 ‘부정의 부정’으로 개괄했다. 1850년대 태평천국의 농민혁명 사상은 봉건 중국의 지주 토지소유제를 타파하고 지주 정통사상과 대립함으로써 봉건사회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는 고대 농민혁명 사상의 총결이었다. 이어 등장한 1870∼90년대의 자유주의 개량파의 변법유신 사상은 태평천국 혁명 사상을 부정하고 부르주아 자본주의적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1900년대의 혁명파 민주주의의 ‘삼민주의’ 사상은 두 사조의 합리적 내용을 취하고 ‘평균지권’과 ‘토지국유화’라는 사회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농민을 주체로 설정하지 못했고 자본주의의 진보적 개혁을 실행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개량파와 혁명파는 태평천국의 나선형 상승의 일환이고 첫 번째 부정일 뿐이었다. ‘부정의 부정’은 고급 형태의 농민전쟁을 수행한 ‘신민주주의’ 혁명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길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 도달한 사회주의 중국은 지금 ‘새로운 부정의 부정’ 과정을 맞이하고 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있는 중국에게 확실한 것은 어디론가 ‘이행(transition)’중이라는 사실뿐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궁극적 승리가 될지, 아니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견지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제3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바로 ‘근대’ 중국의 지식인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듬었던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중국의 ‘현당대(現當代)’ 학자들이 ‘근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의 현당대문학 연구와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대표하고 있는 상하이대학의 왕샤오밍(王曉明) 교수는 서양 이론을 가져다 중국의 급격한 변화를 해석하고 출로를 전망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1980년대의 보편적 믿음이 1990년대 들어 사라졌음을 인식한 후, 1949년 이전 중국의 자생적인 진보적 사상자료 발굴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근대’ 쪽으로 연구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신좌파’의 명망을 한 몸에 아울렀던 칭화대학의 왕후이(汪暉) 교수는 2004년에 출간한 『현대 중국사상의 흥기(現代中國思想的興起)』에서 중국사상을 하나의 연속선으로 파악하면서 상권 제1부에서 한당(漢唐)과 송명(宋明) 그리고 청(淸)을 다루었고, 상권 제2부와 하권 제1부에서 이른바 ‘근대’를 다루었으며 하권 제2부에서 5·4 이후를 다루고 있다. 이들의 선배 세대인 중국사회과학원의 자오위안(趙園) 교수와 산터우(汕頭)대학의 왕푸런(王富仁) 교수도 일찍부터 ‘근대’를 거슬러 올라가 전통을 재해석하는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리쩌허우 선생의 『중국근대사상사론』은 이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 할 수 있다.
  5년 만에 다시 출간하면서 불교 관련 역주를 대폭 손질했다. 초판에서 옮긴이 나름대로 이런저런 참고자료를 찾아 역주를 달았는데, 전문가의 눈에는 요령부득이었던 것 같다. 불교 관련 역주의 수정과 보완은 불교사 전문가인 김영진 교수가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2007)에서 역주의 오류를 언급해준 것에 힘입었다. 옮긴이의 질의에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고 꼼꼼하게 보완 설명해준 김영진 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곽철환 편저의 『시공 불교사전』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했다. 그 외에도 일부 오역과 외래어 표기 등을 손보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진함이 남는다. 강호 제현의 질정을 기대한다. (2010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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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 - 상하이.상하이인.상하이영화 아시아 총서 1
임춘성.곽수경 엮고 씀, 김정욱.노정은.유경철.임대근.홍석준 함께 씀 / 산지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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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개방 30년이 넘은 중국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그 관심의 폭과 깊이가 더해가고 있다. 특히 ‘중국의 부상(the rise of China)’, 중국이 세계를 ‘바꾼다(to change)’, ‘움직인다(to move)’, ‘흔든다(to shake)’, ‘지배한다(to rule)’ 등의 언설이 저널리즘의 표제를 넘어 학문적 의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21세기의 현실이다. 이런 판단은 지난 30년 중국의 경제적 성장에 근거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서양의 잣대로 중국을 평가해서는 안 되고 중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런던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아시아 연구센터(Asia Research Centre)의 객원 연구원인 마틴 자크(Jacques, Martin)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When China Rules the World』(2009)에서 ‘서양 세계의 종말(the end of the Western world)’과 ‘새로운 전지구적 질서의 탄생(the birth of a new global order)’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해 학계와 독서계의 광범한 주목을 받고 있다. 55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여기서 상세하게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요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중국과 최근 중국의 부상(rise)에 대한 서양의 주류적 견해 및 공감대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독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중국을 관찰할 때 서양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중국적 특색을 충분히 고려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중국적 특색으로 꼽은 네 가지 핵심 주제는 ‘국민국가(nation-state)에 그치지 않는 문명국가(civilization-state)’, ‘94%에 이르는 한족을 중심으로 한 인종(race)’, ‘조공국가(tributary state) 체계’, ‘오래 지속된 통일(unity) 국면’이다. 결론에서는 이 네 가지를 중심으로 중국의 여덟 가지 모더니티를 적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마틴 자크의 이론적 근거가 ‘21세기의 계보들(Lineages of the Twenty-First Century)’이라는 부제를 단 조반니 아리기(Arrighi, Giovanni)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in Beijing)』(2007)임은 자명하다.
