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해서는 “이건 진짜 미쳤다!”, 이거 말곤 달리 쓸 표현이 없다. 역자 해설문에서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18세기 당시 프랑스에서 향수 제조로 유명했던 지역 그라스를 방문하고, 향수 제조 과정을 전부 보고 익혔다는 내용을 읽었을 때,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실제로 이 책에 나온 향수 제조 과정과 향수를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들이 나오는 장면들을 읽었을 때, 작가가 원래 향수 제조 일을 했었나 하는 의문까지 들었으니까.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뛰어난 후각을 가졌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한 번 맡은 냄새를 전부 기억하니까. 심지어 그르누이는 향수 제조업자 발디니가 경쟁사에서 만든 향수 <사랑과 영혼> 모조품을 만들고 있을 때, 그 향수를 완벽하게 재연할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손을 봐서 업그레이드까지 시켰다. 그렇게 해서 그르누이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발디니의 제자가 되어 향수 제조업자의 길에 들어선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소설을 아직 안 읽은 사람들이 “아, 주인공이 후각이 뛰어난데 그 후각 능력을 이용해서 향수를 만드는 일을 하는 내용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닌데... 문제는 그르누이가 분명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본인의 체취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사람 냄새가 안 난다? 아니, 그 냄새가 아예 없다? 이걸 뭐라고 보면 좋을까?

본인한테 체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르누이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서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나 사용하던 물건 냄새를 채취한 걸로 향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직접 만든 사람 냄새 나는 향수를 뿌려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향에 대한 집착이 하도 강하다 보니 더 완벽한 향수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까? 그 집착이 결국 그를 25명의 소녀들을 살해하는 살인범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르누이의 목표가 단순히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거라면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살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마저 모자랐는지 자신이 살해한 25명의 소녀들의 체취를 추출해서 향수를 만들기까지 했다. 이 당시에도 직업적 윤리라는 게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주인공이 정신 나갔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어 공개 처형 선고를 받은 그르누이는 자신의 죽음을 보러 온 사람들 앞에 완성한 특수 향수를 뿌렸다. 그리고 향수 냄새를 맡은 사람들은 향기 때문에 그르누이가 잘생겨 보이는 환각에 빠지기라도 했는지 모두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하도 도취되어서 무슨 마약을 복용해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서로 정사를 나누는 기이한 행위까지 벌이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이 그르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이 “그르누이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지 아니면 “그르누이가 뿌린 향수의 향기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지 참 애매했다. 꼭 작가가 말장난 하고 있다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본인이 만든 특수 향수 덕분에 그르누이는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 향기를 사랑하기는 커녕 증오했다. 향수에 매료된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읽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그르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어했지, 사랑을 바라지 않았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근데 너희들 사랑은 바라지 않아. 난 너희들을 증오해.” 이런 심리라고 할까? 이럴 거면 그르누이는 뭐하러 살인까지 하면서 향수를 만들었을까? 아무리 목적을 이뤘어도 본인이 거기에 혐오를 느낀다면 그건 결국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데.

그르누이가 스스로 최후를 선택한 건 어쩌면 예정된 결말이라 생각한다. 이미 목적은 이뤘고, 더 바랄 것도 없으니까.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만든 향수를 뿌려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부랑자들에게 둘러싸여 흔적도 없는 죽음을 맞이한 그르누이의 최후가 좀 섬뜩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냄새 없이 태어나 존재감이 없으니까 향수를 만들어서 존재를 알렸고, 이제는 죽음으로 그 존재감을 지우려 한 걸까? 결국 그는 살해한 25명의 소녀들의 체취로 만든 특수 향수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뛰어난 후각 능력을 가진 향수 제조업자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짧은 생이 끝났다.

