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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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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도서 중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던 작품이었고, 읽고 난 뒤엔 역시 위화라는 말과 함께 기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어낸 것도 오랜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면서, 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너절한 슬픔 때문에 운 게 아니라, 헤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이들이 헤어지는 게 안타까워서 울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 안에는 나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서로 미워하는 마음도 없으며, 사랑하고 서로 그리워하는 감정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인위적이거나 억지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자연스러운 일처럼,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이 이승에서 가지고 있던 응어리는 어느 순간 모두 사라져있다.

 

 

  리씨가 떠나가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장강은 그가 안식의 땅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을 눈치 채고, 뼈만 남은 손으로 그의 뼈만 남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

  그러자 리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바둑이 아직 안 끝났잖아.” -276p.

 

 

  장강과 리는 이승에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히려 나빴다고 할 수 있다. 리가 장강을 찔러 죽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장면에서는 리와 장강이 서로 헤어지기 싫어하는 애틋한 친구처럼 보였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는 살아있는 때의 미운 감정들이 모두 소용없게 돼버리는 걸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이 소설 속과 같다면, 죽는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7일>에는 허튼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양페이가 빈의관을 가면서 본 교통사고도, 빈의관에서 만났던 파란색 옷의 남자도, 탄가네 이야기도, 여자로 분장하고 매춘했던 리씨와 장강이 만났던 일도 결국엔 다 필요한 일이었다.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위화는 그 사건 속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을 나중에 다시 풀어냈다. 어떻게 보면 허무한 죽음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예로, 아래의 13p에 대한 이야기는 253p에 가서 자세하게 언급된다.

 

 

  나는 멍하니 선 채 203번 버스를 기다렸다. 느닷없이 자동차 여러 대가 연이어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짙은 안개가 눈에 스며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들이 연이어 충돌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때 승용차 한 대가 안개를 뚫고 내 옆을 스치더니 숨 쉬는 소리 쪽으로 돌진했다. 소리들이 끓어오르는 물처럼 순식간에 폭발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계속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뒤에야 대형 교통사고가 일어났으니 203번 버스가 오지 않겠구나,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3p.

 

 

  “안개가 아주 짙은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기억이 나요. 다른 건 기억나지 않아요.”

  문득 나의 첫째 날, 셋집을 떠날 때 안개 속을 거닐던 게 생각났다.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차 여러 대가 연쇄 충돌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차량 한 대가 안개 속에서 튀어나왔다. 이어서 비명 소리가 물 끓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

  “혹시 버스 정류장 팻말 옆에 서 있었어요?”

  내가 묻자 그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네, 거기에 서 있었어요.” -253p.

 

 

  위화는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을 먼저 보여 주고, 그 사건을 통해 어떤 인물이 죽었고, 그 인물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나중에 밝히는 방식으로 많은 인물을 제시하고 풀어냈지만, 이야기가 흐트러지거나 산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체 구성이 치밀하고 촘촘하게 짜여있다고 불 수 있다. 위화는 소설 속에 일어나는 모든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든 죽음에 각자의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도록 했다. 저승에서 만난 인물들과 양페이는 이승에서 이미 마주쳤던 사이였다. 위화는 이 치밀한 구성을 통해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말하고 있었다.

 

  비현실과 현실의 동시성에 대해서도 나는 주목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있을 법하게 그려놓다 보니, 우리는 <제 7일>의 세계가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현실이었다면 빈의관에 가는 건 산 사람들이지만, <제 7일>에서는 죽은 자들이 직접 빈의관으로 간다. 게다가 해골들이 장기를 두고 있으며, 사고로 망가진 얼굴을 몇 번의 손놀림으로 재정비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어떻게 보면 죽음 이후의 세계 자체가 가장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위화는 여기다 현실의 이야기를 슬쩍 집어넣는다. 바로 아이폰4S와 중국판 SNS인 QQ공간의 등장이다. 사후세계에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비현실과 현실의 동시성이라고 볼 수 있다. 죽고 나서 재산이나 명성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일까. 그래서 기존 작품 속 저승에서는 이승에서의 재정 상태나 명예 같은 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 7일> 속에서는 살아 있을 때 모습이 저승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로써 소설 안에서는 비현실(저승)과 현실(부익부 빈익빈)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제 7일>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양페이와 아버지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리칭, 하오 아저씨와 리 아줌마 등등. 나는 모든 인물들에게 애정을 느꼈다.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인물들을 통해서 나는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나처럼 어느 인물 하나 허투루 흘리지 못할 것이다. 아마 위화도 글을 쓰는 내내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제 7일>을 읽고 나니, 위화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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