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떠들썩하게 시작했던 2000년도 벌써 넉달이 지나갔다. 누구나 이맘때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를 습관처럼 한 번씩 생각해보게 된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힘겨우면서도 왠지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남보다 뒤쳐질까봐 불안해지는 사람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이 책은 입산이라는 제목에 붙어있는 꼬리표처럼 재연스님의 행자일기이다. 눈 그친 맑은 겨울날, 단지 보통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의 방랑을 동경할 뿐인 자신이 '왜 왔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할까를 고민하는 발걸음으로부터 시작된다.이 책은 인간적이다. 매일매일 일기를 써나가는 유행자는 부처님처럼 자비롭고 위대한 스님도 아니고 단지 수행의 길을 가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치러지는 삭발이 서럽기도 하고 같이 한 방에서 생활하는 공양주 보살님의 중학교 이학년짜리 명식이가 밉기도 하다. 또한, 버젓이 대학까지 다니다가 큰스님이 되겠다며 으시대고 잘난척하는 이행자에게 질투도 느끼고 '나는 참말로 하나도 안 보고 싶다'면서 그리워하는 순이생각은 애절하기까지 하다. 이 모든 것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적어가며, 그 속에서 하나씩 깨달음을 얻는다. 가르침을 전하는 큰스님들의 말씀은 마치 겨울밤 화롯가 옆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처럼 정겹고 친근해서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빠져들곤 했다. 이제는 재연스님으로 살아온 지도 꽤 세월이 지났을 텐데 다시금 열 아홉 맑은 겨울날로 되돌아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초발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 일기를 뒤적이는 것 또한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수행이었을까?너무 많은 것을 쌓고 또한 쌓으려고, 챙기려고 안간힘쓰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문수 노스님의 말씀은 더욱더 긴 여운을 남긴다.'도 닦는 중은 모름지기 새가 나는 하늘과 같아야지. 허공에는 아무 자취도 남지 않는 것잉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