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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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맨 앤드 블랙』.
2013년에 발표했고, 2018년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다이앤 세터필드의 소설이다. 『열세 번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면 두 소설을 집필한 작가가 같다는 걸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다른 방식의 글이었다. 그녀에게 베스트셀러 작품이란 타이틀을 동시에 안겨준 『열세 번째 이야기』 이후, 약  7년 만에 쓴 작품이다. 7년이란 시간 동안 그녀의 이야기는 달라졌지만, 신비롭고 음울한 냄새가 짙게 드리워진 글은 여전했다. 제목에 '블랙'이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이 소설 전반을 덮고 있다. 마치 까마귀 떼처럼 말이다.


등과 머리는 공단의 검정이고, 앞가슴과 다리 쪽은 벨벳의 검정처럼 보드라워지고 깊어진다. 단순한 검정이 아니다. 검정보다 더 검다. 떼까마귀의 검정은 다른 어던 생명체에서도 볼 수 업슨 검정의 향연이다. 떼까마귀는 그야말로 검정의 결정체이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벨맨 앤드 블랙』은 휘팅포드 마을,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살았던 윌리엄 벨맨에 대한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환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아이가 윌리엄이었다. 벨맨 가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이름이 아닌 '윌리엄'을 이름으로 가졌지만, 그는 벨맨이의 사업이었던 방적 사업을 몇 배나 불리는 사업가로 활약한다. 처음에는 큰아버지를 돕다가 어느새 공장을 운영하는 데 이른다. 이후 그는 사업을 더욱 확장해 런던에서 '벨맨 앤드 블랙'이란 장례용품 상점을 운영하고 사업은 성공을 거듭해 막대한 부를 쌓는다. 하지만 소설은 그의 성공가도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그가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 자체보다 윌리엄 벨맨이란 한 남자가 죽음을 향해 천천히 혹은 빠르게 걸어가는 데 집중한다. 윌리엄이 죽기 직전 지나온 자신의 삶이 눈앞에 펼쳐진 걸 글로 옮겨 놓은 듯싶다. 재미있는 건 작가는 윌리엄의 목소리만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짧고 촘촘히 장을 나눈 작가는 장마다 다른 인물을 통해 윌리엄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을 담는다.


1부에서는 그의 큰아버지였던 폴, 2부에서는 그의 딸이었던 도라가 그 역할을 한다.


1부의 무대는 방적공장이다. 방적공장의 사장이었던 큰아버지 폴은 그를 가까이서 바라본다. 윌리엄에게 다 말하지 않은 폴의 생각을 통해, 윌리엄이 탁월한 수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은 계속해서 발전한다.


아비 없는 자식의 아비 없는 자식은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는 관습을 뛰어넘었고, 전통을 꿰뚫어보았으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과거는 그를 구속하지 않았다. 아마도 바로 그것이 윌리엄이 미래를 그토록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과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지 않으면 미래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때로 비범하고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윌리엄을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보다 방적공장의 미래를 위해서는 윌리엄이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바람처럼 윌리엄은 폴을 이어 방적공장의 사장이 되었고 그 결과 방적공장은 성공을 거두었다. 윌리엄은 사업에서만 탁월한 수완을 거둔 건 아니었다. 바쁘게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아내를 만나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이 모든 행복은 늘 죽음 앞에 사라져갔다. 처음에는 할아버지, 그다음에는 어머니 그리고 큰아버지 그리고 아내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계속해서 거두었지만 그의 성공 뒤에는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성공가도를 걸어가기 위해 윌리엄 벨맨이 치러야 할 값이 주변 사람들의 죽음인 양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장례 때마다 찾아오는 의문의 남자. 그는 그 존재에 대해 계속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다. 누구길래 찾아오는지.
하지만 이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그의 딸 도라는 열병에 걸린다. 마치 그가 10살 무렵 걸렸던 것처럼.


윌리엄 벨맨의 사고가 해체되었다가 다시 생성되는 것을 비출 가장 여린 빛조차도 그의 잠 속으로 스며들지 않았다.
무언가가 끝났다. 무언가가 시작될 참이었다.


그는 딸을 극진히 돌보았다. 슬픔마저, 애도마저 계산적으로 생각했던 그가 보인 이전의 행동과 완전히 달랐다. 죽음이 차곡차곡 쌓여 지나가면, 자신에게 행운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그는 딸을 돌보는 동안 완전히 달랐다. 깊은 절망의 끝에 치달았던 그는 딸이 기적처럼 회복됨에 따라 달라진다. 그는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가 휘팅포드 마을을 떠나 런던에 터를 닦고, "죽음을 전시하고 애도를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이야기로 말이다. 벨맨은 장례식에 찾아오고, 자신의 곁을 맴도는 남자, 블랙과 함께 동업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벨맨 씨, 장례용품이라면 제대로 만드셔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니까요. 그게 곧 미래죠, 안 그런가요? 나의 미래. 당신의 미래. 모두의 미래."


신비로운 블랙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소설을 통해 까마귀 떼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벨맨이 계속해서 열심히 일하게 만들고, 일에만 몰두하며 자신의 삶을 소진하게 만든다. 그가 천운을 타고나 탁월한 사업감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2부에서 그려진 그의 삶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에게 일은 보람과 성취감을 조금 안겨줄 뿐 이를 멈출 수 없다. 블랙과 계약으로 선택한 삶이었고 이 삶에 대하여 만족하지만. 그의 기억에서 블랙이란 존재를 지울 수 없었다. 그저 일을 하며 안도감을 얻을 뿐이다. 이런 그를 바라보는 도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이미 까마귀 떼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고, 어렵사리 다시 맞이한 생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본 윌리엄의 인생이다. 윌리엄 본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굉장히 만족스러워한다.


왜 일까. 까마귀 떼. 블랙은 어떤 존재일까. 윌리엄이 어린 시절 죽인 까마귀가 계속해서 복수를 가하는 것일까. 혹은 잘못을 저지른 윌리엄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인 것일까.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협상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윌리엄을 보고 있으면, 그가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간다는 느낌보다 이 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숙연함이 보인다. "벨맨은 수면 부족으로 얼룩지고 시들해진 삶에 익숙해졌다. 그의 내면은 공허했지만 그는 여전히 미소 짓고 악수하고 더하고 곱하고 나누었다. 누구도 아닌 그 자신만이 이 모든 것의 대가를 알았다." 초연한 듯한 태도 윌리엄 벨맨의 태도는 음울하게 드리워진 숙명이나,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인생의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하는 듯하다.


『벨맨 앤드 블랙』은 죽음 앞에서 모두 누군가를 잃거나, 누군가는 모두를 잃는다.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거부할 때 윌리엄은 불안했다. 술과 잠, 일에 기대어 슬픔과 불안을 지워보려 했지만 지울 수 없었다. 생각 속에서 거래하듯이 죽음과 행운을 등가교환하려 했지만,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윌리엄은 죽음과 계약을 했고, 그 계약은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참 대단한 삶을 살았군요!" 그가 감탄하며 블랙에게 말했다. "이 삶을 생각하면서 반생을 보낼 수도 있겠어요!"
"기억하세요!"
『벨맨 앤드 블랙』, 408쪽


책 마지막 부분에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왠지 이 소설은 다음에 읽으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 것 같다. 윌리엄을 전혀 다르게 바라볼 것 같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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