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지혜, 듣기 아우름 33
서정록 지음 / 샘터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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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으로 가는 문은 눈이 아니라 귀에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귀를 열면 만날 수 있는 세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연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던 인디언의 이야기를 빌어, '듣기'의 소중함을 말하는 《잃어버린 지혜, 듣기》의 저자 서정록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한가운데 우뚝 서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된다.'


《잃어버린 지혜, 듣기》는 듣기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동을 통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듣기를 통해 사람은 자신의 실존에 깊이 다가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삶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말한다. 서두에 꺼낸 그의 말은 책을 통해 저자가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였다. 인상적이었다. '보기'에 익숙해져, '듣기'의 소중함을 잊어가는 나의 마음에 노크를 하는 듯한 이야기인 듯싶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저자가 들려줄 듣기의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면 먼저 내 마음을 열고 그 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귀를 가리켜 마음을 열어 자신의 존재를 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눈과 귀는 다르다.'


오래전, 나무와 풀, 뺨을 스치는 바람까지 대화 상대로 벗삼았던 인디언. 그들의 이야기에서 오래된 지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한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말하고 있는 듣기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듣기와 전혀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인디언에게 귀는 '주는 것'이라는 뜻을 가졌다. 귀는 소리 뒤에 숨어 있는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읊조리면,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귀와 함께 마음을 기꺼이 내주어야 하니 그 의미가 참 딱 맞는 듯 싶다.


듣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무리 없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쏟지 않으면 좀처럼 제대로 하기 힘듦을 《잃어버린 지혜, 듣기》는 말한다. 인간에게 있어 듣기란, 인생의 시작부터 함께한 것이다. 어머니 뱃속 태아 시절에 인생의 첫 소리를 듣고 마음에 남긴다. 때로 태교로 들었던 음악, 언어 등은 무의식중에 남아 은연중에 나타나기도 한다. 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특징이다. 생물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말도 할 수 있는 인간이 듣기가 힘든 건 왜일까? 많이 듣는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들었던 적을 헤아려 본다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듣는 행위는 "세상에 태어날 때 누구나 받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내면 탐구의 시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인디언들은 '신명탐구'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들이나 산에 들어가 구덩이를 파고 나흘 밤낮을 기도한다고 한다. '삶의 방향을 정하기 위한 시간' 동안 그들은 고요한 곳에서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자각하는 시간은 말하거나 보는 순간이 아니라 들을 때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종교의 많은 선인들이 듣는 중에 깨달음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고.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상대에게 마음을 활짝 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책의 제목을 《잃어버린 지혜, 듣기》로 정한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잊고 있는 듣기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돕기 위함이다. 나를 들어내 표현하려 말하거나 빠르게 눈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스캔하기 바쁜 현대 사회에서 천천히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건 알지만 지키기 힘든 나와의 약속같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침묵과 듣기를 잃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물질에 이끌리고 나를 앞세우고 남을 지배하려고 한다. 상대방 말을 듣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그런 자리에는 주장만 있을 뿐 지혜가 들어설 틈이 없다. 지혜가 없는 문화는 죽은 문화다. 바로 여기에 현대 문명의 비극이 있다.


수다스러운 나에게 늘 필요한 덕목임을 알지만 매번 상대와 헤어질 때야 그 덕목을 깨닫는다. 왜 자꾸만 나는 잊어버리는 걸까. 상대의 이야기에 얼마나 진심을 담아 나를 내주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나를 조금 더 상대에게 주고, 그 줌을 아까워하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귀를 통해 나의 머리와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생각이 나에게 감동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더 잃어버리면 안 되는 이 지혜를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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