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통해 본 철학이야기
김향선 / 북코리아 / 1994년 10월
평점 :
품절


철학은 왜 어려워야만 되는 것일까? 지금 내 앞에는 흰 표지에 까만 글씨 너무 평범한 책이 한 권 놓여있다. 이것이 철학 책이다. '굵다란 글씨에 큰 그림까지… 그 어렵다는 철학을 이 정도의 무성의함(?)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내가 이 책에 대해 처음으로 내린 평가였다. 상식을 깬 책의 모양을 보며 나는 더욱 책에 몰입했다. 이 책을 임의로 철학의 도입, 본질, 철학과 현실로 나눠서 생각해 보았다.

첫 이야기는 비트겐스타인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다. 비트겐스타인은 파리잡이 항아리를 우주에 비유한 정말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철학자였다. 항아리 속에 갇힌 파리가 항아리를 빠져나가려 함을 우리 인간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갈구하며 처해진 상황을 벗어 나가려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이 얼마나 탁월한 비유인가!
비트겐스타인은 이 비유에서 모든 인간은 자기의 길을 찾다가 끝내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맞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인간이 찾아가는 자신의 길이란 과연 무엇일까? 거기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며 '사르트르의 견해'를 접해갔다. 이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 나는 철학에 대해 아무런 접근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사르트르의 견해'를 읽고서는 어렴풋하나마 철학을 이해하게 되고, 또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느끼고, 또 어떤 것을 바라며 살아간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2가지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가 대자존재 즉, 의식적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즉자존재 즉, 비의식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 말 자체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 시켰다. 삶의 본질이 모두 이 두가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여기서 나는 철학의 다양성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자기가 추구하는 삶의 본질, 다시 말하면 대자존재를 추구하는가 즉자 존재를 추구하는가에 따라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 철학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철학과 현실. 이 주제는 책의 첫 부분부터 끝 부분까지 등장한다.「철학은 문학과 어떤 관계인가?」이 책의 첫 구절이다. 답은 철학의 언어는 분석적이며, 문학의 언어는 서술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인간과 관련된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허준의《동의보감》을 철학적으로 연구해 놓은 부분에 잘 나타나있는데 특히 허준의 스승 유의태의 태도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비인부전, 살신성인'의 정신이 그것이다.

만약 내가 유의태라면 내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며, 산 나를 죽여 제자의 연구를 도울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그러나 유의태의 철학은 이를 가능하게 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철학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유의태의 인생관에서 그만의 철학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언젠가 어떤 책에서 철학의 정의에 대해'철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나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 철학은 쉬운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조차 전부 알지 못하므로… 철학은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열심히 자아를 발견하려는 노력도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내게는 조금씩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철학이 결코 멀리 있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 그리고 주변에 대해 조금만 생각의 폭을 넓혀나간다면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책을 받아든 순간 나의 경솔한 판단이 무색해졌다. 이제는 배움에 대한 큰 뿌듯함을 느끼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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