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눈 + 어린 왕자 (문고판) 세트 - 전2권
저우바오쑹 지음, 최지희.김경주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어린왕자를 만난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만큼 어렸을 적 읽었던 어린왕자를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도, 엄청난 감동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저 순수한 어린시절 읽었던 어린왕자는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 그림만이 뇌리에 박혀있을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회자되는 좋은 작품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순 없지만 이상하게도 어린왕자를 다시 읽을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찬사하는, 벅찬 감동을 느끼고 인생을 바꾼 작품이라는 이야기들이 어느정도의 부담감을 가지게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어느새 점점 동심을 잃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어린왕자가 만났던 이상한 어른들이 주변에 가득찬 사회에서 살아가며 나역시 점점 이상한,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나를 정화시켜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어린왕자를 아름다운 동화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70여 년간 쌓여온 시간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각자가 느끼고 깨달은 것 역시 켜켜이 쌓여 고전이라는 반열에 오른 만큼 문학적으로도 큰 의미을 가지고 있지만 또다른 이면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적 의미들이 가득 담겨 있기도 하다. 하지만 꼭꼭 숨겨지고 생략된 이야기의 저편을 나혼자만의 상상으로 생각해 보며 그 의미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절대 길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에 함축적인 대화만으론 내 인생을 바꿀만한 큰 감동을 느끼는 것은 나의 깜냥이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기에 수없이 읽고 고민하며 풀어낸 어린왕자의 진짜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우리에겐, 나같은 사람에겐 분명히 필요하다. 



현실의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한때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심지어 어린 시절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부류의 어른이 된다. 

 

 

 

 

홍콩의 대표적인 깨어있는 지성으로 불린다는 저자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관심 있는 정치 철학자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철학자의 눈으로 어린왕자를 읽고 그 의미를 헤아리려 노력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생텍쥐페리가 아름답게 그려 놓은 이야기 속엔 숨겨둔 철학적 난제가 가득하고 그로인해 우리가 어린시절 가졌던 꿈과 인생의 가치, 신념등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어린왕자와 장미와의 관계에서 서툴지만 소중한 첫사랑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어린왕자와 여우의 관계에서 길들여짐이란 서로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며 어린왕자가 만나는 많은 어른들을 통해 고독한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다. 사실 어린왕자를 읽으며 어린왕자가 떠난뒤 홀로 남은 장미의 상황이나 여우가 왜 그냥 어린왕자를 떠날 수 있게 해 주는건지, 뱀에 물린 어린왕자는 과연 자신의 별로 돌아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작가가 그려 둔 보여지는 이야기에만 집중했을 뿐, 그 너머에 존재하는 내면의 소리와 인생의 가치, 직관적으로 진실을 바라보는 순수함을 가졌던 아이같은 삶의 태도를 잊고 살았기에 어린왕자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가치와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심을 되찾으라는 것은 당신 몸이나 지능을 어린 시절로 돌려놓으라는 뜻이 아니에요. 마음을 다해 당신이 어린 시절에 간직했던 꿈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죠. 꿈과 가치는 나이와는 상관없어요. 당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죠. 



그렇다면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왕자가 장미를 떠나 여러 별들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깨닫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길들여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길들여짐의 과정에서 자신의 주체성이 발현되기도 하고 또 그로인해 상대방의 주체성 역시 존중하게 되며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나 진실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사회를 벗어나 혼자 살거나 자기의 생각대로만 살기는 힘들다. 인간은 각종 사회 활동과 관계 속에서 타인의 평가와 인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열정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를 배려하고 어려움을 나누는 자세다. 그런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지 못한다면, 타인에게 종속되어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느라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고독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주변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다 해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기에 생텍쥐페리는 권력,부,명예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을 도리어 잊고 산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린왕자를 통해 지금 자신의 삶이 어떤지 되돌아 보고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랬던 것 아닐까. 



먼 훗날 돌아보면 알게 될 거야. 젊은 날 네가 품었던 꿈들이 너를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자기만의 개성을 가졌는지가 인생을 잘 살았는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을.

 

 

 

 

어린왕자를 통해 이렇게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린왕자의 눈’을 읽지 않고 다시 ‘어린왕자’를 읽었다면 아마도 어린시절에 읽었던 어린왕자와 별반 차이 없이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왕자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와 더 나아가 우리가 속한 사회에 대한 반성과 죽음에 대한 고찰까지 이어질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었기에, 여러가지 다양한 관점에서 읽혀지고 해석되는 어린왕자의 또다른 숨겨진 의미들이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린왕자가 만난 어른들을 보며 지금 내 모습을 반성하기도 하고 홀로 남겨진 장미가 내가 이때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훨씬 강하고 주체적이라는 것에 놀라기도 하며 여우가 보여주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에서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진실함과 내가 주고 있는 사랑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 무엇보다 나의 삶이 진실되고 정직하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바쁘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분명 알고 있었지만 잊고 지낼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 각자가 가졌던 수많은 꿈들이 각자의 개성과 존재를 표현해 주는 소중한 가치였지만 어느샌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동심을 잃고 진실을 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도 한때는 순수함을 가진 아이 였다고, 그 순수함을 다시금 기억하고 그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얘기해 주는 어린왕자는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 들여다 보면 분명히 볼 수 있는 삶에 대한 아름다운 가치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늘의 흰 구름이 산봉우리를 지날 때 구름의 그림자는 봉우리이 오래 머물 수 없지만, 그 찰나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남는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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