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 - 운주사 천불천탑의 용화세계 - 학고재신서 10
요헨 힐트만 지음 / 학고재 / 1997년 2월
평점 :
품절


참으로 놀라운 시각을 지닌 요헨 힐트만 교수의 진지한 성찰이 무척이나 돋보이는 책이다. 동양 문명과는 그 질을 철저히 달리하는 기독교 문명의 수혜자가 낯선 동방의 외딴 절을 이다지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을까? 그의 사진과 해설을 보면 운주사는 현미경적으로 잘게 분해되어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

한국인 아내를 통해 정서적인 일치감을 가지고 운주사를 접근한 연구태도에선 친밀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기층 민중적인 시각에서 운주사의 과거와 오늘을 해석하고자 하는 자세는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미륵사상이라는, 어찌보면 간단치 않은 주제를 담지하고 있는 이 책은 작은 절 안팎에 널려 있는 이름모를 불상과 스투파(탑의 어원)를 지극히 불교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비록 그 형상이 화려한 대웅전의 본존불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소박한 표현미를 지닌 불상들을 살아 움직이는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노력이 돋보였다.

그의 친절한 사진과 설명, 어린 시절 목수 할아버지와의 우정을 털어놓는 속내들에선 자연과 합일되는 통일의 원리를 깨닫게 한다. 불상 주변의 가시 철조망을 인화과정에서 제거하는 수고와 논밭에 한적히 서있는 불상들을 농민들과 함께 게재함으로써 거리감을 없애고자 하는 노고에선 경외감마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멧세지를 전하고 있다. 보잘것 없이 조각된 불상과 이질적인 양식의 스투파들은 우주의 본질을 향한 열려있는 마음이다. 그 열려있는 마음은 미륵불로 표현되는 와불의 일어섬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와불이 일어서는 날 백제민중의 한은 풀린다는 염원에서 부당한 권력을 향한 치열한 저항정신을 엿볼 수 있다.

마이트레이야(미륵)사상은 민중의 한을 대변하는 사상이다. 비록 현실은 고된 노동과 가난으로 점철될지라도, 미래의 행복을 위한 끊임없는 열망이 하찮은 돌들을 살아 있는 미륵으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운주사엔 이런 소망을 담담히 간직하고 있는 백제유민의 한이 면면히 흐르고 있으며, 힐트만 교수는 예리한 지성으로 이를 우매한 현대인들에게 소상히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번역된 문맥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진한 쟈스민 차와 함께 햇살 가득한 발코니에서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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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8-0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대갑님 책을 읽다가 님이 적어 놓은 글을 읽어 봤습니다. 잠깐 제 페이퍼로 옮겨 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