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1주

우리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스타일이라고 할까. 다소 무뚝뚝하고 말씀이 별로 없으시지만 표현이 그렇다할 뿐 인자한 마음과 심성은 고운 분이시다. 허나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을 다 헤아려낼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아닐까. 부모님의 마음은 하늘, 바다 그 이상 아니던가. 결혼은 아직 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런 부모님의 깊은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리는 없다. 그저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니면 영화와 같은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낌을 알아가는 것일 뿐.

가족, 그 어감만으로도 따뜻한 단어이다. 그 가족 중에서도 아버지의 역할은 거대한 것 같다. 때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때로는 든든하기도 하다. 어머니의 역할이 부드러운 면이 많다면 아버지는 그와는 반대되는 느낌이 많은 편이다. 바로 이런 서로 다른 조화를 통해 이해, 화합을 갖게 되는 것이 가정의 행복을 이루는 균형일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요즘 사회는 가정의 균형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가족간의 패륜범죄가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는 것이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워져 가는 것 같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관계가 무너지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지탱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가족들에 관한 세 편의 영화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느낌을 정리해보았다. 가족 중에서 아들을 잃게 되고 그 이후 가족들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담고 있다. 특히 가족중에서도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놓치기 쉬운 아버지가 겪는 아픔 등을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모성애 이외에 부성애 또한 진정 어떤 것인지를 강조하는 영화들이다. 
  

 

 

 

 

 

 



아들(2002) : 다르덴 형제 감독, 올리비에 구르메 주연

안경을 낀 중년의 남성이 힐끗 뒤쪽을 돌아보고 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은 희미하게 처리되어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포스터에 적힌 문구들.

- 흔들리는 시선이 멈추는 곳

- 5년전 아들을 죽인 그 아이를 만났다.

벌써 영화가 주는 느낌이 어떠할지 짐작이 갈 만하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목공 일을 가르치고 있는 올리비에, 어느날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평화로운 가정을 흔들어놓았던 그 아이가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오게 되면서 그는 미묘한 시선으로 아이를 예의주시하게 된다. 무뚝뚝한 태도로 아이에게 일을 가르치던 올리비에는 어느날 자재를 구하기 위해 그 소년을 외진 곳까지 데리고 오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만이 있는 공간에서 밝힌 사실, '네가 죽인 아이가 내 아들이었다.' 소년은 도망치게 되고 올리비에는 그 소년과의 대화를 원하며 뒤쫓게 된다......

영화는 정적이고 고요하다. 감정이입에 방해를 주는 배경음악이 전혀 없다. 시작할때나 끝날때나. 그런 조용한 배경 속에 영화의 중심은 아이를 잃고 아내와도 이혼하면서 혼자 살아가는 어느 평범한 아버지와 그의 가정의 평화를 깨뜨린 장본인인 소년,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마음은 복잡하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을 가르쳐야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누가 편한 마음으로 소년에게 정성을 기울일 수 있을까. 그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계속해서 소년을 지켜보고 있다. 처음 그것은 마치 먹이를 노리고 기회를 엿보는 육식동물의 눈빛처럼 생각들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보다는 좀 더 다른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 너머에 담겨있는 아버지의 감정은 분노와 용서 사이에서 방황하는 듯 했다. 만약 소년이 일말의 반성도 없이 개념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면 아버지의 결심은 바로 그 외진 산 속의 차가운 흙바닥에서 소년의 목을 더 강하게 누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의 불행한 가정사를 알게 되고, 그가 지켜본 소년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우울하고 두려움 가득한 표정이 그의 감정을 결국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단순히 '아들'이라고 했는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알게 되었다. 아니,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두 사람이 별다른 대화는 없지만 같이 조용히 자재를 포장해서 차에 싣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있다. 새로운 아버지, 새로운 아들을 서로 만나게 된 듯한 따뜻한 분위기,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가 되어보진 못했지만 영화 속 아버지가 느끼는 그 복잡한 심정, 마치 종교인으로서 죄를 사하고 용서하고자 하는 거룩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의 방(2001) : 난니 모레티 감독, 난니 모레티 주연

 [아들]과는 구도가 다른 포스터다. 전면에 등장하는 아들의 모습이 희미한 반면 아들의 어깨 너머로 얼굴만 비춰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오히려 선명하다. 이 또한 영화가 보여줄 스토리가 어떤 것인지 짐작케한다.

- 사랑하는 아들아, 그 한통의 전화에 너를 잃게 될 줄이야...

로 시작되는 몇 줄의 절절한 문구들... 

