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대단한 소설에 대한 감상문을 어떻게 써야 할 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우선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에게 또 한번 고개를 숙인다. 이제는 찬사를 넘어 존경의 뜻을 표한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습니까? 당신은 정녕 천재입니까?
묻고 싶다. 그러면 작가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나는 천재가 아니라, 그저 작가일 뿐입니다.
맞다. 그녀는 진정한 작가다. 그리고 진정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작가인 척 하지만, 진정한 작가가 아닌 짝퉁 작가들이 주위에 하수도 물이 넘치듯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이런 진정한 작가의 가치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지 않을 수 없다!

모방범은 우선 그 대단한 원고 분량만으로도 읽는 이를 질리게 한다. 그러나 첫 장을 여는 순간, 독자는 재미에 질려 버리고, 충격과 감동에 질려 버린다. 미야베 미유키가 만들어 놓은 모든 장치들에 꼼짝없이 걸려들어 기분 좋게 바둥거리게 된다. 그 작은 체구의 여자 작가 손에 꼼짝없이 잡혔다가, 이리저리 흔들렸다가, 롤러코스트를 타듯 허공으로 내던져지고, 빙글빙글 돌다가,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풀려나는 그 기분이, 가히 하늘을 찌를 듯 경이롭고, 행복하다.
이런 식으로 작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기쁨은, 언제든, 어느때든, 대 환영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소설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을 등장시킨다.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토막,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평화로운 공원에서 여성의 손목이 발견되고, 엽기적인 살인이 이어진다. 시민들은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히고, 경찰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고, 수사는 난항을 거듭한다. 그 때, 범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범인은 납치, 토막 살해한 희생자의 나머지 신체 부위가 있는 곳을 공개적으로 알린다. 이어서 범인은 매스컴을 통해 버젓이 대중 앞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희생자 유가족과, 경찰, 매스컴과 교묘한 두뇌 싸움을 벌인다.

범인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은 시작부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린다. 어설프게 다음 장을 예상치 못하도록, 시작부터 머리를 온통 뒤흔들어 놓는 것이다. 독자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그저 작가가 이끄는대로 끌려다니기만 한다. 물론 앞써 언급했듯이 즐거운 이끌림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며, 서로 교차되고, 겹겹이 쌓이면서 새로운 살인이 모의되고, 새로운 전율과 공포를 부르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책장이 넘어갈수록 의문은 점점 더 많아진다. 간신히 하나의 의문이 풀리는가 싶으면 또다른 의문들이 등장한다. 의문이 의문을 낳고, 또 다른 사건을 야기하며, 새로운 의미를 갈구한다.
그러나 무릎까지 차오르던 수많은 의문과 비밀들은 결국 하나씩 풀려가고 매듭을 짓는다. 작가는 치밀과 복선과 암시, 과거와 현재, 인물과 인물들을 수시로 오가는 절묘한 구성으로 긴장과 서스펜스를 극도로 끌어올렸다가 마지막 순간에 강한 카타르시스로 독자의 가슴을 뒤흔든다.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그야말로, 원없이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마지막 순간의 놀라운 카타르시스 한 방은, 생각할수록 스릴 넘치고 감동적이다. 이 대단했던 이야기가 이런 놀라운 반전으로 정리되는구나! 새삼 작가의 역량에 탄복하고 박수를 보낸다.  

특이하게도 등장인물들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범인도, 피해자도, 경찰도, 피해자 유족들도, 그들의 친구들도,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의 시점에서 사건이 전개될 때는, 그들이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세상사가 그렇듯. 모든 인간들이 각자 주인공이고, 모든 인간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각자의 상처를 가지고, 각자의 삶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비록 세상의 아주 작은 한 부분만을 이해하려고 해도 한 두 사람만의 이야기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한 두사람의 손에 의해 저질러진 하나의 사건을 말하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다. 찬찬히 살펴보면 그 하나의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고,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나의 사건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는지... 알고 보면 경악하게 된다. 한 사람만 뚝 떼어 놓고, 하나의 사건만을 뚝 떼어 놓고, 그 사람을, 그 사건을 온전히 얘기할 수 없으니... 그 한 사람을 얘기하려면, 그 한 사건을 얘기하려면, 모든 인간을, 모든 인간사를 함께 다뤄야만 하니, 세상은 참으로 놀랍고, 그래서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는 늘 이렇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깔려 있고, 가슴을 직접 파고드는 현실적인 감동이 있어,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마치 세상이라는 거대한 소설의 첫 페이지가 다시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은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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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ckle 2007-06-19 09:14   좋아요 0 | URL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마치 세상이라는 거대한 소설의 첫 페이지가 다시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 이 멋진 문장이 눈에 확 박혀서 불청객의 댓글 하나 안 남길 수 없었습니다. 잘 읽었어요. ^^

리아트리스 2007-06-20 23: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