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
성유보 외 6인 지음 / 월간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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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헤겔이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위대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 -마르크스

후대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012년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2012년을 어떤 해로 기억할까? 추측컨대 총선과 대선,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올해를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분명 사상 유례가 없는 언론사의 연이은 파업이 있었던 해로 2012년을 떠올릴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최근 MBC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이어지는 언론사의 파업은 심상치 않다. 사상 초유의 방송3사 파업으로도 모자라 언론자유를 외치는 목소리는 <국민일보><부산일보><연합뉴스>로까지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다. 실 언론자유를 위한 싸움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언론의 역사는 곧 언론통제와 언론탄압의 역사이기도 했고, 이에 맞서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1974년~1975년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싸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의 싸움은 한국 언론사의 한 장을 화려하게 수놓을만한 순간이다.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는 동아투위 위원장이었던 성유보 외 6인이 정리한 '동아투위의 언론자유 투쟁사'다. 이제 40여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현재성을 갖고 살아 숨 쉬는 한국 언론사의 기록이다.    

"차라리 사설을 없애는 게 낫겠다"

유신을 앞둔 시기의 한국 언론은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은 기관원을 언론사에 출입시켜 비판적 보도를 막는 등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했고, 언론은 이에 굴복했다.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주간신문협회가 유신 선언 다음 날에 지지성명을 발표한 데서 볼 수 있듯 언론은 권력에 빌붙어 구차하게 연명하고 있었다. 1971년 3월 26일에는 서울대 학생회장단이 동아일보사 앞을 찾아가 언론화형식을 하고, '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을 낭독했을 정도다.

"…듣건대 일선 기자의 고생스런 취재는 겁먹고 배부른 부·차장선에서 잘리기 일쑤고, 힘들게 부·차장 손을 벗어나면 편집국장 옆에서 중앙정보부원이 지면을 난도질하고 있다니 이것이 무슨 해괴한 굿거리인가. 통탄할 언론의 무기력과 타락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204p에서 재인용

학생들의 말은 다소 과격했을지언정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언론인 송건호가 인용한 당시 어느 언론사 한 논설위원의 말이다.

"상공부 문제는 이런 사정으로, 서울시 관계 문제는 저런 사정으로, 건설부 문제는 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경제기획원 관계 기사는 또 다른 사정으로 모두 사설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회사측의 지시니 차라리 사설란을 없애버리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저항의 움직임은 있었다. 자유언론을 향한 기자들의 열망은 두 번의 언론자유수호운동을 거쳐 마침내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폭발했다. 200여 명의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고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떤 외부 간섭도 배제할 것 ▲기관원의 출입을 거부할 것 ▲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거부할 것을 결의했다. 

정부가 이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광고주에게 압력을 행사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싣지 못하게 하는 강경책으로 이에 맞섰다. 12월 16일 한일약품의 광고부장이 광고 동판을 회수한 이후 광고해약이 줄을 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광고국장이었던 김인호의 말이다.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온 대광고주로는 대기업 및 일반기업, 극장, 출판사 등이 있었다. 이들 회사의 사장과 광고담당 간부들은 중앙정보부에 불려가서 "왜 동아일보에만 광고를 내느냐" "앞으로 동아일보에 계속 광고를 내면 곤란하다"는 등의 협박을 받았다. 몇몇 회사들이 조금 버티기는 했으나 1974년 연말께 가서는 대광고주들의 거래는 완전히 중단됐다."

언론사주, '언론자유의 적'이 되다

당시 <동아일보> 독자들은 사비를 털어 격려광고를 내면서 어려움에 처한 기자들의 싸움을 응원했다. 1974년 12월부터 1975년 5월까지 하루 평균 350건, 총 무려 5만 건의 격려광고가 쏟아졌다. 저자 중 한 명인 임동욱 광주대 교수는 "4개월 동안이나 이어진 격려광고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수용자운동이었다"고 말한다. 책 제목 역시 어느 격려광고의 '동아! 너마저 무릎 꿇는다면 진짜로 이민갈 거야'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경영난에 빠진 <동아일보>는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문제기자'를 탄압함으로써 사태를 수급하려 했다. 3월 8일에는 자유언론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안성열, 조학래를 포함해 18명의 사원을 해임했고, 10일에는 2명을 추가 해고했다. 기자들은 이에 12일 긴급 총회를 갖고 제작 거부와 농성에 들어갔지만, 17일 회사 측은 보급소 직원을 동원해 폭력으로 이들을 진압하고 해산시켰다.

기자들은 폭도들에 의해 창턱으로 끌려가 창밖으로 내던져졌다. 창 너머 별관 베란다에는 깨진 유리조각들이 수북히 쌓여 있어 밖으로 떨어진 기자들은 손을 다쳤다. 창문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폭도들은 밖으로 나온 기자들의 팔을 양쪽에서 껴안고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욕설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 100p

강제해산 다음날 해임기자들은 해임자의 복직, 이동욱 주필과 이동수 방송국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동아투위를 결성했다.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동아투위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치권력의 탄압에서 시작된 광고해약 사태가 결국 언론사의 자발적인 굴종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주동황 광운대 교수는 "광고사태의 초기 성격은 권력에 의한 언론탄압이었지만 사건의 처리과정은 결국 언론사주의 야합과 전횡이라는 현대 언론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던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정권의 탄압에 굴복한 언론사 스스로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자유의 적'이 된 것이다. 

