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7월 4주



날씨가 더워지다보니 공포영화가 눈에 들어온다. 공포물이 더위를 식히는데 다소의 효과를 낸다고는 하지만 재미없는 영화들로 인해 오히려 더 열받는 경우도 많다. 오래전 재밌게 감상했던 검증된 고전 공포영화들에 대해 재조명해본다. 이들 영화가 안겨준 공포는 단순히 유혈이 낭자해서 느껴지는 놀라움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심어주는 존재, 즉 악마의 존재가 보여주는 무서운 능력으로 인해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이다.   


 

오멘(OMEN)은 사전적 의미로 징조, 조짐, 예언 등의 뜻이며 특히 좋지 않은 징조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멘하면 역시나 연상되는 것은 바로 666이라는 숫자.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의 숫자를 지칭하면서부터 이 수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의미가 되었다. 7은 천사의 숫자이고 6은 7보다 하나 모자란 불안전한 숫자로서 이들 숫자가 세 개 모여 적그리스도가 된다는 설명이다. 개인적으로는 6이라는 수를 좋아했으나 이 영화를 본 이후로는 7로 바뀌게 되었다. 이 영화가 섬뜩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첫째 악마의 아이 데미안이다. 이 아이를 연기했던 배우 이름은 잘 모르지만 그 예사롭지 않은 눈빛 하나만큼은 확실한 캐스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인도 아닌 아이가 바로 악마의 혈통이라는 사실도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로는 안전지대가 무너지면서 갖게 되는 공포심이다. 심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인 교회나 집에서조차 끔찍한 사고들이 발생되면서 어디로 도피해야할지 모를 공포심이 유발된다. 특히 구원, 방어를 상징하는 신부님이 교회에서 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악마의 힘에 대한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세 번째로는 악마의 존재를 알거나 그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우연을 가장하여 끔찍한 사고들이 발생하는 그 장면들은 시대적으로 봤을 때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것. 지금이야 슬래셔 무비 등에 익숙해졌지만 당시엔 이런 장면은 쇼킹 그 자체였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다시보기를 망설이고 있는 영화다.
 

 

엑소시스트는 특정 종교단체에서 강력하게 반발할 정도로 사회적 이슈를 가져왔던 대단한 영화였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서양세계에서 지극히 동양적이고 미신적인 내용을 다루었다는 점이 색다른 영화. 게다가 오멘처럼 아이에게 깃든 악령의 실체가 끔찍하게 표현되는 것이 충격적이다. 십자가를 이용한 퇴폐행위라든지 목이 돌아가 움직이는 등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오컬트 현상이라는 심령학적인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아무래도 동양보다는 서양세계에서 더 충격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언론에서조차 대대적인 방송을 할 정도로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 이채롭다. 헌데 이런 심령학적 영화를 촬영한 출연한 배우들의 신상에는 그다지 좋지 못한 징크스가 이어지는 것 같다. 엑소시스트로 깜짝스타가 된 린다 블레어는 이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탓인지 폭넓은 연기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 채 그저그런 배우가 되었고 엔젤하트의 미키 루크 역시 정상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운명을 맞이했었다. 결정적으로 폴터가이스트라는 영화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소녀를 비롯한 다수의 출연배우들이 실제로 기이한 죽음을 당하며 저주를 받았다는 미신까지 있었다고 한다. 물론 결과를 놓고 평가하는 결과론적 해석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악마의 힘은 신성한 두 신부님의 역량을 동원해도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강력함을 보여주면서 두려움의 근원을 제공한다.    


 

샤이닝은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공포작품. 1980년 영화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20년이 지난 2000년대 들어서야 DVD 출시 등으로 정식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검열이라는 황당한 사회제도가 존재하던 시기에 만들어낸 어이없는 해프닝이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슬래셔, 스플래터, 고어 등의 잔인하고 끔찍한 영화들이 그 시절 개봉했더라면 아마 무더기로 수입중지 또는 가위질로 훼손되었을 듯. 이 영화는 완벽주의자 큐브릭의 작품이라는 것 외에 개인적으로 꼽는 특징적인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한 가지는 배역에 걸맞는 캐스팅. 귀여운 외모이면서도 심령현상을 경험하며 두려움과 기이함을 잘 표현해내는 꼬마 아이 대니 로이드를 비롯해서 공포에 질린 눈이 정말 인상적이었던 셜리 듀발, 무엇보다 진짜 미치광이가 된 것만 같은 잭 니콜슨의 모습 등은 정말 ‘제 몸에 꼭맞는 옷’을 입힌 것 같아보였다. 특히 잭 니콜슨의 연기는 짜릿한 경험이다. 내용면으로 보면 고립된 환경과 호텔에 스며있는 악령들에 의해 서서히 미쳐가게 되는 것이지만 실제 촬영당시 큐브릭 감독이 수도 없이 재촬영을 요구하면서 니콜슨을 진짜 광기에 사로잡히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른 한 가지는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스태디캠이라는 특수한 장치까지 고안해내는 혁신이었다. 요즘에서야 모큐멘터리 영화 등이 유행이 되면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흔들리는 화면 그대로 촬영하기도 하지만 이때만해도 뛰어가는 장면을 흔들리지 않고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새롭게 연구한 것이 큐브릭 감독다운 방식이라 느껴진다. 영화 후반부에 호텔 앞의 미로 정원을 뛰어가는 장면에서 이 장치가 보여주는 안정적인 화면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긴 러닝타임에 비해 영화 중후반부터 등장하는 주요배우들은 총 4~5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오히려 너무 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전개가 산만하고 재미가 흐려지는 요즘의 호러무비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엔젤하트는 헐리우드 탄생 100주년 기념작으로 제작된 영화. 부두교의 의식과 주술, 영혼을 사는 악마 등 동양적이면서 오컬트적인 설정은 엑소시스트와 비슷한 느낌이다. '선과 악의 주연'이라고 해도 단지 이 영화에서 미키루크의 극중 인물 이름이 '엔젤'이라는 것일뿐 천사와 악마가 서로 맞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라는 점, 게다가 부두교같은 생소한 종교문화에 탐정물을 엮었다는 구성 등이 독특했던 영화로 결말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요즘 흔히 접하는 반전영화보다도 강한 충격을 주었다. 시종일관 스산하면서도 음침한 기운의 배경과 영화 중간중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검은 가운을 두른 정체불명의 인물과 환풍기, 엘리베이터, 빗방울, 핏물 장면 등은 어두운 결말을 암시하는 듯해서 더 섬뜩하다. 그리고 역시 이 영화하면 로버트 드 니로가 먼저 떠오른다. 너무나 유명한 연기파 배우이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악마의 이미지는 정말 가까이 하기 두려운 존재라는 사실을 충분히 느낄 만큼 카리스마적이다. 인상적인 것은 식당에서 삶은 계란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넌지시 얘기하기도 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알이 영혼의 상징이라고 여긴다고 하면서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삶은 계란을 차가운 눈빛을 띄며 먹기 시작하는데 이 장면은 정말 보면 볼수록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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