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을 앞두고 남길 수 있는 이야기엔 어떤 것들을 담아야 할까?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담을 수도, 또 후회스러운 순간의 반성이 가득할 수도 있다. 아마 대부분 자신 스스로나 가족들,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한평생 무언가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치료하던 사람의 마지막 글엔 좀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죽기 직전까지 글을 썼다는 것도 놀랍지만 죽기전 남긴 마지막 책을 이토록 담담하게 써내려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경학자로서 살아온 그의 삶에서 중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흐르는 강처럼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읽을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고정되거나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변화와 새로운 경험에 늘 민감하다. 


 

 

 

저자인 올리버 색스는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그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주며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리기도 했던 그는 항상 대중과 소통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가 남긴 마지막 책으로 여러편의 길고 짧은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흠모했던 학자들의 연구에서부터 본인의 이야기까지 그가 가졌던 세상에 대한 무수히 많은 호기심과 그에 따른 과학적 사례들이 담겨 있다. 늘 그가 동경했던 찰스 다윈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식물학자이기도 했으며 난초와 꽃의 관찰을 통해 진화론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심리학자로 알고 있던 프로이트는 신경학자로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기도 했다니 우리가 몰랐던 과학자들의 또다른 업적에 대해서 새로운 이면을 알게 되기도 한다. 특히 저자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기억의 부실함과 오류에 대한 사례나 청력이 저하되며 상대방의 말을 잘못 들었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학적 이론들에 대한 이야기는 스스로의 경험 역시 끝없이 되돌아보고 고찰하며 끊임없이 연구하는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도 했다. 



다윈은 난초와 꽃을 전례 없이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여, <종의 기원>보다 훨씬 자세한 내용이 담긴 책으로 펴냈다. 이는 그가 현학적이거나 강박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세밀하지 않으면 유의미하지 않다고 느끼는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신이 세세한 것에 관여한다’고 믿었지만, 다윈은 ‘그건 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선택의 소관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선택은 수백만 년에 걸쳐 꽃을 세부적으로 빚어내므로, 역사와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다윈을 통해 나의 생물학적 독특성, 생물학적 내력, 다른 생명 형태와의 생물학적 혈연관계를 알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이 지식은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자연을 내 고향처럼 느끼게 해주고, 나 자신만의 고유한 생물학적 의미를 느끼게 해준다. 동물의 삶은 식물의 삶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인간의 삶은 다른 어떤 동물의 삶보다도 복잡하지만, 모든 생물은 각자 나름의 생물학적 의미를 갖는다. 



의식이니 진화론이니 사실 어려운 내용들이 태반이다. 사실 저자가 유명하긴 하지만 난 그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기에 그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진 못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남긴 마지막 책을 통해 그간 그가 써온 많은 책들이 궁금해지는 계기가 됐다. 왜 그의 책이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어렵고 낯선 분야이고 나로선 자주 마주할 수 없는 주제들로 가득하지만 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많은 과학자들이나 고통 받는 사람들, 또는 우리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풀한포기나 지렁이, 벌레에까지 관심과 집요한 관찰을 멈추지 않는 그의 열정 또한 느껴졌다. 분명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고통 역시 무겁거나 어둡지 않게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런 몸상태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 가득한 모습, 그리고 끝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것은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그런 것들을 어렵지 않고 유머러스하고도 쉽게 풀어 썼기에 대중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앞으로 새로운 그의 글을 읽을 순 없겠지만 난 이번 책을 계기로 과거 그가 써온 책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 나가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의도했든 말았든, 알았든 몰랐든, 모든 지각과 장면들은 우리 자신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영화의 감독인 동시에 배우다. 모든 프레임과 순간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가 만든 것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