"새 시대 새 기수 전두환 대통령"... 제도언론의 굴종

결과적으로 동아투위의 투쟁은 패배했다. 물론 동아투위의 투쟁은 후에 월간 <말>과 <한겨레신문> 등으로 이어졌으니 이들의 싸움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동아일보>를 바꾸지 못했고, 제도언론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동아투위 위원이었던 김진홍 한국외대 교수는 동아투위의 패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기자와 경영주간의 갈등인 동시에 언론과 권력의 대입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이 동아일보 기자의 대량 해고사건은 1970년대 한국 언론이 처한 문제점을 여러 측면에서 한꺼번에 노출시킨 사건"으로 이로 말미암아 "언론자유의 결실을 못 보고 자유언론실천운동이 무산되고 말았으며, 이로부터 한국 언론은 거의 완전하게 정부의 장악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한국 언론은 보다 '안정적인 권언유착관계'를 보여주는 유신언론화 시대를 용인하게 되었다.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 137p~138p

박정희 정권 이후에도 언론의 곡필은 계속 됐다. <동아일보>는 1980년 8월 29일 '새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우국충정 30년…군생활 통해 본 그의 인간상/ 정직 성실…평범 속의 비범 실천','의협심 많은 청소년 시절' 등의 기사를 통해 광주를 무참히 짓밟고 집권한 전두환을 찬양했다.

민주화 열기로 전국이 들끓고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아 사경을 헤매던 1987년 6월 12일에도 "시위자와 저지경찰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가리기 어렵지만 폭력과 과잉진압의 악순환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최루탄과 화염병의 악순환-서로 적대감을 줄여나가야 한다')며 어이없는 양비론을 폈다. 동아투위의 패배 후 굴종의 역사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오랜 세월 한국의 제도언론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

언론탄압의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언론사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치권력과 언론사주가 합작해 <동아일보>를 망가뜨리고 이에 맞선 기자들을 탄압한 1970년대의 동아투위 사태는 현재의 언론사 파업과 겹친다.

MB정권에서 정치권력의 통제에 의해 방송이 망가진 예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MBC <PD수첩>은 '큰집에 불려가 쪼인트 까이고 좌파를 청소한'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5차례나 방송이 보류되거나 사전 검열됐다. 모두 4대강, 한미FTA 등 정권에 불리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KBS에서는 'MB 특보 출신' 김인규 사장 취임 후 4대강을 다룬 <추적 60분>이 2주간 불방됐고,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정황이 일부 드러났다. 역시 'MB 특보 출신' 구본홍이 취임한 후의 YTN은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가짜편지의 작성자 신명 씨 관련 특종 기사를 자르는 등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일절 피하고 있다. 

꼭 정치권력의 문제만의 아니지만 '언론자유의 적'이 된 언론사주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국민일보><부산일보><연합뉴스>의 싸움 역시 과거 동아투위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연합뉴스>는 "박정찬 사장은 지난 3년 간 공정보도 훼손과 사내 민주화 퇴행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며 사장 연임에 반대하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국민일보> 기자들은 조용기 목사 일가의 편집권 침해를 비판하며 파업 중이고, <부산일보> 역시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 사장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YTN 김수진 기자는 파업을 앞두고 쓴 '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는 글에서 "파업투표에 들어가기 전부터 제 머릿속의 기자정신은 이미 폐업신고를 한 상태로 숨을 죽이며 3년 넘게 살아왔다"며 "최근 몇 년 동안 YTN이 정부 정책에 제대로 된 비판을 한 적 있나? 괴로워하는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 준 적이 있나?"라고 묻는다. 그리고 "단 하루를 살더라도 YTN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차라리 사설란을 없애버리는 것이 좋겠다"던 40여 년 전의 언론. 그리고 "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는 2012년의 언론. 참으로 슬픈 데자뷰다.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는 기자들의 저항을 힘으로 누르려는 것 또한 40여 년 전과 똑같다. MBC는 노조 집행부 16명 전원을 상대로 34억원 규모의 재산가압류 신청을 내고, 정영하 위원장을 비롯한 4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KBS는 2년 전 파업의 책임을 물어 전 새노조 집행부 13명에게 징계를 내렸고, <부산일보> 역시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을 요구한 노조 위원장은 면직하고 이를 기사로 쓴 편집국장에게는 대기발령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언론탄압의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

그렇다면 이들의 투쟁 역시 동아투위의 싸움처럼 패배로 끝날 것인가? 회사가 휘두르는 징계와 고소의 칼춤 앞에서 무너지고 말 것인가?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상황은 희망적이다. 23년 간 파업을 한 적이 없던 <연합뉴스>까지 나설 만큼 파업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고, 16일에 열린 방송3사 파업콘서트에 2만 명의 시민이 모일 만큼 시민들의 지지도 뜨겁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도 높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이번 싸움이 끝을 보는 투쟁이고 퇴로가 없는 싸움"이라 말한다. 임기 말이라 정권의 힘이 약한 것도 사태를 낙관하는 근거 중 하나다.

