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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더럽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흥 아시아 국가든 다른 어디서든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부는 자본에서 나오고, 자본은 노동에서 나오며, 노동은 들어오는 열량과 나가는 열량 사이의 균형, 곧 생물학적 기계 장치 고유의 에너지 효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어서 확장을 도모하고 싶다면 강제력을 약간 동원해 그 기계 장치를 당신의 의지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127쪽).
더럽게 부자가 된다? 더러운 방법으로 부자가 된다는 것인가, 돈에 대해 얼마간의 경시의 마음을 담아 정도가 심한 부자를 빗댄 것인가, 그도 아니면 부자란 족속이 원래 아니꼽고 못마땅하다는 속내를 드러내기 위해 더럽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인가, 고개가 갸우뚱. 원제는 ‘How to Get Filthy Rich in Rising Asia’. 설마, 원제가 그렇겠어? 하는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모신 하미드는 더럽다 추잡하다는 의미의 Filthy를 사용해 물질로서의 단순한 돈이든, 돈을 벌고자 하는 저급한 마음이든, 또는 돈을 버는 온당치 못한 방법이든, 물질을 쫓는 데에 숨어있는 추잡함을 강조했다. ‘돈’에 깊숙이 관련되는 것은 그다지 존경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즉 이제 막 서양의 자본주의 국가들을 흉내내며 돈의 세계로 뛰어든 아시아 신흥국가에서 성공과 부정·부패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마
도시로 나간다, 교육을 받는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이상주의자를 멀리한다, 고수에게 배운다, 스스로를 위해 일한다, 폭력 사용을 마다하지 않는다, 관료와 친구가 된다, 전쟁 기술자들을 후원한다, 부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등은 지은이가 추천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이른바 ‘더럽게’ 부자가 되는 방법이다.
작가의 가르침에 따라 더럽게 부자가 되려는 소설의 주인공은 상대적으로 낙후한 아시아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를 따라 도시로 이주하기 전에는 초콜릿이나 리모콘, 스쿠터 따위는 구경도 해 본적이 없다. 더 나은 살림살이를 기대하며 그들 가족은 도시로 이주했다. 다섯 식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 누나나 형은 가정경제를 위해 자기를 희생해야 했다. 그러나 셋째인 주인공은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기 원했던 아버지에 의해 교육을 받는다. 영리했던 주인공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더 나은 삶을 바라며 공부에 열정을 쏟는다. 뿐만 아니라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멀리하려 기를 쓰고, 이상주의를 배척하는 등 작가의 가르침을 따르며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쓴다. 드디어 부자가 되는 주인공은 책을 읽는 바로 ‘당신’이다. 작가는 특정국가 특정지역 특정인에 한정하지 않는 작법을 구사해, 책을 읽는 독자 누구라도 주인공인 ‘당신’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취한 자기계발서거나 자기계발서의 모양을 갖춘 소설이니까.
부자 바이러스에 대해서 알려주마
여기서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주인공인 당신이 부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마을 사람들이 용변을 보는 하류보다 조금 상류에서 빨래를 하고, 그보다 조금 더 상류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그보다 더 상류에서 사는 사람들이 용변보고, 빨래하고, 식수로 사용하는 도랑을 낀 마을을 벗어나 제대로 된 식수를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부(도대체 그것을 ’부‘라고 부를 만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로 만은 왜 충족되지 않는 것일까.
풍요로워 질수록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증상을 이르는 용어로 어플루엔자(affluenza)가 있다. 이는 풍부를 의미하는 어플루언트(affluent)와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로,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이 갖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탐욕스런 욕망이 빚어낸 질병을 의미한다. 어플루엔자에 감염이 되면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의 증상을 보이며 채워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갈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각 개인들은 어플루엔자에 어떻게 감염되는가. 그것의 비밀은 세계화에 있다. 자본주의를 쫓는 신흥사회 역시 이 병을 피할 수 없고 ‘당신’ 역시 다르지 않다고 모신 하미드는 말한다.
작가는 이전 작품인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통해 9.11 사태 이후, 중동 출신이라면 무조건 근본주의에 빠진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을 하는 미국사회의 역근본주의에 대해 썼다. 반면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은 아시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가들의 독자들을 겨냥한 듯한 어조로 무조건적인 자기계발 즉 모방이 사실은 세계화의 하나가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결론을 말해주마
자기계발서는 성공, 처세, 인생, 인간관계 등에 집중하며, 이에 대처하는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다 거기서 거기인 내용을 반복 강조하고, 사회구조적인 문제까지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곤 할 뿐만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할 수 있다’는 강제된 낙관만을 전파하는 자기계발서의 천박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자기계발서를 등한시하게 되곤 하는데, 사실은 모든 책이 자기계발서라는 지은이의 지적은 참으로 인상 깊다.
자기계발서의 범주에 속하는 책들이 그야말로 수없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왜 당신은 숨막히게 지루한 외국 소설을 읽느라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는가? 수많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한 장을 넘기는 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그런 책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 삶에 점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세계화 때문에 까마득히 멀리 있는 나라들까지 이해하고 싶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충동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이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가 아니면 달리 무엇이겠는가?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나온 책은 모두 하나같이 독자들에게 이런저런 자기계발의 근거를 제공했다. 쓰레기 같은 교과서를 떠올린다면 이 주장을 부정할 수 없을 터다. 그리고 도시로 나온 지 몇 년이 지난 당신이 지금 길을 걸을 때 손에 든 책이 바로 교과서다(27~28쪽).
프린스턴과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뉴욕에서 경영 컨설턴트로도 일했던 작가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에서 '미국이 세계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분개하고 있었다' 라고 고백한 후천적(?) 근본주의자에 대해 썼다. 그 고백에 대해 통쾌함을 느꼈던 나는 후속 작품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에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진리는 어김없다. 다만, 인생이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일 뿐임에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낙관주의로 점철된 자기계발서를 배척했던 그간의 오만함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다소 엉뚱한 결론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