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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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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는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데 주의 사람이나 주의 환경에 의해 내 모습이 초라해지거나 고통을 받는 것을 일컫는다. 이럴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을 느끼거나, 그 고통의 순간이 스스로 감당하기 버거워서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이 소설 또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과거에 대한 반성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며 육체에 대한 파멸로 몰고 간다. 결국 육체의 고통이 정신적인 고통으로 전이된다.

 

살다보면 사람은 실수를 하게 된다. 고의적인 실수는 죄를 잉태하지만 반면 무의식적인 실수는 용서를 받을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오기는 많은 고의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그 죄 값을 치르게 된다. 그 결과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하늘의 벌을 받게 된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속물이 되어간다. 후배 제이와의 불륜이라든가, 경쟁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술수를 부렸던 지난날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 다른 사람의 의지를 손쉽게 비웃는 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며 아내에게 성장할 만한 일을 찾으라고 훈계하는 모습. 이 모든 것이 속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대변한다. 오기는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기 안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즉 투사된 자기 실체를 파악하고 진저리를 친다. 왜 그럴까. 나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면 가슴 한켠에 알알이 슬픔이 맺힌다. 그건 사십대의 내 모습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데에 있다. 내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무능함이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오기는 사십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반성을 하기 보다는 남도 나와 같을 거라는 생각에 고의적인 실수를 저지르며 더 큰 구멍에 빠지는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어쩌면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실수 아니 실수를 반복적으로 저지르며 우물 안 개구리처럼 뜨거움도 모른 채 죄를 짓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오기는 사고로 인해 사지를 꼼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현재의 모습에 좌절하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다. 하지만 현실의 장벽을 띄어 넘기는 너무나 높았다. 특히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장모가 자기를 의심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사실을 말할 수도 없는 상태다. 참 이런 난감한 상황이 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자기의 잘못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내색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 장모의 속내, 가족조차도 믿을 수 없는 현실. 특히 오기는 사고가 나기 전에 아내와의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영국식 정원을 만들겠다며 정원 만들기에만 몰두하는 아내의 변화로 인해 정원은 곧 아내의 공간이 되어버리고 집이라는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Be present’라는 짧은 경구가 있다. 현재를 즐기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뜻이다. 또한 과거를 통해 현재의 모습이 만들어진 이상 그 본질은 무시할 수 없다, 라는 말도 있다. 단지 과거의 아프거나 나쁜 기억을 빨리 잊는 게 상책이라는 쪽으로 정리하면 될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가. 이 소설은 크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삶에의 불안과 공포가 사건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오기를 조여 온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지난날의 삶이 덮쳐오면서 읽는 이들도 함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나에게 똑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오늘 당장 죽는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그런 점에서 짧지만 임팩트가 긴 여운을 남기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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