헤겔을 인용한 마르크스의 말처럼 역사는 두 번 반복됐다. 40여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정치권력과 언론사주는 비판적 보도를 봉쇄함으로써 언론을 망가뜨려왔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덧붙인 말,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라는 말 또한 실현될 것이다. 40여 년 전 동아투위의 싸움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오늘날 '진짜 기자'를 꿈꾸는 기자들의 싸움은 한바탕 유쾌한 희극으로 끝날 것이다. 마침내 기자들은 언론 자유를 쟁취할 것이고, 자신들을 지지한 시민들을 위해 그 자유를 사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기자들의 싸움은 '모두에게 해피엔딩', 가장 완벽한 희극으로 끝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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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죄를 고하여라 -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
심재우 지음 / 산처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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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법개혁이 연일 화두다. 석궁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 개봉,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서기호 판사 등 일련의 사건 속에서 사법부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사법은 과연 어떠했을까? 사법의 눈으로 바라본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네 죄를 고하여라>는 이런 질문에 조금이나마 답을 해줄 수 있는 책이다.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이라는 부제가 이 책을 잘 설명하고 있다. 심 교수는 "법에 대한 이해가 당대 사회의 모습과 문화를 읽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 책은 범죄와 형벌을 둘러싼 조선의 법률문화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법률과 형벌을 통해 기존의 역사서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조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권이 없던 암흑시대, 조선의 형벌 

본격적인 서평을 시작하기 전에 알려둘 사실이 있다. 잔인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1부 '조선시대 형벌과 고문'은 안 읽는 편이 좋다. 저자는 "조선의 법제도 또한 나름의 체계적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굳이 비교하자면 전근대 동양의 형벌이 서양보다 좀 더 인간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서양과 비교했을 때 이야기다.

특히 능지처참이란 말로 더 유명한 능지처사를 다룬 8장은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 능지처사에서 '능지'는 산이나 구릉의 완만한 경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능지처사라는 말은 가능한 한 느리게 고통을 극대화하면서 사형에 처한다는 뜻이다. 실제 사례를 읽으면 고통을 극대화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명나라 때 환관 유근은 3357번의 칼질을 당하면서 죽었고, 관리 정만은 3600회의 절개를 당했다고 한다. 청나라 때는 칼질의 회수가 8회, 24회, 36회, 72회, 120회로 제한되긴 했지만, 살을 도려내는 순서를 설명한 부분을 읽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조선에서는 능지처사형 집행을 "수레에 죄인의 팔다리와 목을 매달아 수레를 끌어서 찢어 죽이는 거열로 대신했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또한 조선시대에 나름대로 체계적인 형법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곤장만 해도 그렇다.

저자는 "TV 역사드라마에서 고을 사또가 곤장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법적으로 허용된 행위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곤장은 군법을 집행하거나 도적을 다스릴 때 사용"했기 때문에 "주요 군사권을 가진 일부 수령들을 제외하곤 고을 수령은 곤장을 사용할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조선 후기의 기록을 보면 정조의 곤장에 대한 강한 규제가 정조 사망 이후 느슨해지자, 정부의 감시가 잘 미치지 못하는 지방 고을 수령들이 규정과 상관없이 불법적으로 형장을 남용하여 예사로 곤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중략) 도대체 얼마나 두들겨 패야 통쾌한 것일까. 정조 말기 창원부사 이여절은 부임 이후 여러 가지 구실을 붙여 무려 경내 30여 명의 백성들을 곤장 등으로 마구 매질해서 죽였다.(중략) 암행어사 유경에 따르면 이여절의 행동은 매우 거칠고 성격이 잔인하여 그의 형벌에 의해 아버지와 두 아들 등 모두 세 명의 부자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 -<네 죄를 고하여라> 35~36p

조선시대를 현대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일이 온당치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 대목을 읽으면 '조선시대에 안 태어나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여절의 사례는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적어도 인권의 눈으로 볼 때 조선시대는 암흑시대였음이 분명하다.

범죄와 자살로 읽는 조선 시대의 가부장제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해서 읽을 부분은 3부 '죄와 벌에 비친 조선사회'다. 특히 흥미를 끈 것은 형벌과 법률을 통해 본 조선사회의 가부장제였다. 

정조 때의 형사판례집 <심리록>에는 부부 싸움 등의 이유로 배우자를 죽인 사건이 70건 집계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남편이 처첩을 살해한 경우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시대 남녀불평등의 실상을 읽을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간혹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똑같이 배우자를 살해한 경우에도 남녀불평등은 엄연히 존재했다. 

"이에 따라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의정부, 사헌부, 의금부 관리들이 합동으로 죄인을 신문할 정도로 큰 변고로 여겼으며, 살인한 여성을 사형에 처함은 물론 가족과 고을 수령까지 연좌시키는 것을 법전에 명문화했다. 이는 정조 때 부인 살해 가해자인 남편이 재판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정이 참작되어 실제로 사형에 처해진 자가 한 명도 없었던 <심리록>의 기록과 대조를 이룬다." -<네 죄를 고하여라> 265p~266p

조선시대의 자살을 다룬 부분도 가부장제의 질곡을 여실히 드러낸다.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이라는 부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 자살의 상당수는 강요된 자살이었고 자살의 원인 제공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역시 <심리록>에 수록된 자살자의 성별을 분석하면 38건 중 31건이 여성인데, 이중 상당수가 간통, 강간, 추문 등 치정에 얽힌 자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당시 여성들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잘 보여준다.

