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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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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치기 전, 나는 책의 뒤표지부터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일종의 가늠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개의 심장>이 유럽 최초의 개인간, 샤리꼬프에 대한 내용이란 걸 알게 되었다. 우선, 러시아 문학에 문외한인 나 자신에 대해 반성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소설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나의 배경지식이 너무나도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만의 감상을 앞세우기로 했다. 어쨌든 가늠의 결과, 나는 샤릭(개)이 샤리꼬프(개인간)로 거듭나는 그 과정에 대해 다뤄진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샤리꼬프가 된 ‘그 이후’에 대한 것이었으며, 샤리꼬프가 필립 필리뽀비치의 부속물로써 순순히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점에서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샤리꼬프는 정말로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쩌면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나서, 거주증을 요구하는 등의 사회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왜 나는 소설을 읽어 보기 전에 샤리꼬프가 한낱 괴물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소설이 쓰인 1920년대에 비하자면, 나는 지금 첨단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샤리꼬프에 대한 단상은 그 당시를 살아가던 미하일 불가꼬프의 것에 반 푼어치도 따라가지 못했다. 또한, 끌림 추군낀의 뇌를 샤릭에게 이식하자, 외모 또한 끌림 추군낀의 것으로 변해간다는 발상도 나는 해본 적이 없었다.

 

 「아빠, 아빠는 왜 그렇게 나를 심하게 학대하고 그러세요?」

  갑자기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필립 필리뽀비치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안경을 번쩍거리며 들었다 놓았다.

 「누가 당신 <아빠>란 말이야? 이게 무슨 허물없이 구는 태도야? 난 다시는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나를 부를 때는 이름과 부칭을 존중해서 부르도록!」

  그의 입에서 갑자기 불손한 표현들이 막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란 말이 그렇게 당신한텐 무익하고 쓸모 없단 말이야! 내가 당신한테 나를 수술해 달라고 청한 적이 있나?」ㅡ133p

 

  이 장면에서 나는 묘한 공포심을 느꼈다. 문득, 샤리꼬프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마 필립 필리뽀비치와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 필립 필리뽀비치가 샤리꼬프를 탄생시키긴 했지만, 그를 마음대로 할 순 없었다. 샤리꼬프는 하나의 독립된 인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샤릭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개로 대할 수도 없었다. 개와 완전한 인간 사이에서의 간극, 샤릭(혹은 샤리꼬프)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거기다 자신을 수술해 달라고 청한 적 있냐고 되묻는 샤리꼬프의 질문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샤릭의 의사 같은 건 애초에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립 필리뽀비치에게 있어 샤리꼬프는 어떤 존재였을까?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까? 만약 샤리꼬프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고 필립 필리뽀비치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었다면, 그래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더라면, 그때엔 ‘아빠’라는 말을 허락해주었을까? 이런 점에서 나는 묘한 혼돈을 느끼기도 했다. 어찌됐든, 우리는 개를 낳을 수 없고, 낳아본 적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낳을 수 없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쁜 말을 해서는 안 돼!」

  갑자기 개가 큰 소리로 외치며 안락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ㅡ223p

 

  이 장면에서 나는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개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샤릭 안에 들어있는 것은 어쩌면 완전한 샤릭이 아닐지도 몰랐다. 샤리꼬프의 모습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샤릭.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샤릭과 샤리꼬프 중에 어떤 것으로 부르는 게 옳을까? 어떻게 부르던 간에, 그 이름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샤리꼬프로 살아가던 샤릭은 결국 개로 돌아가고 만다. 샤릭을 마음대로 샤리꼬프로 만들었던 것처럼, 샤리꼬프를 다시 샤릭으로 되돌릴 때에도 그의 의사는 명백히 무시되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샤리꼬프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탓할 수는 없었다.

 

 

 

  소설을 전부 읽고 나니 호접지몽이 떠올랐다.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샤릭은 자신이 샤리꼬프로 살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샤릭이 샤리꼬프인지, 샤리꼬프가 샤릭인지, 어느 쪽이 어떤 쪽을 지배하고 있는 건지, 주체는 누구인지, 감당할 수 없는 물음들이 내 안에서 쏟아져 내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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