  자크의 주장을 비판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서양화(westernization)를 근현대화(modernization)와 동일시하고 개발도상국이 발전하면 서양식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서양 보편주의, 따라서 예전에 일본을 그 일원으로 받아들였듯이 중국도 어느 시점에 책임감 있는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서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자크는 이런 서양인들에게 이제는 서양과 역사`문화적 맥락이 다른 중국의 특수성에 주목할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몽골의 서정 이래 서양에서는 강대한 중국에 대한 위협을 ‘황화(Gelbe Gefahr)’로 유비한 바 있다. 자크는 21세기 황화에 대해 중국적인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대응방식을 권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이 중국 중심주의(Sino-centricism) 편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개혁개방 이후 오랜 화두였던 ‘전통과 근현대화’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이제 ‘다양한 근현대화의 성과를 수렴한 전통’으로 모아지고 있고 그 성과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중국 내적으로는 ‘문화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로,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차이나(global China)’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베이징올림픽을 ‘문화민족주의의’의 토대 위에 ‘글로벌 차이나’의 성과들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장치로 읽을 수 있다.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세계무대로 도약했듯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2010년 상하이엑스포가 ‘글로벌 차이나’를 위한 또 하나의 매듭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아름다운 도시, 행복한 생활(城市, 讓生活更美好, Better City Better Life)’이라는 구호 아래 금년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거행될 상하이엑스포는 베이징올림픽의 3.5배라는 경제효과를 예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린 엑스포(Green Expo)’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최대와 최고의 수치로 식된 공식적인 보도 외에 상하이엑스포를 계기로 위안(圓)화를 세계 기축통화로 격상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물밑 노력도 또 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마틴 자크의 예언대로 베이징이 새로운 세계의 수도(the new global capital)를 자처하는 날 상하이는 명실상부한 경제와 문화의 중심임을 자랑할 것이다.
  근현대 동서교류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측 창구는 1840년 이전의 광저우(廣州), 1843년 개항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전까지의 상하이, 1950년대 이후의 홍콩(香港),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의 광저우와 선전(深圳), 1990년대 이후 상하이가 중심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크게 보면 주장(珠江) 삼각주와 창장(長江) 삼각주 사이를 오간 셈이다. 중국 근현대 장기 지속(longue durée)의 관점에서 볼 때, 상하이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중국의 대외 창구 노릇을 했다. 외국인 조계와 국내외 이주를 통해 중국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모던 상하이는 1930-40년대 이미 세계적인 국제도시의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1949년 공산화된 이후, 그 영광을 홍콩에게 넘겨주었다. 식민지였으면서도 20세기 자본주의 정점의 하나를 구축했던 홍콩의 발전은 상하이의 후견 아래 이루어졌던 셈이다. 1930년대 서양인들에게 ‘동양의 파리’ 또는 ‘모험가들의 낙원’으로 일컬어졌던 상하이가 왕년의 영광 회복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푸둥(浦東) 지구 개발로 뒤늦게 개혁․개방에 뛰어든 상하이는 10여년 만에 중국 최고 수준의 발전을 이루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상하이는 중국 근현대사의 진행과정을 압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근현대 중국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상하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연구는 시의적절하다 할 수 있다. 우리 출판계에 상하이는 낯설지 않은 아이템이다. 최근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상하이’ 제목으로 검색해본 결과 70여종을 찾을 수 있었는데, 여행안내서와 여행기가 주종을 이루고 『장한가』(왕안이 2009) 등 상하이 관련 소설이 뒤를 잇고 있다. 