"대저 시골이란 양반과 상민을 구분할 것 없이 정숙한 여자가 포악한 자들에게 욕을 당하거나 나물을 캐다가 한 번 끌려가기라도 하게 되면 갑자기 바람을 피운다고 손가락질을 받아 온갖 오명을 쓰게 된다. 그러면 강간을 당했든 안 당했든 간에 바람을 피웠다는 모함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씻기 어려운 것이라서 방 안에서 목을 매 자결하기로 맹세하게 되니, 그 일은 어둠에 묻혀 밝혀지지 않고 그 심정은 잔인하고도 비장하다.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에게 호소해봤자 더러는 눈물을 훔치며 방문을 나서고, 더러는 남 보듯 하면서 다른 데로 가버리니, 적적한 빈방에서 수치와 분노가 가슴속에 교차되어 구차하게 살아보려 하여도 참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박승문 옥사, <심리록> 

박승문이라는 자에게 몸을 빼앗긴 황여인이 자살한 사건을 두고 정조가 내뱉은 한탄이다. 이보다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전라도 전주의 과부 정여인은 "다른 남성과 정을 통하여 가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친족들로부터 자살을 강요받아" 죽음을 택했다. 

"관련 수사 기록을 종합한 것에 따르면 정여인의 당숙 정대붕은 정여인이 비상을 마시도록 위협했으며, 숙모 이여인은 독약과 술을 준비하고 사전에 계획을 모의했다. 심지어 이들은 정여인이 독을 마시고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땅에 매장해버렸다고 하니, 이쯤 되면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과부의 정절 윤리는 더 이상 훼손할 수 없는 지고지선의 가치가 되어버렸다." - <네 죄를 고하여라> 295p

조선사회를 위해 변명을 한 마디 하자면 자살의 원인제공자들은 '위핍치사'라는 죄목으로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황여인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박승문은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인 유배형을 받았고, 정여인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정대붕은 가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물고됐다. 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 법. 가부장제의 질곡 속에서 희생당한 여인들의 한은 누구도 풀어주지 못한다. 

더 대중적인 교양서를 기대한다

한 가지 아쉬움을 꼽자면 이 책이 대중 역사서 치고는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재미라는 것이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꽤나 흥미로운데도 정작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대목이 많지 않다고 느꼈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인권'이라는 주제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간 <불편해도 괜찮아>처럼 이 책도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소설이나 TV사극을 인용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급적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쉽게 서술하려는 노력은 보였지만, 재미있게 쓰기 위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껏 비중 있게 다뤄진 적이 거의 없던 조선시대의 법률문화를 한 권의 대중 교양서로 묶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법률은 신체적 자유를 직접적으로 구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삶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의 눈, 사법의 눈으로 지나간 시대를 바라보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법률문화를 통해 조선을 바라본 <네 죄를 고하여라>를 읽는 것은 조선사회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법의 관점에서 조선의 가부장제를 설명한 부분은 흥미롭고도 유용했다. 다음에는 더욱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조선의 법률문화사'가 출간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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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공현 외 지음,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 한겨레에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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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체벌은 폭력의 일종이다. 당장 학교 밖에만 나가면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지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회사에서 부장이 "내가 평소 김 과장을 사랑하고 관심이 많은데 업무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다니요.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리겠군요. 자, 엎드리세요"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63p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란 책에서 저자가 체벌을 비판하다가 유독 학생들에게만 '사랑의 매'라는 논리가 통하는 현실을 지적한 대목이다.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개인적 감정 없이 오로지 학생을 위해 '사랑의 매'를 든다는 말을 인정한다 해도 왜 그런 논리는 학교에서만 통하는 것일까. 인권의 사각지대라 할 만한 군대나 교도소에서도 공식적으로는 그런 이유로 후임이나 죄수를 때릴 수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공식적으로 가능하다.

두발 규제도 마찬가지다. 학교 외에 머리카락의 길이와 모양을 규제하는 곳은 역시 군대와 교도소 정도 외에는 없다. 이유야 어쨌든 학생들의 인권은 군인, 죄수와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열악하다.

"학생이 학생다워야지"라는 말 한 마디에 학생들은 머리를 기를 자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 연애할 자유, 보충수업을 하지 않을 자유, 그리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간답게 살 자유를 박탈당한다.

인권교육센터 '들'이 기획하고 6인의 인권단체 활동가, 교사 등이 쓴 <인권, 교문을 넘다>는 이제까지 '교문 앞에서 멈춰 있던' 학생인권의 실태를 고발하고, 나아가 쟁점별로 학생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서로 부딪히는 것일까

이 책은 1부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진 후, 2부에서 두발 자유, 체벌, 휴대 전화 단속 등의 주요쟁점을 다루고, 3부에서는 학생인권을 억누르는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를 다룬 3부 3장이 흥미롭다. 

지난 1월 공포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놓고 "교권이 추락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주장의 저변에는 학생 인권과 교권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생각이 근거가 무척 박약한 것임을 보여준다. 

