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해설 징비록 - 한국의 고전에서 동아시아의 고전으로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 5
류성룡 지음, 김시덕 옮김 / 아카넷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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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가 충실하고, 일본 대외전쟁 담론을 추적하고 있는 연구자 답게 일본측 자료를 비교적 풍부하게 이용하여 징비록의 내용을 보충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장마다 붙어 있는 해설에 역해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하여 번역을 읽는 독자들에게 불필요한 선입관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지 않나 염려가 된다.


번역은 일단 번역에 충실하고 독자가 번역을 읽을 때 이해를 돕는 주를 달거나 단순히 자료를 제시하는데 충실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역해본은 역해자의 주관적 견해가 장 마다 해설 속에 들어가 있는데 이런 식의 역해가 과연 바람직 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역해자의 역사를 보는 시각도 내가 보기엔 문제가 있다. 당시 민중들의 분노나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들 보다는 무책임했던 지배층들, 가해자들의 변호인 역할을 주해자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역해본을 읽으며 줄곧 생각했다.   


예를들면 우복룡이 하양병사들이 자기 앞에서 말을 내리지 않고 가는데 앙심을 품고 보복으로 죽인데 대한 부분에서 역해자는 조선군 내부의 갈등, 인물 간의 대결 구도, 이후 역사에서 고착된 선악구도화의 문제를 언급하며 그 사실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158쪽) 우복룡과 하양군사들은 경쟁관계도 대립관계도 아니다. 다만 강자와 약자의 관계일 뿐이고 우복룡은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이 품은 앙심과 그 보복을 위해 권한을 사용했을 뿐이다. 후에 관군과 의병장과의 관계라면 또 모를까 우복룡과 하양군사의 사례를 조선군 내부의 갈등구조의 예로 드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후대의 그에 대한 긍정 부정적 기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 경복궁을 누가 불질렀나 보다 일본군의 광범위한 방화가 더 중요한 것으로 느껴진다고 했는데(217쪽), 과연 그럴까? 일본군의 방화에 분노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그러나 전쟁 중 침략자들의 파괴적 행위는 늘 있어온 일이다. 그러나 만약 전쟁 중에 백성이 자국 왕의 궁궐을 방화했다는 것은 예사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거기서 표출된 당시의 민심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또 신각의 공을 세우고도 잘못된 보고로 참수된 부분(226쪽)에서도 그 판단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전쟁발발 직후의 정보 유통의 혼란을 내세우며 변호하는 듯한 해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조정이나 김명원이 처음에 신각이 핑계를 대고 달아난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정작 김명원 자신이 원수로서 일본군이 도성에 들어오자 도망을 쳤으면서도 신각이 이양원을 따라가자 자신의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보고서를 올린 것이다.


그리고 역해자는 신각의 처형을 전시의 엄격한 군법 적용 차원에서 신각의 적진 후퇴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임란 초기 도망을 친 수령이나 군지휘관이 한둘인가? 그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되었는가?  


징비록에는 결과적으로 억울한 죽음들이 너무나 쉽게 참수되는 사례가 다수 나온다. 이에 비해 실제로 큰 책임있는 자들이 처형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이게 유성룡의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 아니었을까?  


역해자는 해설에서 당시 지배층들의 무책임이나 뻔번함에 대해서는 그것을 비판하는 별다른 해설을 붙이지 않는 반면 그 행위를 이해할 수도 있지않나 하는혹은 변호하는 혹은  상대주의적 관점을 내세우는 것을 자신의 견해로 다시 볼려고 하는 해설을 붙이고 있다.


문득 그런 모습에서 나는 오늘날 친일파나 반민주행위자들이 가혹하고 철저한 자기반성 보다는 뻔번한 자기변호를 일삼는 모습과 그를 두둔하는 일부 학자들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한다. 과거 역사에 대한 해석은 오늘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충실한 번역과 풍부한 보충자료에도 불구하고 이 역해본을 내가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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