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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드실래요?
김연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가족들과 멀리 떨어진 낯선 나라에서는 누구나 고향의 맛이 못견디게 그리워 지는 법이다. 또한, 한 접시의 요리 앞에서는 인종이나 종교, 언어의 장벽도 쉽게 사라진다. 처음 보는 낯선 요리들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어느 새 친한친구나 사랑하는 연인이 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작가 김연희는 낯선 미국 땅에서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한 접시의 요리로 순식간에 친구가 되어 타향살이의 고달픔을 서로 어루만지던 소중한 추억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 온 작가가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소중한 추억은 소박하지만 깊은 감동이 있었다.
서툰 영어 실력으로 미국에서 2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꾸려나가야 했던 그녀에게 “밥은 먹었니? 어서 와서 함께 먹자”라는 한 마디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순수한 어린 아이들이 눈빛만으로도 금방 친구가 되듯이,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한 접시의 요리를 나누며 외롭고 쓸쓸함을 나누었다.
일본, 인도, 이란, 인도네시아, 에콰도르, 벨기에, 콜롬비아, 러시아, 시실리아, 그리스, 멕시코, 튀니지공화국, 뉴질랜드 등.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모인 그녀들이 함께 나눈 맛있는 요리법과 따스한 우정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낯선 타국에 대한 거부감이나 편견을 벗어 버리고 성큼 다가가 보자. 책에 소개된 세계 각국의 가정식 요리법을 크게 둘로 나누어 소개해 본다. 이 가을날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달래줄 소박하고 든든하거나 부드럽고 달콤한 요리들이다.
소박하고 든든한 한 끼 식사
- 따듯한 배려를 보여준 미국인 시빌의 [오픈 샌드위치]와 [머시드 포테이토]
- 뉴질랜드의 질 좋은 버터와 우유, 꿀을 그리워하는 케이시가 만들어 준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볶음밥],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시원한 과일샐러드]
- 17살 인도네시아 베이비시터 에피의 [마르타바크 테라르(춘권피나 만두피에 싼 계란 요리)]와 [소토미(쌀국수 요리)]
- 다재다능한 일본인, 나오코의 [돈지루(일본식 된장찌개 같은 요리)]와 [술로 조리하는 죽순과 생선 조림], [닭 가슴살로 맛을 낸 오사카 우동], [돼지갈비 양념 바비큐] 그리고 [명란 크림 스파게티]
- 진짜 아름다움을 보여준 일본 여인 마미의 [참치통조림으로 만든 딥 소스]와 [바삭바삭한 굴튀김]
- 채식주의자 인도인, 비하가 만든 [향이 강한 북인도 지방의 크림 커리인 큐마]와 [라이스 필라프]
- 고대 페르시아 왕국을 가슴에 품은 이란인 수잔이 만든 [샤프란 밥]과 [이란식 닭고기 요리]
- 인디언 계 미국 노처녀 마르시아의 인디언 할머니가 가르쳐 준 [스테이크 매리네이드]와 [페스토 소스]
- 정열적인 살사 춤을 흉내 내며 에콰도르를 그리워하는 여인 로레나의 [에콰도르식 간단한 콩 요리와 샐러드]
부드럽고 달콤한 요리들
- 말이 안 통해도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우정을 나눴던 벨기에 여인 다니엘라가 만들어준 [크레이프(얇게 부친 팬케이크)]
- 뉴질랜드인 존 릴리가 계란 흰자로만 만든 [하얗고 달콤한 뉴질랜드 전통 디저트, 파블로바]
- 지적인 매력을 지닌 콜롬비아인 로사나의 [콜롬비아 코코넛 밥]과 [라이타 요구르트 샐러드]
- 미국에서 태어난 인도인 케빈의 엄마가 만든 [튀긴 만두 같은 푸리]와 [달콤한 망고 파이]
- 러시아인 넬리아의 [러시아식 팬케이크, 블리니]와 [재미로 먹는 가지 구이]
- 시실리아인 안나가 무쇠 오븐에 구워준 [코코넛 파이]
- 그리스 여인, 데다가 만든 [토마토 안에 볶음밥을 채운 스터프 토마토]와 [세이블 오렌지 마멀레이드]
- 튀니지공화국에서 온 두하의 [양고기 쿠스쿠스]와 [튀김만두 같은 브릭], [당근을 쪄서 만든 샐러드], 그리고 [잣을 듬뿍 띄운 뜨거운 사막차]와 [진한 아라비아커피]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온갖 신기한 음식들을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담은 사진이 없는 점은 아쉽지만, 따라 하기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세계 각국의 온갖 신기한 요리법들을 읽다 보면 각국에서 모여든 여성들이 나눈 깊은 우정이 따듯하게 전해져 오는 점이 일반적인 요리책과는 차별화되는 매력이다.
스스로를 `글을 못 쓰는 동화 작가`라고 소개했지만, 뚝딱뚝딱 요리를 하는 그녀들의 모습과 음식의 맛과 향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글맛이 범상치 않다. 세계 각국의 진기한 요리법에 작가의 상상력이 기막히게 버무려져 입맛을 돋운다. 은퇴한 찰리 메이어 부부가 즐겨 먹는 `초록 고추 소스를 얹은 윌리엄스버그 스테이크`에 얽힌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와도 같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요리법 외에도 각종 실용적인 정보들이 듬뿍 담겨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설음식인 ‘오세치’에 담긴 심오한 의미들, 뉴질랜드에 가면 반드시 먹어봐야할 음식들부터, 세계 각국의 요리를 접할 수 있는 주한 문화원 정보와 외국 식재료를 파는 곳까지 요리저리 쓸모 있는 정보들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