그 가운데 상하이 영화황제 진옌(金焰)에 관한 전기 세 권-『상하이에 핀 꽃-1930년대 영화황제 김염』(조복례 2004), 『상하이 올드 데이스』(박규원 2003), 『상해의 조선인 영화황제』(鈴木常勝 1996)-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중국영화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정작 본인은 조선적 정체성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포라는 사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리 많지 않은 학술적인 접근에서 『상하이 모던』(리어우판 2007) 등의 번역서를 빼고 나면 우리 학계의 성과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전통과 근(현)대의 중층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지연망’과 ‘생활문화’를 통해 상하이의 ‘근(현)대성’을 조망한 『20세기 전반기 상해사회의 지역주의와 노동자』(전인갑 2002), 국민혁명 시기 상하이의 학생운동을 다룬 『중국의 국민혁명과 상해학생운동』(정문상 2004), 1920-30년대 상하이의 민간단체와 국가단체의 관계를 통해 중화민국 민중의 단체 결성과 정치활동 참여의 메커니즘을 고찰한 『근대 상해의 민간단체와 국가』(이병인 2006), 그리고 ‘근(현)대성의 다양한 양상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라는 취지에서 도시화, 상공업, 문화, 공공성 등의 영역으로 나누어, 교통, 공공사업, 위생, 어음 결산 관행, 상권, 생활문화, 영화산업, 기독교여청년회, 대학, 외국어, 자선, 유민습근소 등의 다양한 방면에 걸쳐 근현대성의 양면성 내지 중층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20세기초 상해인의 생활과 근대성』(배경한 엮음 2006)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역사학의 관점에서 중화민국 시기 상하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달리 『현대 도시 상하이의 발전과 상하이인의 삶』(이일영 엮음 2006)은 각 영역의 중국학자들이 개혁개방 이후 상하이를 대상으로 역사와 경제, 권력구조와 인민대표대회, 노동관계와 호구제도, 탈식민성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학제간 연구를 시도했다. 중문학 전공자들의 공동연구 결과물인 『중국 근대의 풍경』(문정진․민정기 외 2008)은 상하이에서 1884년부터 14년간 발행된 『점석재화보』를 중심으로 화보와 사진 속의 일상 풍경들을 다양한 주제의식으로 ‘절합(articulation)’시킴으로써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소통’이라는 연구영역을 확장시켰다. 이들 선행연구는 우리 연구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1843년 개항 이후 오늘의 상하이가 있기까지의 역사적․문화적 과정에 대한 연구 가운데 상하이영화를 통해 상하이와 상하이인을 고찰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49년 이전까지 중국영화와 원주가 거의 비슷한 동심원이었던 상하이영화는 사회주의 30년 동안 베이징과 시안(西安) 및 창춘(長春) 등에게 경쟁을 허용했지만, 개혁개방 이후 상하이영화그룹 결성과 상하이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고 있다. 상하이에 붙는 최초의 근현대도시, 이민도시, 국제도시, 상공업도시, 소비도시 등의 표현은 영화산업 발전의 요건을 설명해주는 명칭이기도 하다. 중국영화는 상하이로 인해 입지를 확보하고 영역을 넓힐 수 있었고, 상하이는 영화로 인해 근현대화를 가속화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상하이영화는 상하이 나아가 중국 근현대화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이 ‘상하이영화를 통한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4년 9월이었다. 6개월 정도의 사전 준비기간 동안 주제와 연구방법에 대해 토론을 거쳤다. 연구자들은 중문학 전공자를 중심으로 영화학자와 문화인류학자로 구성되었고, 영화연구와 문화연구, 그리고 동아시아 항구도시문화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우리는 개별 연구 외에 심포지엄과 현지조사의 방식을 취했다. 심포지엄 첫해에는 주로 연구주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주제발표와 토론을 진행했고 이듬해에는 국내 상하이 전문가를 초빙해 발표를 듣고 질의 토론하는 형식의 <상하이 포럼>으로 진행했다. 2005년 2월과 2006년 2월, 2차례에 걸친 현지조사를 통해 영상자료 및 문헌자료를 수집하고 상하이 전문가들 및 중국영화학자들과 학술토론회 및 소규모 간담회 등을 통해 상하이와 중국영화를 중심으로 한 연구 주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 ‘상하이영화와 영화 상하이’에서는 먼저 중국영화에 재현된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살펴보고, 상하이와 영화 연구를 위해 도시와 영화의 관계, 상하이영화의 명명 등에 관한 개념 규정을 명확히 했다. 아울러 상하이영화의 형성이 어떻게 중국영화의 형성과 길항(拮抗)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내부의 복잡한 논리들을 고찰했으며 20세기 상하이영화 가운데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141편을 대상으로 당시 영화제작사의 경향성과 영화와 시대, 사회와의 관계 및 영화의 역할과 위상 등을 고찰했다.