그동안 읽어본 소설이 몇 권 되지 않지만 그르누이가 다른 주인공들보다 말수가 너무 적다 보니 그가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걸 꺼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알리고 싶은 그의 심리가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이걸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래서 지금 뭐하자는 건데?”, 이거였다. 정이 들려도 전혀 안 드는 주인공이다. 그래도 그르누이가 천재적인 후각 능력을 이용해 향수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한다. 다만 살인으로 만든 향수까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건 엄청난 마이너스 점수를 줬으니까. 이건 그르누이가 오늘날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주인공은 마음에 안 드는데 이 소설 자체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뭘까? 도파민이 터진 기분이랄까? 아니면 내가 이런 내용이 취향이었나?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첫 문단에 썼던 “이건 진짜 미쳤다!”라는 책에 대한 감상을 다시 외치고 싶을 정도다. 기회가 되면 작가의 다른 소설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혹시 이 책을 읽고 향수나 조향에 대해 관심이 생겼냐 묻는다면… 그건 전혀 아니다.
이미 여기까지 써도 충분하니까 이만 글을 마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독특한 냄새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물론, 유행하는 인공적인 냄새로 자신만의 고유한 냄새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기본적인 냄새, 사람들의 원시적 악취 속에 있을 때만 편안해 했고, 그 속에서만 안전하다고 느꼈다. 때문에 그들은 그 구역질 나는 인간의 냄새를 갖고 있는 사람만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간주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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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연애 소설이라고 불리는 이 책은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에서 8명의 스노보더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약혼자 몰래 바람피다가 들킨 고타, 친구들과 놀러간 스키장에서 바람피고 있는 약혼자를 만난 미유키,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바람필 생각만 하고 다니는 미즈키, 바람둥이 남자친구 때문에 고생하는 아키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있는 쓰키무라와 마호 부부, 매번 실연 당하는 히다와 의도치 않게 친구 애인을 뺏게 된 모모미가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다.

이들 중에서 나는 히다와 모모미를 주인공으로 보고 이 책을 읽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고타와 미유키 커플은 초반에 위기가 있었지만 끝내 결혼해서 비중이 사라졌고, 미즈키도 나중에 정신차려서 아키나와 약혼했고, 쓰키무라와 마호는 이미 초반에 결혼했다.
그럼 남은 사람은 아직 커플이 되지 않은 히다와 모모미다.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모모미는 소개팅에서 만난 고타와 사귀고 있었다. 어느 날, 고타와 스노보드 데이트를 하러 간 스키장에서 그녀는 고등학교 동창 미유키를 만난다. 그런데 곧 결혼한다는 미유키의 약혼남이 바로 고타가 아닌가! 그렇게 고타와 헤어진 모모미는 사랑에 상처를 받게 된다.
호텔리어로 일하는 히다는 일 잘하고,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남자지만 이상하게 매번 실연을 당한다. 오죽하면 미즈키가 도와주는데 이게 별 성과가 없다. 어느 날, 겔렌데 소개팅(겔팅) 장소에서 모모미를 만난 히다는 그녀에게 고백하지만 또 차이고 만다.
고타와 헤어진지 1년 후, 마찬가지로 겔팅에 간 모모미는 히다의 고백을 받는다. 하지만 히다에게 마음이 없었던 그녀는 곧바로 히다를 찬다. 그런 일이 있은지 며칠 후, 호텔 무료 시식권을 가지고 직장 동료 야요이와 같이 호텔 식당에 간 모모미는 그곳에서 일하는 히다와 재회한다. 그런데 겔팅에서 보인 어리버리한 히다는 어디로 가고 각이 딱 잡히고 잘생긴 히다가 나타난 게 아닌가.
그리고 이번에는 모모미가 히다에게 반하고 마는데...

여기서부터 히다와 모모미가 자주 만나고, 스키장에서 스노보드도 탄다. 그리고 마지막에 둘이 드디어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초반에 나왔던 고타가 나타나서 재를 뿌리고 말았다! 다 된 밥에 고타를 뿌리다니!
아니, 하도 실연을 많이 당해서 큐피드가 버린 것 같은 히다에게 이제 봄이 오나 했더니만...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나는 분명 모모미가 고타를 응징했을 거라고 믿는다. 대신, 히다와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열린 결말로 끝나서 그 다음 스토리는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재미도 있어서 나는 이렇게 끝난 줄거리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히다와 모모미의 사랑을 응원하고, 이 둘이 서로 연애의 행방을 찾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고타가 반드시 응징되기를...