 교권 붕괴를 이유로 학생인권조례나 체벌 금지 정책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내놓은 통계자료만 봐도 교권 침해는 주로 다른 이유로 일어난다. 2008년 당시 1순위로 꼽힌 교권 침해 유형은 "학부모의 부당 행위"였고, 2순위가 "학교 안전사고 처리 과정에서 교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과중한 배상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3순위가 "교직원 간의 갈등"이었다.…(중략)…2010년 10월, 전교조 참교육연구소가 교사 1천5백여 명을 대상으로 '누가 교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자, 교육부가 1순위, 교육청이 2순위, 학교 관리자가 3순위를 차지했다. 학생이 교권을 침해한다고 답한 교사보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교사의 수가 더 많았다. 교사들은 교권이 지켜지려면 교사의 기본권과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학교 운영의 민주화나 입시 경쟁 교육의 해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학생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대답은 3%에 불과했다.
-<인권, 교문을 넘다> 266p~267p 

그러면서 이 책은 교사의 '가르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교육내용과 평가 방식 등 교육 과정 전반을 결정하는 국가이며, 교사는 정치활동 등의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형편 때문에 있다고 말한다.

또 이처럼 열악한 상황 때문에 교사도 학생 지도‧통제권에만 매달리고 있지만, "진정 존중되어야 할 교권은 교육의 자유와 교사의 인권"이라 주장한다. 명쾌하면서도 "교사와 학생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잊지 않은 윤리적인 결론이다. 

다른 학교는 가능하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그래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타국의 사례들이었다. 특히 일본의 두발 자유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는 두발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학교가 염색도 규제하지 않는다. 1960년대에 일어났던 학생운동의 결과로 자유화된 학교도 있고, 1990년대에 이른바 '학교 붕괴'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학교를 개혁하면서 두발 자유화가 이루어진 곳도 많다. 학교 붕괴를 막기 위해 두발 규제를 '강화'한 것이 아니라, 학생을 믿고 '자유'를 기초로 문제에 대처한 것이다.
-<인권, 교문을 넘다> 61p

'학교 붕괴'에 대처하기 위해 학생을 믿고 '자유'를 기초로 두발 자유화를 이뤘다는 말에 우리의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진다. 네덜란드의 사례는 일본의 사례보다도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 거의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을 지경이다.

2008년 네덜란드의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네덜란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일까? 놀랍게도, 학생들을 분노로 들끓게 만든 건 다름 아닌 '1040시간 룰'이었다. 2008년 네덜란드 교육부가 "일 년에 130일 간은 학생들이 하루 8시간씩(오전 9시~오후 5시) 학교에 있어야 한다(연간 1040시간)"는 방침을 정하자 고등학생들이 "학교에 왜 쓸데없이 그렇게 오래 남아 있어야 하느냐"면서 시위에 나선 것이다. 한국 상황과 비교해 보면 네덜란드 학생들의 요구는 참으로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5시 하교라면 한국에서는 거의 단축수업 수준이다. 그것도 130일이라니, 일 년에 넉 달 정도만 5시까지 남아 있으면 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말한다. 독일은 1시 반, 오스트리아는 12시 반이면 끝나지 않느냐고. 이쯤 되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인권, 교문을 넘다> 161p~162p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과 네덜란드의 이 같은 사례는 다른 학교의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이제까지 보지 못했을 뿐 학생들의 자유와 자율에 기초해 문제를 해결하는 학교, 하루 종일 학생들을 잡아 가두지 않는 학교는 가능하고, 이미 존재한다. 세계사회포럼의 구호를 빌리면 "다른 학교는 가능하다"

혼란 속에서 피어나는 교육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게 정말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공부든 생활 태도든 뭔가를 강제하기 위해 체벌을 유지해 왔다면, 서로를 강제하지 않으면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관계와 조건을 만든다면 굳이 체벌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체벌 없는 학교를 꿈꾼다는 것은 학생과 교사가, 학생과 학생이 서로 존중하면서 배움의 기쁨을 일구어 나가는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꿈이 그토록 비현실적이고 거창한 것인가?
-<인권, 교문을 넘다> 85p

솔직히 아직도 확신은 들지 않는다. 체벌 없는 학교의 꿈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학생과 교사가, 학생과 학생이 서로 존중하면서 배움의 기쁨을 일구어 나가는 학교'는 우리 현실과 너무 멀어 보이기만 하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한 일본과 네덜란드의 사례를 보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학교, 다른 교육의 가능성을 생각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를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력이라고 느꼈다. 동시에 우리에게 씌워진 틀이 얼마나 부당하고 허위에 가득 찬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년의 건강을 걱정해 술, 담배를 금지시킨다면서 왜 '심야공부금지법'이나 '학원금지법'은  없을까? 수업 중에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학생이 있으면 꼭 매를 들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함께 그 이유를 찾고 머리를 모아 해결책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이처럼 우리가 이제까지 당연하게 받아 들여왔던 것들을 의심하고 다른 학교를 상상하는 가운데 비로소 더 나은 학교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아마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혼란과 진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제와 억압 속에서는 진정한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 혼란이야말로 교육이 피어나기 가장 좋은 토양이다.

