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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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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묻힌 거인’에 나오는 주인공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기억을 되살려 아들을 찾기 위해 대장정에 오른다. 그 중에 부부의 사랑이 있어야 무사히 건널 수 있는 섬이 나타나는데, 그 배경이 의미심장하다. 부부간에 사랑이 있어야만 그 섬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설정아래 나라면, 그 섬을 건널 수 있을까. 여기서 잠깐 생각을 해보자. 손을 가슴에 대고 양심에게 물어보자. 우리 부부가 함께한 가장 소중한 기억이 무엇인지. 우리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이란 것이 존재했는지. 이것도 아니면 나에게 소중했던 순간이 있었는지. 기억이 아련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기억은 첫 만남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29살, 아내는 26살이었다. 뜨거운 청춘남녀는 3개월 만나고 나서 결혼 약속을 했다. 아내를 인천에 있는 집으로 데려갈 때 설레던 그 마음과 어머니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후론 아내와 ‘단 둘’이 여행을 갔을 때가 기억이 난다. 왠지 연애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 느낌. 이처럼 소중한 기억은 나에게도 있다. 단지 살면서 애들 때문에, 또 어떤 때는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살아온 게 죄라고 하면 죄일 것이다. 이것으로 소중한 기억을 쌓지 못한다는 핑계를 댈 수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아내와의 소중한 기억을 의식적으로 더 많이 쌓으면서 살아야겠다. 현실적으로 부족할지 몰라도 할 수 있는 노력은 해야겠다. 아직 늦지 않았기에.

 

그 다음으로 소중한 기억은 딸 예원이와 채원이가 태워 났을 때이다. 둘 다 제왕절개수술을 해서 낳았다. 첫 째는 2.6Kg이고 둘째도 이와 비슷한 2.7Kg으로 기억한다. 직접 엄마 배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진 못했지만, 그 짧은 5분의 기다림이 왜 그리 길던지 안절부절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을 첫 대면하는 순간은 감격이 밀물처럼 밀려왔었다. 그리고 작년에 가족 해외여행을 갔다 온 기억이 아닐까 싶다. 네 식구가 함께 한 여행은 애들이 다시가자고 보챌 만큼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순간, 여행지에서의 있었던 일들이 새롱새롱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소소한 일상(하루하루의 삶)을 둘 수 있다.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를 즐겁게 살라는 뜻이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다보면, 잘게 쪼개진 일상이 모여 삶이 되고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망각의 안개’가 나온다. 이들 부부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온 마음을 다해 보살피지만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는 기억하는 것이 없다. 마을을 뒤덮은 망각의 안개는 이들 부부뿐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의 기억을 앗아갔다. 이 안개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기억도, 오랜 원한과 상처에 대한 기억도 모두 가져가버렸다. 이처럼 우리 삶도 망각의 안개에 뒤덮여 소중한 것을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도 금방 떠오르지 않는 것은 소중한 기억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능력이 없어서일 것이다. 망각의 안개처럼.

 

오늘도 지나면 과거가 되듯,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즐겨야 한다. 기억이란 좋고 나쁨을 떠나서 과거의 있었던 것들을 전부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간직하려고 한 것은 오히려 모래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듯 술술 빠져나간다. 반면에 잊어버리려고 한 것은 생생히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는 이와는 반대로 좋은 장면이 오래 남는 경우도 있고, 어떤 나쁜 기억은 아예 흔적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이처럼 기억이란 것은 신뢰가 떨어진다. 기억은 서로의 관점에서의 간직하고자 하는 면만을 저장해놓기 때문에 같은 기억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그렇지만 가장 소중한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그만큼 기억 속에 남길 만큼 충격적이면서 단순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것이 오래 남는 법이다. 복잡한 것은 우리 뇌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켜 기억나지 않게 한다. 우리는 그것에 감사하고 있다.

 

기억은 뇌의 용량과도 관계가 있다. 망각의 안개처럼 전부 잊어버리지 않고 소중한 기억만큼은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소중한 기억은 뇌의 용량과 상관없이 기억되기 마련이다. ‘망각의 안개’에 휩싸여서라도 잊을 것은 잊고 간직할 것만을 기억하고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것이 소중한 기억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우리는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억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야 한다. 소중한 기억을 살릴 수 있는 여행 말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이기 때문에,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 작은 뇌 속에 간직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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