누구에게나 플러스 요소와 마이너스 요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덧셈과 뺄셈을 거쳐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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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하는 독서클리닉이라는 이벤트에 당첨 되어서 남편과 함께 코엑스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독서클리닉을 신청한 이유가 장르문학이라는 말이 너무 생소해서인데요, 그래서 그 궁금증을 풀고싶어서 신청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당첨이 되어서 가는 내내 들떠 있었답니다.(옆에 있는 남편이 피식할 정도로요;;;)

행사장은 a홀과 b홀에 있었는데 엄청 넓었어요. 다양한 책을 파는 부스들이 많이 있었고 강연하는 곳도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이 도서전 마지막 날이라서 한가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아, 이게 바로 국제도서전이구나~‘했어요.

제가 신청한 독서클리닉은 b홀에 있었어요. 약 20분 동안 김봉석 문화평론가님과 대화를 나누고(유익한 정보를 많이 들어서 좋았어요) 다시 도서부스로 갔답니다. 행사장이 워낙 넓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마감 시간이 다 돼서 책만 빨리 사고 나왔어요.

제가 산 책은 아작 출판사에서 나온 코니 윌리스의 ‘화재감시원‘과 ‘여왕마저도‘라는 책이에요. 장르소설은 추리만 읽은 저에게 김봉석 평론가님이 추천해주신 sf소설인데, 아작이 sf소설로는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그외에 유명한 sf작가들도 추천 받았는데 그 작가들의 책도 한번 찾아서 읽어보려고요^^(추가로 무협도 추천 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책 읽는 걸 많이 좋아해요. 사는 건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편인데 동네 도서관이 하필 공사중이라 휴관하고 있더라고요.ㅠㅠ 그래서 아쉬웠는데 이런 좋은 행사에서 책을 살수 있어서 제일 좋았어요.

오늘 새로운 경험을 해서 신났어요. 내년에도 도서전이 있으면 가볼 생각이에요. 아직도 신난 상태에요^^;;;

이로써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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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눈을 알면 그림이 보인다
박우찬 지음 / 재원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그림은 잘 못 그리지만 그림 보는 건 좋아한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굳이 전시회에 가지 않아도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다. 책으로 볼 수도 있고, 인터넷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물처럼 생긴 그림은 뭘 그렸는지 알아볼 수 있겠는데 정작 추상 그림은 뭘 그린건지, 왜 이렇게 그렸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어쩌면 우리 눈이 사실적인 그림에만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과거, 르네상스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문맹이라 글보다는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해부학, 원근법, 명암 등을 배워야했다.
하지만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화가들은 이제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릴 필요가 없어졌다. 어차피 사진만 찍으면 실물과 똑같은 그림이 바로 나오니까.
이때부터 현대 미술은 입체를 포기하는 대신 평면으로 그리고(인상파), 전통적 서양미술의 틀을 깨고(세잔), 눈에 보이는 실물이 아닌 수수께끼 같은 그림(추상 미술)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신 알아보기 힘들다는 단점도 생겨났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익숙한 그림만 볼 수는 없다. 그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으니까. 뭘 그렸는지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다. 화가가 그렇게 그렸으면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그림의 형태도 변했다. 그런데 그림을 보는 우리 눈이 그대로면 어쩌겠는가? 관점이 고정적이면 다양한 감상을 하기 힘들다. 결국 그림 감상에 중요한 건 그 그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우리 눈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건 이거다. 다양한 관점으로 그림을 보라. 그리고 무엇을 그린 건지 궁금하다면 스스로 묻고 답하라.

언제 한 번 시간 나면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설명이 좋았고,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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