그래서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을 넘어 더 나은 교육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교육을 상상하는 이들이 학생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학생들이 인권을 말하기 시작하면 학교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껏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학생들이 옹알이를 시작하듯 말문을 트기 시작한다. 누구는 그 옹알이를 환영할 것이고, 누구는 옹알이하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고 다그칠 것이다. 소란스럽고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본래 배움터라는 곳이 그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는가? 자기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 반론에 부딪혀 보고, 자기 생각의 모순에 부딪혀 깨지는 경험도 해 보면서 자기의 한계를 확인하고 타인에게서 배움을 얻는 과정이 바로 교육 아닌가?
-<인권, 교문을 넘다> 2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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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에 저항하기 -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8가지 행동들
에이미 굿맨 & 데이비드 굿맨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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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창조적이려면, 또한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미래를 예견하려면, 일순간 스쳐 지나간 일일지언정 사람들이 저항하고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승리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과거의 숨겨진 일화들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강조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하워드 진, <미국민중사> 중에서)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라는 책을 산 건 순전히 '옮긴이의 글'에 인용된 하워드 진의 말 때문이었다.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가 어떤 책인지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일전에 '부시 정권의 비민주적 행태에 맞선 미국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라는 말을 듣고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이 미국 독립언론 <데모크라시 나우!>의 창립자 겸 진행자 에이미 굿맨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다른 한 명은 그녀의 동생이자 독립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굿맨이다). 주류 언론이 다루지 않는 미국 사회의 그림자를 충실히 기록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사실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기록한 책이 한두 권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살 생각까지는 없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고 뒤적거리다가 하워드 진의 말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책을 사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진보사학자 하워드 진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생전에 촘스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이었다. 명성으로 따지자면 하워드 진보다 촘스키가 한 수 위겠지만, 나는 하워드 진을 훨씬 높게 평가한다. 그의 글 속에 녹아 있는 민중에 대한 애정과 암담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낙관주의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의 대표작 <미국민중사>를 읽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밑줄을 그었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노시내는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는 하워드 진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워드 진의 말처럼 저자들은 미국 전역을 다니며 "저항하고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승리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그대로 묻힐 뻔했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워드 진의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 책을 살 수밖에. 

9·11 이후 만들어진 '애국법'... 암담한 미국의 현실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가 보여주는 미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아직도 온존하는 인종차별 속에 흑인들은 부당한 차별을 받고,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표출하지 못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시민적 자유 또한 위협받고 있다. 특히 9·11 이후에 만들어진 애국법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애국법은 FBI가 휘두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인 '국가보안자료요구서'의 발부 요건을 획기적으로 완화시켰다. 결국, FBI는 법원의 심사 없이도 '국가보안자료요구서'를 발부해 전화·재무기록·이메일 등을 압수수색할 수 있게 됐다. 애국법이 통과되기 전인 2000년에는 8500건의 요구서가 발부됐지만, 2004년에는 5만6000건이 발부됐다고 한다.

도서관과 테러리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서관도 요구서의 마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어느날 코네티컷 주의 도서관 연합체 '라이브러리 커넥션'에 FBI 요원들이 찾아와 '국가보안자료요구서'를 내밀었다.

국제테러 방지를 위해 2005년 2월 15일 오후 2시부터 2시 45분 사이에 도서관의 컴퓨터를 이용한 '모든 개인과 단체의 이용자 정보', '이용대금 지불 및 접속 정보 일체'를 넘기라는 내용이었다. 코네티컷 주의 사서들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지키기 위해 이에 맞서기로 하지만, 요구서의 한 구절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 요구서의 수취인은 FBI가 정보나 기록을 수색·입수했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사서들은 가족에게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말할 수 없었고, '코네티컷 사서들에게 벌어진 사건'에 관한 질문을 받을까 봐 애국법에 대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애국법 옹호자들이 열렬히 애국법을 찬양하는 동안에 말이다.

책 속 미국 이야기... 남의 일 같지 않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뉴올리언스에서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공권력은 뉴올리언스의 가난한 이재민을 버렸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에 살던 5100가구 중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가구의 비율은 4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곳이 없었다. 홍수 피해로 집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뉴올리언스 시 당국이 빈곤층이 되돌아오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미친 세상에 저항하기> 55쪽)

공권력은 허리케인을 가난한 흑인을 몰아낼 구실로 삼았다. 공화당 하원의원 리처드 베이커는 카트리나 발생 며칠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뉴올리언스 공공임대주택이 드디어 깨끗이 청소됐네. 우리가 못한 일을 하나님이 해주셨군."

2007년 12월 20일, 시의회는 공공임대주택 4500채의 철거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공공임대주택이 있던 자리에는 골프장을 지을 계획이었다. 시의회에서 철거 반대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민권변호사 빌 퀴글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시의회에서 환호하거나 구호를 외치면 체포되지만 4500명이 사는 아파트 단지는 맘대로 때려 부숴도 되는 체제에서 산다."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의 저자들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미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인종차별적인 체포, 전쟁 도발, 불법 도청, 고문, 이민자 일제 검거 등의 범죄행위가 멀쩡한 대낮에 벌어진다"고. 경찰은 학생증을 제시하지 못한 이란계 미국인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이라크전에 대해 토론한 교사는 해직된다. 슬픈 것은 이런 광경이 우리에게는 무슨 이유인지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고 싶었지만

나는 한국에서 다시는 이런 책이 별 필요 없기를 바랐다. 민주화된 지 24년이다. 역사가 거꾸로 가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책의 번역출간은 시의적절할 뿐 아니라 도리어 절실하다는 판단을 출판사와 공유하며 마음이 착잡했다.

