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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리커버 특별판)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 초등학생 무렵 TV에서 방영해 준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군인들, 탱크, 몽둥이와 군홧발에 얻어맞고 쓰러지는 시민들. 그 장면들은 어렴풋한 이미지로 남았다. 훗날 그것이 5.18의 자료 화면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배경과 참상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 후에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었고, 왜 막을 수 없었을까.
- 이 책은 흔히 5.18이라 부르는 광주 민중항쟁을 기록한 책이다. 1980년 10월부터 바로 자료 수집에 착수하여 5년 만에 책이 나오게 되었고, 당연히 금서였던 터라 지하세계의 베스트셀러라고 불리웠다. 외신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 그리고 이 책을 수많은 사람들이 몰래 돌려 보며 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철저한 보도통제와 언론탄압 속에서 묻혀 있었던 진실은 그렇게 드러나게 되었고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 2017년 발간된 전면개정판은 방대한 자료를 더욱 보강하고, 그 이후 밝혀진 사실들을 통해 역사적/법률적 성격을 명확히 하였다고 한다. 자료와 증언에 기초하여 담담한 문체로 사건들을 빠짐 없이 기술하면서도 전두환과 신군부, 그 동조자들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고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책의 중반부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항쟁의 경과 부분인데, 읽기가 괴로울 만큼 끔찍하고 참담했다. 작전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마치 짐승과도 같이’ ‘살인면허라도 받은 것처럼’ 평범한 시민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 폭행하고 시체처럼 질질 끌고 갔다고 한다. 그 만행을 보고 나였다면 참을 수 있었을까? 함께 일어나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너무도 큰 공포감으로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조차 없었을까?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나는 모른다.
- 기간이나 피해자 규모 면에서 제주 4.3이나 한국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5.18 역시 앞선 사건들과 동일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세력이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이념을 앞세워 군인과 시민들을 서로 증오하게 만들고 죽이도록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 미국은 이미 신군부의 계엄 확대와 군사 이동, 광주에서의 만행을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동의, 승인하였다는 점에서 5.18의 종범이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것도 이 책의 역할 중 하나이다. 역사의 칼끝은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며 책임자인 전두환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그가 원혼들과 유족들 앞에 무릎꿇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계속해서 심판대로 끌어내야 한다.
- 우리가 당연한 듯이 누리는 오늘의 자유를 있게 한 오월의 광주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