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딸에 대하여' - 김혜진

60대 파견직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에게 딸은 가방끈은 기나 30대에도 시간강사로 전전하며 여자 파트너와 사는 한심하기 그지 없는 존재이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시간강사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된 동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당국과 투쟁하느라 보증금을 날린 딸(책에서는 본명은 나오지 않고 파트너와 부르는 이름인 '그린'으로만 불린다)이 파트너와 함께 엄마의 유일한 재산인 오래된 2층 집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모녀간의 갈등은 점점 고조된다.

엄마의 소원은 딸이 '남들이 다 그러듯이 번듯한 직업 가진 남자와 결혼해 아이낳고 편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딸은 7년째 동성 파트너 '레인'과 동거중이며 자기 일도 아닌 동료의 문제를 두고 학교랑 맞서 투쟁하느라 제 앞가림할 돈도 벌어오지 못한다. 딸이 투쟁하는 와중에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폭력이 발생하고 딸아이와 동료가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인공이 오래도록 돌봐왔던 요양원의 환자 '젠'은 가난한 이들을 오래도록 교육해온 사회운동가였으나 과거의 기억을 잃어가고 사회의 관심도 사라지면서 무연고 노인으로 어느날 갑자기 허름한 시설로 옮겨지게 된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닌 정부 보조금을 타는 수단으로만 대하는 요양원의 처사에 항의하고 젠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주인공인 엄마도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이 소설은 현재 한국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두루 다루고 있다.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짧은 소설에 젠더간의 갈등,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폭력, 비정규직 문제, 취약한 노인요양 시스템, 치솟는 집값에 밀려나는 취약계층 등의 문제가 다뤄진다. 이야기 전개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리하게 엄마와 딸을 화해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라며 잠을 청하는 엄마의 내일이 바로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딸과 그의 동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엄마는 더이상 딸의 행동을 나서서 말리거나 언어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수용하는 것, 아니 수용해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