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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지음 / 래빗홀 / 2024년 6월
평점 :

김이삭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는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는 K-호러의 인기를 이어가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괴담, 괴력난신, 오컬트 호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소설작품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크게 와닿는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점에서 볼때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그런 작품이다.
단편 모음집이기도 한 작품은 총 5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기이한 분위기 속 잔잔한 공포 뒤에 오는 반전이 백미라고 생각한다.


「성주단지」는 어떤 이유에서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연고도 없는 연구소로 떠나게 된 주인공이 연구소 근무와 함께 소장이 지내던 고택에서 거주하는 조건으로 관리까지 맡게 된 후 겪게 되는 기담을 그리고 있는데 믿기 힘든 초자연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결국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마음 속 두려움에 당당히 맞섰기에 기담이 아닌 현실 속 두려움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야자 중 xx 금지」는 상당히 특이한 분위기로 일제 시대부터 존재했던 한 여고를 배경으로 흔히 오래 된 학교에 하나쯤 있는 학교 괴담을 소재로 하는데 그 괴담이라는 것이 교칙과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괴담을 깨려는 이들이 꼭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본관에서는 야자가 금지이며 닫힌 문은 절대 함부로 열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를 깨고 야자 시간 본관 건물의 닫힌 문을 강제로 연 세 여학생이 겪는 갇혀버린 시간 속 탈출기가 과연 진짜 탈출한 게 맞는 건가 싶은, 그러면서 그러지 못한 존재는 과연 그속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을까 싶은 상상을 해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낭인전」은 옹녀와 변강쇠의 호러 버전이라고 해야 할것 같은데 나라가 기근과 추위로 힘든 때에 사주처럼 결혼만 했다하면 남편이 죽기에 결국 살던 마을에서 강제로 쫓겨난 옹녀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 늑대인간이 변강쇠를 만나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마을에서 쫓겨난 낭인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 그러나 이 낭인이 떠도는 이가 아닌 늑대를 의미하는 낭인이라는 중의적 의미의 존재의 등장과 함께 독특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이였다.
시종일관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작품이라고 하면 「성주단지」와 「풀각시」였는데 두 작품 모두 이야기의 주요 무대가 고택이라는 점에서 그 기묘한 주택 구조가 주는 분위기가 묘미였는데 「풀각시」의 경우에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친정 이야기를 둘러싸고 과거 종가에서 행해졌던 기복의 행위가 누군가에겐 액받이나 다름없었고 누군가에게 살(殺)을 날리면 그것이 결국 자신에게도 어떤 식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속 할머니의 속죄가 한편으로는 안타깝게도 그려지는 이야기다.
가장 반전의 작품이 「교우촌」으로 서학에 대한 탄압이 한창이던 때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고해성사가 이어지는데 과연 그녀가 저지른 일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서론이 길까 싶으면서 오빠와 자신들이 탄압을 피해 교우촌에서 생활하던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가면서 드러나는 진실이 충격과 반전을 선사하는 작품이였다.
한 인간(집단)이 겪었던 인생에서의 상처와 회한, 아픔, 배척으로 인해 발생했던 일들이 호러와 괴담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현실 속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나 한국적 소재라는 점에서 더욱 그 공포가 단순한 공포가 아닌 현실적 공포로 다가오는 면도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