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산
재연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덧 떠들썩하게 시작했던 2000년도 벌써 넉달이 지나갔다. 누구나 이맘때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를 습관처럼 한 번씩 생각해보게 된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힘겨우면서도 왠지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남보다 뒤쳐질까봐 불안해지는 사람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입산이라는 제목에 붙어있는 꼬리표처럼 재연스님의 행자일기이다. 눈 그친 맑은 겨울날, 단지 보통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의 방랑을 동경할 뿐인 자신이 '왜 왔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할까를 고민하는 발걸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은 인간적이다. 매일매일 일기를 써나가는 유행자는 부처님처럼 자비롭고 위대한 스님도 아니고 단지 수행의 길을 가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치러지는 삭발이 서럽기도 하고 같이 한 방에서 생활하는 공양주 보살님의 중학교 이학년짜리 명식이가 밉기도 하다. 또한, 버젓이 대학까지 다니다가 큰스님이 되겠다며 으시대고 잘난척하는 이행자에게 질투도 느끼고 '나는 참말로 하나도 안 보고 싶다'면서 그리워하는 순이생각은 애절하기까지 하다. 이 모든 것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적어가며, 그 속에서 하나씩 깨달음을 얻는다. 가르침을 전하는 큰스님들의 말씀은 마치 겨울밤 화롯가 옆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처럼 정겹고 친근해서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빠져들곤 했다.

이제는 재연스님으로 살아온 지도 꽤 세월이 지났을 텐데 다시금 열 아홉 맑은 겨울날로 되돌아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초발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 일기를 뒤적이는 것 또한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수행이었을까?

너무 많은 것을 쌓고 또한 쌓으려고, 챙기려고 안간힘쓰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문수 노스님의 말씀은 더욱더 긴 여운을 남긴다.

'도 닦는 중은 모름지기 새가 나는 하늘과 같아야지. 허공에는 아무 자취도 남지 않는 것잉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