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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캐리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19세기 말의 어느날, 시카고 발 조간 신문의 한 귀퉁이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살롱 피츠제럴드 앤드 모이스의 지배인, 금고를 털어 달아나다'
○○일,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 시카고의 화려한 살롱 중 하나인 피츠제럴드 앤드 모이스의 지배인이 금고를 털어 달아났다. 살롱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메이휴 씨는 전날 영업이 끝난 후, 돈을 금고에 넣고 다이얼을 돌려 잠근 후 퇴근했다가 다음날 출근해 보니 금고는 잠겨있었지만 돈은 전부 사라졌다고 말했다. 메이휴 씨는 자신이 퇴근할 때 살롱의 지배인인 허스트우드 씨가 남아 있었으며, 영업 후 마지막까지 남아 문단속을 하는 것은 지배인의 일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배인 G.W. 허스트우드 씨는 돈과 함께 사라진 후,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적극적이면서도 정중한 태도로 믿음이 가는 분위기를 풍기는 허스트우드는 이제 막 사십 대에 들어서는 중년의 남자다. 그저그런 살롱에서 바텐더로 출발한 그는 영리한 두뇌와 빠른 상황판단으로 상류층이 드나드는 살롱의 지배인 자리에까지 올랐다. 최고급 양복과 금시계로 멋을 내고 배우, 사업가, 정치가들을 비롯한 유명인들과 격의 없는 태도로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위치가 된 것이다. 그의 집은 당시 유행하던 삼층짜리 건물로, 멋진 가구들과 그랜드피아노, 수많은 장신구들로 완벽하게 꾸며져 있었고, 허영심 많고 화려한 아내와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을 두었다. 그의 가정은 인내와 배려가 있는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겉모양은 아주 그럴듯한 상류층에 속했다. 허스트우드는 완벽하진 않았으나 그런대로 자신의 지위와 위치에 만족했으며, 이미 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사에 몸을 사리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자신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 즐길 법한 재미를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내를 속이고 가끔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해 행동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항상 눈감아질 만한 지점에서 멈춰져야 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모험을 감행할 정도로 즐거움을 탐닉하는 법은 없었다. 그때까지 그가 원했던 것은 '안정'이였다.
그러나 어느날 모든 것이 달라졌다. 허스트우드가 '욕망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금지 된 것, 즉 이웃의 아내를 탐하게 되었다.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질 것이 예상되던 지점에서,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처럼 생각되자 그는 이성을 잃는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캐리'라는 여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속인다. 그러나 그는 단지 불가능을 욕망했을 뿐이다. 스스로 촛불에 몸을 던지는 부나비처럼 보이는 것 없이 달려들던 허스트우드는 이제 도둑이 되어, 한때나마 자신의 것이었던 모든 것들로 부터 버림받게 된다.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지위가 있고, 특별히 행복하진 않되 안정적인 가정도 있으며, 상류층으로서의 생활이 가능한 경제적 능력까지 갖추었던 허스트우드는 어째서 그 모든것을 던져버리고 단 하나의 여자만을 쫓게 된 것일까.
찰스 다윈의 진화론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자연주의 작가들은 한 인간의 성격은 유전과 사회적 환경과 행동할 당시의 외부적 압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즉, 인간 행동의 근저에는 본능이 뿌리깊게 작용한다고 본 것이다. 때문에 자연주의 소설에는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닌 본능과 욕망에 휘둘리며 풍랑을 겪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욕망의 특성이 그렇듯 타락과 배신, 빈곤, 질병과 같은 인생의 어두운 면에 집중하게 된다. '자연'을 생각할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따뜻함이나 생명의 충만함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정제되지 않은 욕망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자연주의 문학이다.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시스터 캐리>로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우리는 인간이 정글의 법칙에서 멀리 벗어나 있으며 타고난 본능은 무뎌져 자유의지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는 아직 본능을 대신하여 인간을 완벽하게 이끌어줄 수 있을 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인간은 본능과 욕망에만 귀기울이기에는 너무 현명해졌으나 본능과 욕망을 압도하기에는 여전히 너무 나약하다. 짐승으로서의 생명의 힘은 인간을 본능과 욕망의 편에 세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우리는 아직 그 힘과 보조를 맞추는 법을 온전히 배우지 못했다. 인간은 본능에 따라 자연에 녹아들어 조화를 이루지도 못하고, 아직은 자유의지에 따라 현명하게 스스로를 자연과 조화시키지도 못한 채 어중간한 단계에서 흔들리고 있다. 인간은 바람 속의 나뭇잎처럼 한때는 자기 의지에 따라, 한때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식으로 열정의 숨결에 따라 그때그때 움직인다. 자유의지에 따라 실수를 저질렀다가 본능으로 회복하기도 하고 본능으로 인해 쓰러졌다가 자유의지로 일어나기도 하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변동이 심한 존재이다. 어쨌든 진화는 계속되며 이상은 결코 꺼지지 않는 불빛이라는 사실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106쪽)
삶에 특별한 부족함이 없었던 허스트우드가 안정을 버리고 욕망을 쫓은 것은 의도되지 않은 본능적 행동이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성찰이나 철학이 끼어들 틈이 없다. 허스트우드 외의 또다른 주인공 캐리와 드루에 역시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 행동하며, 그로인해 잘못된 결과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부도덕한 행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배우로 성공하는 캐리는 인간들의 부질없는 과시와 욕망의 이면을 읽는 것처럼 보이는 명민하고 지적인 남자 에임스에게 마음이 끌리면서 삶의 또다른 측면에 대해 고민한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분신처럼 보이는 에임스는 본능을 넘어선 자유의지를 갖고있는 인물로 보여진다. 작가는 에임스라는 인물을 통해 캐리가 변화하는 모습을 예측하게 함으로써 인간 일반을 움직이는 것은 욕망이지만, 자유의지의 인간으로 발전할 가능성 또한 믿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한편, 지적인 성찰이 가능한 에임스가 자신의 지적 경험을 전부 뒤흔들만한 강렬한 욕망 앞에서는 어떻게 행동할지가 궁금하다.
- <시스터 캐리>에는 '살롱 피츠제럴드 앤드 모이스의 지배인, 금고를 털어 달아나다'라는 식의 보도 기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신문 기사로부터 소설이 출발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을 뿐이다. 신문은 일어난 사건에만 촛점을 맞추고 단신으로 보도되지만, 작가는 기사 한 줄에서도 그 너머의 일을 상상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소설 <시스터 캐리>는 신문 기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 캐리는 작가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누나인 에마 드라이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술집 지배인인과 동거를 하던 에마는 그가 훔친 돈으로 함께 뉴욕으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