  제2부 ‘상하이영화와 재현의 정치학’에서는 먼저 중국영화가 상하이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고 있는가, 나아가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해내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1930년대 상하이 재현과 상하이영화의 장르적 특징인 ‘멜로 드라마적 이야기 방식’에 주목했다. 또한 사회주의 시기와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의 상하이 재현 영화들을 분석했다. 또한 1930년대 중국 좌익계열 영화에 대해 영화의 형식과 미학적 특징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이데올로기, 미학, 산업 등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기제들이 영화의 형식 구성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어서 1930년대 올드 상하이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의 영상 서사 미학을 분석함으로써 올드 상하이 영화의 정체성을 판별했다. 또한 ‘기억’과 ‘역사들’을 키워드로 삼아 상하이인의 정체성 고찰의 일환으로 펑샤오롄(彭小蓮) 감독의 ‘상하이 삼부곡’을 분석했다. 그리고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상하이영화를 고찰함으로써, 했다. 상하이영화의 남성텍스트적 혐의와 여성형상에 나타난 동화와 할리우드의 영향을 고찰했다.
  제3부 ‘이민도시 상하이의 도시문화’에서는 급변하는 전 지구적 변환이라는 광범위한 문화적 과정에서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의 지속과 변화를 상하이 도시문화의 형성과 변화라는 측면에서 다루었고, 근현대도시 상하이의 핵심을 이민으로 파악하고 이민 정체성을 국족 정체성의 구체적 표현으로 설정해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고찰했다. 또한 1930년대 상하이인의 도시경험과 영화경험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상하이인의 식민 근대에 대한 대응방식과 근대적 자아정체성 형성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고찰했다. 마지막으로 개혁개방 이후 급속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상하이를 대상으로 중국 사회의 시민사회 또는 시민문화의 특징과 의미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상하이 도시문화의 형성과 변모를 추적했다.
  2년의 연구기간과 이어진 추가 집필기간 동안 현지 조사와 자료 수집, 심포지엄과 포럼을 거치고 내부 발표와 국내외 학술대회에서의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기관과 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 연구는 목포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의 주관으로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연구에 기본 동력을 제공해준 두 기관에 감사를 드린다. 연구 수행에 도움을 준 상하이대학 중국당대문화연구센터와 영상기술대학, 상하이영화제작그룹, 베이징 필름아카데미, 베이징 영화자료관, 연구 결과를 발표할 자리를 마련해준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와 상하이대학 등에 감사를 드린다. 그동안 <상하이 심포지엄>과 <상하이 포럼>에 참석해 귀중한 발표를 해주신 여러 전문가들-전인갑, 김수연, 박자영, 김태승, 송도영, 정문상, 이병인 교수 등-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우리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귀중한 의견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하이대학 영상기술대학의 영화학자들을 소개해준 상하이대학의 왕샤오밍(王曉明) 교수, 현지조사 초기에 상하이 문화답사를 안배해준 푸단대학 천쓰허(陳思和) 교수, 상하이 전문가들과 함께 발표하고 토론할 자리를 마련해준 상하이대학 왕광둥(王光東) 교수, 상하이영화 컨퍼런스에 참여해 귀중한 의견을 준 천시허(陳犀禾), 스촨(石川), 녜웨이(聶偉) 교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중국 영화와 상하이에 대해 유익한 도움을 준 진관쥔(金冠軍), 취춘징(曲春景), 린샤오슝(林少雄), 류하이보(劉海波) 교수 등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공동연구에 참여한 조병환 박사, 현지조사에 동행해준 신정호 교수와 김정구 선생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연구 수행을 보조해준 목포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생들에게도 함께 한 시간이 각자의 지적`사회적 성장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상하이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흔쾌히 출판을 수락해준 강수걸 대표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꼼꼼하게 문장을 다듬어주고 편집해준 박지영 님과 마무리 작업을 맡아준 권경옥 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학문간 통섭(consilience)과 학제간 융합`복합`통합이 사회 아젠다로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 우리의 공동 연구가 그것을 얼마나 구현했는가를 자문해본다. ‘지금 여기’에서 ‘동-서-고-금’과 만나는 공부의 길은 여전히 멀고 읽어야 할 자료는 첩첩이 쌓여간다. 강호 제현의 질정을 바란다.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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