'옮긴이의 글' 중 한 대목이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가끔 들었다. 특히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사례를 읽으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자꾸만 겹친다.

NGO인 '글로벌 익스체인지'의 라에드 자라르는 아랍어로 쓰인 티셔츠를 입고 공항에 갔다가 직원에게 제지당한다. "내가 뭐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든 그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그의 항변은 묵살 당하고, 결국 다른 티셔츠로 갈아입은 후에야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윌튼고등학교는 이라크 전쟁을 다룬 연극 <갈등의 목소리>의 상연을 금지했다.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핸슨 박사는 계속 그런 발언을 하면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는 경고를 받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혹은 한술 더 뜨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2MB18nomA' 트위터 계정이 접속 차단된 일 ▲ 4대강 공사를 다룬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과 <추적60분>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이 결방 사태를 빚은 후에 간신히 방영된 일 ▲ '4대강 양심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은 김이태 연구원 ▲ KBS의 G20 관련 보도를 비판했다가 역시 중징계를 받은 김용진 기자 ▲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던 미네르바 ▲ 최근에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된 정봉주 전 의원 등….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은 착잡했다. 어디까지나 미국 일이라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싶었지만 이제까지 우리가 힘겹게 일궈온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실이 자꾸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전단지 한 장에서 거대한 움직임이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은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는 "저항하고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승리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반전예술가모임의 예술가 수천 명은 자라르가 입었던 것과 똑같은 아랍어 티셔츠를 입고 JFK공항에 모여들었고,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연극 <갈등의 목소리>는 윌튼고등학교에서는 공연할 수 없었지만, 뉴욕의 유명 극장들이 자기 공연장을 이용하라고 제안했다. 결국, 뉴욕과 코네티컷의 극장에서 아홉 차례나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지구온난화에 반대하는 집회는 '정치적 기온'을 계속 상승시켜 기후변화 문제를 국제사회의 주요 안건으로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는 이들의 행동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 작고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는 희망. '고작 몇 명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다. "한 명으로 시작했어도 결국 여럿이 되는 것, 바로 그게 운동이다." 반전 이라크 참전군인회 활동가로 이라크 전쟁 투쟁에 앞장선 매든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 투쟁에 얽힌 계기는 동료가 어쩌다 전단지 한 장을 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기획하는 작은 이벤트를 쓸데없는 일로 평가절하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누가 본 전단지 한 장 때문에 병사 2000명이 서명을 했거든요. 이 일에 여러분들이 고무됐으면 합니다."

2000명이라는 숫자가 적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1969년 베트남전쟁 종결 탄원서에 1366명이 서명한 이래 이토록 많은 현역 미군 병사들이 공개적으로 반전 의사를 표명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움직임이 전단지 한 장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아직 절망할 때가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고작 700여 명이 만든 희망... 그 끝은 창대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희망의 증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예는 희망버스다. 희망버스는 평범한 시민과 노동자의 연대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고, 한진중공업 노사타결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희망버스가 아니었다면 한진중공업 사태가 이처럼 사회적 이슈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김진숙 지도위원은 아직도 크레인에서 외로이 농성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차 희망버스 참가자는 700여 명에 불과했다. 희망버스의 시작은 초라했지만, 그 끝은 창대했다.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노사타결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됐고, 이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희망텐트로 발전했다.

뿐만 아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제주도민들과 함께하고 있고,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4년 넘게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다. 시그네틱스에서, 유성기업에서,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에서, KEC에서,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의에 맞서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광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작은 행동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그 행동에 동참한다면 희망은 더 커질 것이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거대한 영웅적 행동에 착수할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이라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반복한다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하워드 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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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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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인 명제나 인간 행동의 원칙을 예시하는 짧은 이야기'를 일컬어 우화라 부른다. 쉽게 말해 우화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다. 이솝우화 중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교훈을, '여우와 두루미'는 상대방을 배려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우화가 있고, 각자 나름의 교훈을 전달한다. 그러나 수많은 우화를 묶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개인의 성품이나 태도만을 문제 삼을 뿐, 개인을 둘러싼 세상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우화들은 사회에 대해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쓸데없는 불평불만 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다그친다. 

최근의 자기계발용 우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 고통까지 웃으면서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 힘을 합쳐 연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좌파적 우화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최규석의 우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이제까지 알던 우화와는 다르다. 그는 기존의 우화가 유통해온 굳건한 믿음 체계, 세상과 타인은 죄가 없고 아무리 나쁜 일이 있어도 그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수천 년 된 생각에 도전한다. 그래서 최규석의 우화는 일종의 반우화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찍는 열 번의 도끼질 같은 이야기'다. 

모든 일을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마을

<지금은 없는 이야기>에 수록된 우화 중 '가위바위보'는 강자의 논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일을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마을이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마을 일을 하다가 손을 다쳐 주먹을 펼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그가 주먹밖에 낼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는 곧 마을의 힘든 일을 도맡으면서도 가장 나쁜 집과 안 좋은 음식만을 가지게 된다. 그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마을 대표를 찾아가 가위바위보를 왼손으로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마을 대표는 우리의 규칙은 신성한 것이며 신성한 일은 오른손으로 해야 한다며 거절한다. 

