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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8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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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인의 준수한 외모를 타고나 스웨덴 사람이라는 의미의 '스위드'라는 별명을 가진 시모어 레보브는 미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 삼대다. 레보브 가족은 삼대에 이르는 여성용 장갑 사업으로  미국 정착에 성공한 것이다. 그들은 성실히 일했고, 저축했고, 그럼으로써 부를 이루는 면에서 성공함으로써 미국 주류사회에 깊숙이 동화 되었다. 
 

스위드 레보브의 삶은, 내가 아는 한, 매우 단순하고 매우 평범했으며, 따라서 딱 미국인의 기질에 맞게 훌륭했다. -1권, 56

타고난 외모와 운동신경, 거기에 순응주의적인 유순함으로 만능 운동선수로 인정받고, 부모의 자랑이 되고, 나아가서 학교와 유대인 사회에서 영웅으로 청소년시기를 보내며 성장한 스위드는 아버지의 바램대로 운동을 그만두고 장갑사업에 올인해 사업 또한 훌륭히 번창시킨다. 넘치도록 복을 타고나 무엇에서나 어디에서나 성공한 사람처럼 보여지던 스위드는 그러나 광기에 사로잡힌 자식 앞에서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평생의 그는 단지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을 뿐인데. 자신의 가족이 최고의 것들을, 그 모든 것들을 갖기를 바랐을뿐인데.
우리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그런 평범하고 품위 있는 인생이지만, 거기에서 끝이라고. 사회적 규범들을 갖추었지만 거기에서 끝이라고. 자비롭지만, 거기에서 끝이라고. -1권, 108쪽
유대인 스위드 레보브와 가톨릭교도이며 아일랜드인인 돈 드와이어 사이에 태어난 인종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잡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메리는 폭발범이 되어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메리가 폭발시킨 것은 단순한 폭발물만이 아닌 바로 그녀 자신이였으며, 따라서 그녀가 살해한 사람도 무고한 시민만은 아니였다.
자유주의적이고 합리적이며, 마음씨 고운 아버지로부터 다정함의 세례를 받으며 자란 메리는 그녀 스스로 폭발물이 되어 언제나 항상 바르고 완벽하기만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아버지 시모어 레보브의 '스위드'라는 아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도록 행동하며, 질서가 잘 잡혀있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스위드적인 방식은 무너지고 시모어 레보브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던가 하는 회한만 남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메리는 폭발물로 네명을 살인 한 후, 비폭력 개념인 아힘사를 이념으로 하는 자이나교도가 되어 모든 생명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물조차 사용하기를 거부하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죽여간다. 그녀는 또한 자기 자신은 무엇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고, 현재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식인 메리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스위드는 모든 것을 거부하며 스스로 죽어가는 메리로 인해 스위드 자신의 삶 또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메리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한 스위드는 과거의 삶을 무효로 하고, 다시 결혼하고 다시 세아들을 낳고 안정적인 삶의 방식을 다시 설계하고 완성하는 것처럼 연출하지만 그의 내면은 강박과 억눌린 욕구, 회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번민,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가책 등으로 피폐해져 안정이라는 가면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미국적인 삶이며 스위드적인 이중생활이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1권, 62쪽
스위드와는 반대로 동생인 제리 레보브는 하루 매분마다 자기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인물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며, 의견충돌이 일어나면 그가 아버지일지라도 서슴치 않는다. 제리의 세계에서 제리는 그 스스로 왕이다. 그는 그 자신의 욕구나 증오를 비밀로 감추지 않으며, 자신의 혐오스러운 면을 남들에게 정당화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런 제리는 아버지에게 불효자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삶은 자기만족적인 면에서 성공적이다.
그런데 스위드와 제리 그 둘은 형제다. 다만 스위드는 순종적으로 길러진 반면, 제리는 자기주장이 강한 하나의 주체로 자라난 것이다. 타고난 유전적 성향이 달랐던 걸까, 아니면 첫째는 순응적으로 길러지기 마련이라는 양육방식이 달랐던 것일까.
아이가 한 성인으로 성장하는데는 생물학적 영향보다는 환경적 영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스위드와 제리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역시 양육방법이 달랐던 것으로 믿고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정상의 규범을 넘어선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 메리는 유전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완벽해 보이는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황스럽다. 
 
제리와 스위드 둘 중 어느 누구의 인생이 더 성공적이였는지 객관적인 판단은 힘들다. 스위드가 끔찍한 고통을 이기고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이고, 관용적이며 따라서 주위 사람들과 융합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삶을 이룬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더욱 피폐해 질 뿐이었다.  반면 제리는 네번의 이혼과 소리치는 외과의라는 별명에 걸맞게 주변인들과 불화하며 남을 불쾌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내면이 안정된 사람이다.
 
매사를 충실하게,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타협적으로, 그러면서도 가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스위드가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고 화가나면 소리를 지르고, 필요하다면 아버지에게도 욕을 하고, 비서를 갈아치우듯 아내를 바꾸며 삶을 자신의 뜻대로 몰아가는 거친 제리 그를 인생의 비밀을 알고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
어떤 것이 좋은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단정을 지을수는 없지만, 내 아이에게 권하고 싶은 삶은 제리의 삶이다. 삶에 충실하되 충실함의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할 터이니까.
 
그런데 그들의 삶이 뭐가 문제인가? 도대체 레보브 가족의 삶만큼 욕먹을 것 없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2권, 288쪽
스위드와 제리의 아버지 루 레보브는 음식을 거부하는 술주정뱅이 제시 오컷을 교정하려다 피를 본다. 이 마지막 장면은 이 소설의 모든 것을 함축해 보여주는 것 같다. 모든 규범, 모든 제약, 모든 질서, 모든 옳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저항한 메리는 포크를 든 술주정꾼 제시이며, 모두를 책임져야 할 의무를 짊어진 규범의 아버지 루 레보브는 다름 아닌 시모어 레보브인 스위드이며, 규범과 정의로 일컫어지는 것들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실소를 흘리는 문학교수 마샤는 바로 사라진 메리의 전갈을 갖고 왔다라고 스스로 주장하며 스위드를 농락하는 리타 코언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늘 존재하는 것 같았다. 광포하게 날뛰는 무질서가 얼마나 멀리 퍼져나갔는지 음미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견고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얼마나 공격받기 쉽고, 무르고, 연약한지 확인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2권, 288쪽
얼마전 개봉했던 영화 <역린>은 영화가 산만했다는 평을 듣는다. 드라마 <다모>와 <베토벤 바이러스> 등을 연출했던 이재규 감독이 2시간 15분 안에 미니 시리즈 분량의 이야기를 다 담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미국의 목가>를 읽으며 필립 로스 역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너무 광범위하게 펼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 오히려 몰입도 흥미도 떨어진 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러나 가지가 너무 많아 산만하고 어지럽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한 줄기로 모인다.
그 모든 장치들과 스토리들은 필립 로스는 결국 이야기의 천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토록 탄탄한 줄거리를 자아낼 줄 아는 모든 소설가, 모든 작가들은 천재라고 이해할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딱 한번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가 좋을까 상상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불편해지는 일을 그 무엇보다 싫어하지만 그것이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지금, 딱 한번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막 10대로 들어서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라면 내 모든 불온한 상상을 실천할 수 있을테니까. 세상을 향해 좀 더 불손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이제야 비로소 들었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안정적인 성품을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스위드와 같은 부류의 사람인 나는 내 속에 자신을 감추지 않고 싶어하는 제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미국에 동화되지 못한 유대인의 목가가 아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인간의 목가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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