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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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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불안과 관계의 균열 -지극히 내성적인_최정화

 

우리는 과거를 잊고 사는 것일까.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언제부터는 깜박깜박하는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나이 탓이려나, 하는 순간. 감정의 폭은 천길 낭떨어지보다도 더 깊게 파인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나는 아무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대충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청년이었다. 군대를 갔다 와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나의 고객이었다. 결혼하기 전, 나의 관심사는 여자였다. 어떻게든 여자를 만나서 연애를 하는 것이 지상의 과제였다. 운이 좋게 아내를 만났고 3개월 사귀면서 결혼을 하자고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 사실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큰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무엇을 이루었으면 좋겠다든지, 언제까지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말을 생략한 채로 20년간 무덤덤하게 살고 있다. 작은 희망조차 없었다. 오히려 나이를 먹은 지금 꿈들이 생겨났다. 작가의 꿈이라든지, 39평 아파트를 덜컹 계약을 하고 내년이면 들어갈 부푼 꿈을 꾸고 있다든지, 고1과 중2인 아이들이 빨리 성년이 되기를 희망한다든지,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미래를 꿈꿨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지극히 소극적인 남자였다. 항상 불안해하고 작은 것에 집착하고 쓸데없는 성질을 부리는 정말 ‘소극남’ 중에 ‘소극남’이었다. 열등감이나 불안, 피해의식은 나이와 함께 항상 내 곁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너무나 가까운 동지라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즈음에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을 직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제야 그 쓴 맛을 알고 발버둥을 쳐봤자, 이미 물 건너간 세월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즈음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의 평온했던 일상이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한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소설 속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불안한 내면을 다스리지 못하고 균열된 관계를 해소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그들은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은 한가지 생각에 끝없이 골몰하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관계의 삐걱거림을 회복하지 못해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러 온 여자가 안주인 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주인공(「구두」),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불안해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탐닉하지만 여전히 악몽을 꾸는 아내(「오가닉 코튼 베이브」), 한때는 완전무결한 존재였으나 사고로 앞니 여섯개를 잃고 틀니를 하게 된 남편을 무시하게 된 여자(「틀니」), 계약으로 맺어진 애인관계가 친구들에게 들통날까봐 노심초사하는 남자와 그 의심을 일축시키기 위해 감쪽같은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여자(「홍로」), 임신한 십대 딸아이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하는 아빠(「타투」), 인테리어 소품으로 산 하이데거의 책을 읽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내(「파란 책」), 좁은 집에 사는 이웃이 신경 쓰여 집을 바꿔주려고 갖은 궁리를 하는 소심한 남자(「집이 넓어지고 있어」) 등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열등감이나 죄책감, 피해의식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조금씩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들이다”(강경석 해설). 하지만 이 면면에는 어딘지 나와 닮은, 혹은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모습들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의 작가는 자신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잠시 현실을 떠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무언가 달라진 점이 있길 바란다.”고 했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라고 한다. 지금 내가 꿈꾸고 희망하는 것들이 열등감이나 불안을 밀어내고 지금, 이 현재를 즐기기를 바란다. 이 소설은 그러한 희망을 불씨를 지펴 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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