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편견은 차별로 이어지고, 차별은 개개인의 마음에 증오를 남긴다. '스타'와 그 가족은 빈민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회가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 속에 자신을 가두며 살아간다. 인종차별 금지가 성문화된 지 오래되었지만, '스타'가 겪은 비슷한 일을 외신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는 대로 확인하고, 생각한다. 피부색으로 나누어 차별하듯, 문제를 흑백으로 구분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오늘날 벌어지는 인종차별 문제는 보이는 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를 안고 있다. 『당신이 남긴 증오』는 바로 이 어려운 구조를 조망한 소설이다. 

인간은 그 모습이 어떠하든 다 동일한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피부색, 머리카락, 키, 눈동자 색을 비롯한 외적인 생김새가 어떠하든 모두가 같은 인간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은연중에 피부색, 어떤 대륙이나 국가 출신이란 이유로 알게 모르게 차별을 가하고, 또 당하고 있다. 10살과 16살의 스타는 좀 더 잔혹하게 그 차별의 결과를 본다. 친구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으로. 이건, 1960년대나 그 이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종차별이 잘못이란 걸 배우고 자란 요즘 이야기다. 차별은 법과 교육으로 끊임없이 밀어내지만, 우리의 생각에 담긴 편견이 남아있는 지금의 이야기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차별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반복은 또다시 인종차별이라는 인류 역사의 어두운 페이지를 쓰고 있다. 『당신이 남긴 증오』는 바로 '지금' 벌어지는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스타는 흑인이다. 마약 갱에서 일하다, 교도소에 다녀온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소 후 아버지가 간신히 자리를 잡고, 간호사인 어머니는 병원에서 열심히 일을 하기 전까지 극심한 빈곤을 경험했다. 스타가 사는 마을은 가든 하이츠다. 호그와트라는 마약 갱단과 그 두목인 킹이 꽉 주름잡고 있어, 결코 범죄와 가난과 분리할 수 없는 그곳이다. 스타는 10살 때 차에서 쏜 총에 친구가 죽는 장면을 목격한 뒤,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윌리엄슨 학교에 다녔다. 피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스타는 16살 때 파티에서 놀고 돌아오던 길에 또 다른 친구 칼릴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죽는 모습을 본다.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를 잃은 슬픔과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두려움에 벅찬 스타에게 마을의 갱과 인종차별에 대하여 분노하는 움직임이 동시에 덮쳐온다. 그보다 그녀의 마음을 힘겹게 한 것은, 그토록 사랑했던 친구를 잃고 이에 대해 자신이 목소리를 어떻게 내는 것이 친구를 위한 일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난 아빠의 눈 속에서 갈등을 보았다. 아빠에게 난 이번 폭동보다 더 중요한 존재다. 난 항상 아빠의 딸이고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라면 아빠는 그렇게 둘 것이다.


『당신이 남긴 증오』는 혼란 속에서 혼자 생각을 곱씹던 스타가 '주변'과 '세상'을 향해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스타의 곁에는 스스로에게 떳떳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조력자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칼릴의 죽음 뒤에 벌어진 모든 움직임과 그 안에 담긴 문제를 스타가 분석할 수 있도록 질문한다. 정리되지 않는 스타의 생각은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통해 정리된다. "살기 위해선 마약이 필요하다고 하는 브렌다나 살려면 마약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칼릴을 좀 봐. 브렌다는 약물 중독에서 벌어나지 않는 한, 일을 못 구할 거고 일을 못 구하면 재활원에 들어갈 돈을 마련하지 못해. 칼릴이 마약을 팔다 붙잡히면 평생을 감옥에서 썩거나 아니면 제대로 된 직업을 못 구해서 다시 마약을 팔아야 할 수도 있어. 그게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증오란다. 우리에게 맞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둔 것. 그게 커그 라이프야." 아버지는 스타가 가든 하이츠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정적으로, 보이는 대로 해석하지 않고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했고, 그의 의도 이상으로 스타는 자신의 결론을 내린다. 


"그가 우리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흑인이고 그런 동네에 살기 때문이에요. 우린 그냥 우리 일만 걱정하는 평범한 청소년일 뿐이에요. 그의 선입견이 칼릴을 죽였어요. 저도 죽일 수 있었죠."


문제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행동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지불해야 할 대가가 필요했다. 스타가 결심하는 것만으로 현실은 바꾸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랫동안 구조적으로 굳혀진 커그 라이프는 다른 행동을 할 수 없도록 정교하게 구조화되어 있었다. 조금 다른 행동을 한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스타는 이에 대해 "우리에 관한 거다. 우리 모두. 우리와 같은 모습의 사람들, 우리처럼 느끼는 사람들, 나와 칼릴을 모르지만 우리의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문제이며, "침묵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칼릴의 죽음에 대한 인터뷰를 실시한다. 인터뷰에서 성급하게 말하지 않은 스타의 말은 진심과 이 문제의 본질을 다룬 핵심이 차곡차곡 담겨,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종차별주의라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문제를 공론화하는 외침이 되었다. 소설 속에서도 소설을 읽는 나에게도 말이다.

스타의 변화는 칼릴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타는 인종차별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일상 속에서 찾기도 한다. 흑인인 자신의 상황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중국인이었던 마야가 겪었을 차별을 보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게 문제다. 우리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게 내버려 두고 그 사람은 너무 말을 많이 한 나머지 선을 넘지만 자신이 그런 줄 모르고, 듣는 우리도 그냥 받아들인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이런 상황에서 잠자코 있다면 말할 수 있는 게 무슨 소용일까?"라는 스타의 속마음을 읽으며 마음이 묘해졌다. 인종을 넘어 내가 당하는 차별에는 예민해지지만,  누군가가 당하는 차별은 좀처럼 보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칼릴은 '터그 라이프'란 '당신이 아이들에게 심어준 증오가 모두를 망가뜨린다'라는 말의 줄임말이라고 했다. 그들이 어젯밤 그런 일을 저질렀다. 우리는 열받았고, 그들이 우리를 망쳐놨다.


『당신이 남긴 증오』는 저자의 경험이자 어떤 이의 죽음이 담긴 이야기다. 굉장히 사실적이고, 깊이 고민한 것이 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결국 이 소설에서 칼릴을 죽인 경찰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이 사실이 스타를 분노하고, 칼릴의 죽음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백인과 그 외 인종에 대한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편견과 차별 그리고 그것이 남긴 증오는 때때로 말, 평화로운 운동 그리고 급진적 행동을 부른다. 『당신이 남긴 증오』는 인종에 따른 편견과 차별 그리고 이것이 마음에 심은 증오를 보이는 대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구조적 논의와 개인적 차원의 고민을 함께 다루고 있다.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있다. <블랙 팬서>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기존의 할라 우드 흥행공식에 균열을 냈지만, 인종간 갈등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문을 살짝 닫아 아쉬웠는데. 크리스와 카를로스 삼촌, 마야라는 인물을 통해 백인과 유색인의 구도를 넘어선 구조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소설 『당신이 남긴 증오』가 살짝 열었던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었길 기대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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