"그렇지만 전에도 가끔 왼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없었잖아요?"
"그때는 우리가 이 규칙의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지. 이제라도 반성하고 철저히 지켜야 하지 않겠나?"
"그게 하필 왜 지금부터인가요? 저를 죽을 때까지 노예처럼 부려먹으려는 것 아닌가요?"
"규칙을 철저히 지키자는 말에 때가 따로 있나? 규칙이란 언제 어디서나 지켜져야 하니까 규칙인 거야!"

그렇지만 그는 '마을 일을 하다 다친 건데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마을 대표는 마침내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희망에 부풀어 그 방법이 뭐냐고 묻는 그에게 마을 대표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이 규칙을 걸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거지. 우리 모두를 이기면 자네 맘대로 규칙을 바꾸는 거야."

마을 대표의 말은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약자를 부당하게 괴롭힌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강자의 논리다. 손을 다친 이가 규칙 때문에 계속 가위바위보에서 질 수밖에 없다면, 규칙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을 대표는 규칙의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규칙은 신성하고 중요한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약자를 계속 괴롭히려 든다. '가위바위보'는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논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강자의 이익에 봉사하는지, 그럴싸한 논리 뒤에 어떠한 탐욕이 숨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바보들아,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세상이 부조리한 것은 강자의 말장난 때문만은 아니다. 약자 자신이 강자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기 때문이다. '냄비 속의 개구리'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물이 가득한 냄비 속에 개구리 몇 마리가 살고 있다. 예민한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주장하지만, 자신만만한 개구리는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면 된다고 그의 말을 일축한다. 예민한 개구리는 계속 뜨거워지는데 적응할 수는 없다고 반박하지만, 자신만만한 개구리는 다른 냄비를 본 적이 있느냐며 여기만이 우리의 세계라고 말한다. 

"이 냄비가 우리의 유일한 세계야. 다른 냄비 같은 건 없다구. 설사 다른 냄비가 있다 하더라도 그곳이 여기보다 나을 거란 보장이 있나? 어디에도 문제없는 세상 따윈 없어. 거기도 여기처럼 뜨겁거나, 아니면 그곳만의 다른 문제가 있겠지. 그리고 겨우 물이 좀 따뜻한 것 때문에 못살겠다는 네가 다른 세상이라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너처럼 환경 탓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녀석은 그곳에서도 물이 뜨겁네 차네 불평만 늘어놓을 걸? 난 여기가 좋아. 아주 편안하다구."

이윽고 물이 점점 뜨거워져 개구리들은 고통스러워하지만, 자신만만한 개구리만은 편안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다른 개구리들이 어떻게 그렇게 편안할 수 있는지 묻자 자신만만한 개구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요 근래에는 나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괴롭긴 했어. 하지만 나는 곧 이것이 단순한 고통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이 고통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나는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만하며 살았는지 반성하게 해서 겸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지. 또한 이 고통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무한한 용기가 샘솟아 더 이상 무엇도 괴롭거나 두렵지 않게 되었지. 이 고통은 아마도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일 거야."

마치 자기계발서의 한 구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말에 다른 개구리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예민한 개구리만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냄비를 뛰쳐나가며 소리친다.

"바보들아,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

자기계발용 우화 : 솔개 이야기

최근에 나온 자기계발서는 우화를 활용해 교훈을 설파한다. 자기계발용 우화의 정점에 선 것이 솔개 이야기다. 그 우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솔개는 약 40살이 되었을 때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발톱이 노화해 사냥감을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되고,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된다.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 또한 무거워진다.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된 솔개는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고통스런 갱생 과정을 수행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산 정상부근으로 날아올라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를 깨뜨린다. 깨진 자리에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고, 이제 새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리하여 약 반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교훈은 지극히 간단하다. 부단한 노력으로 자기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 좌파 솔개였다면 40세 이상의 노인 솔개를 위한 복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겠지만, 무릇 훌륭한 솔개라면 사회 탓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피나는 자기 혁신에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계발용 우화의 선두에 서 있던 이 이야기는 거짓이다. 부리가 다시 난다는 것은 생명체에 없는 일이며, 설령 가능하다 해도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부리가 나기 전에 죽을 것이다. 이처럼 솔개의 생태와는 거리가 먼 우화까지 유통하면서 교훈을 전파하려는 의도는 참으로 불순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의 우화에 맞서야 한다. 우화의 교훈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손을 다친 이는 가위바위보에서 계속 질 수밖에 없고, 죽을 때까지 노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고통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일 거라고 생각하는 한 냄비 속의 개구리들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이제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라고 말할 차례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야기다. 누군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까지 만들며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달려있다는 교훈을 전파했듯이, 우리는 반대편의 이야기를 통해 잘못된 세상을 고발하고 여기 맞서 싸우라는 교훈을 전달해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이야기에는 이야기다.

그래서 최규석의 우화는 빛을 발한다. 그의 우화는 강자의 논리가 갖는 기만성과 약자들의 연대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이제까지의 우화가 보여주지 않은 세상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의 우화는 '지금은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단면은 의도적으로 은폐되었지만 오랫동안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세상의 일부라는 면에서 그의 우화는 '지금도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아져야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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