소박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조반니의 가족들, 그러나 어느날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갔던 아들이 사고를 당해 숨지게 되면서 가족들의 행복은 일순간에 무너져간다. 사고 당일 갑작스런 환자의 요청으로 인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 조반니는 그로인한 죄책감으로 엄청난 괴로움과 고통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고, 그와 더불어 그의 아내와 딸마저도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런 어느날 아들의 옛 여자친구가 조반니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녀의 방문으로 비로소 조반니 가족들은 다시금 아픔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갖는다......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10년전 친했던 친구가 사고로 숨졌다. 장례식장에서 뵙게 된 친구 부모님의 모습은 날 더 가슴아프게 했었다. 항상 유쾌하고 밝은 모습을 보이시던 친구 어머니는 넋을 잃은채 걸음을 제대로 걷질 못하셨고, 강해보이셨던 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두 분을 위로해드리고자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멍하게 있던 내 모습도 기억이 난다. 가족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자식을 먼저 보내야만 하는 그 마음은 고통 그 자체였으리라. 어찌 내가 두 분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영화는 아들의 죽음이 한 가정에 미친 영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아픔은 정말 절절하게 다가온다. 특히나 아들과의 약속을 못 지킨 것이 평생의 한으로 짊어지게 된 아버지의 모습은 안쓰럽다. 환자 상담을 할 때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놀이기구를 탈때도, 평화로웠던 집에 왔을 때도 그의 눈은 충격에 빠져 멍하기만 하다. 마치 살아 움직이고 있어도 살아있는게 아닌 것 같은 모습, 그런 모습이다. 그가 흔들리면서 그의 가정도 더욱 흔들리게 된다.  

아버지의 아픔, 아들을 잃은데 대한 그 애끓는 고통과 한은 얼마나 크겠는가. 평생 가슴 속에 묻고 살게 되는 부모님의 그 심정은 먼나라 이탈리아 영화라 할지라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만국 공통의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슬픔만 간직하도록 용납하진 않는다. 남은 가족들이 다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해준다. 아들의 옛 여자친구를 만나 아들과의 추억 등을 이야기나누면서 가족들이 점차 치유될 수 있는 계기를 보여준다.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자의든 타의든 슬픔을 극복하고 치유하려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 같다. 그것은 남은 사람들이라도 먼저 간 가족들의 몫을 더해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 아닐까. 마지막 그 여자친구가 떠나면서 버스에서 바라본 조반니 가족의 모습은 바로 그런 희망을 담고 있다.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다시 희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 말이다.    

 

 

 

 

 

 

 



그 놈 목소리(2007) : 박진표 감독, 설경구, 김남주 주연

-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 놈을 잡기 전에는...

유괴 살해된 아들을 향한 부모의 절규가 가득한 문구. 그리고 그 문구만큼이나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1991년 우리나라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실이라는데 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미제사건이라면서 얼마전 모 TV 시사다큐 프로그램에서 소개해준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미리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면 절대 이 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보는 동안 마음이 아프고 불편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으로 죄없는 아이를 희생시키고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깨뜨린 그 놈 또는 그 놈들이 과연 자식을 낳고 키우는 아버지가 되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를 통해 그리고 최근 본 TV시사 다큐를 통해서도 다시 이 사건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추적이 필요하다고 지지하고 싶다.  

영화가 아닌 사건에 대한 분노가 늘어나는 만큼 느끼게 된 것은 바로 유괴된 아이 부모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절절하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의 부모를 연기한 설경구, 김남주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답답한 상황을 보다 못해 분노를 폭발하게끔 이끌어내는 등 감정이입에 최선을 다해주었다고 본다. 연기자가 아닌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가진 부모로서 느끼는 그 마음 그대로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되었다.  

특히 원래 마스크가 다소 차가워보이는 설경구는 무뚝뚝해 보이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자식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표정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로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진정 실제 아이 부모의 심정처럼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유괴 사건 등의 경우 해결책 마련 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감때문에 아버지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어머니보다 더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연기에 임하는 것 같았다. 물론 김남주의 연기도 훌륭했다고 보지만 자칫 어머니에 비해 비중도가 약해질 수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더 중점적으로 잘 부각시켜 준 것 같다. 아마 영화촬영 이후로도 연기에 대한 감정에서 벗어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았을까 싶다.  
 


가정의 가장이자 아이의 아버지로서 기둥이 되고 버팀목이 되는 우리의 아버지들, 그들이 가족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들은 어머니보다는 약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런 영화들을 통해서 부성애는 과연 어떠한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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