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왕비의 유산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8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가장 좋은 정부는 우두머리가 죽어도 손쉽게 대역을 찾아서 활동을 계속하는 정부가 아닐까? 그 조직에는 어떤 비밀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일세.


베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언제나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생각이 난다.


열한 살 때 인 1893년, 동갑내기 사촌누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쥘은 산호목걸이를 구해다 선물하려고 인도로 가는 원양선에 몰래 탔다가 배가 프랑스 해안을 벗어나기 직전에 루아르 강어귀에서 아버지에게 붙잡혀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그때 소년은 "앞으로는 상상 속에서만 여행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 쥘 베른의 상상 속 여행의 모험담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엄청난 흥분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인도 왕비의 유산』은 (인도의 화려한 궁전을 배경으로 펼치는 모험담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책 제목 그대로 인도 왕비의 유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을 담고 있다.


어느 날 윌리엄 헨리 샤프 주니어라는 낯선 사내가 프랑스인 푸랑수아 사라쟁 박사를 찾아오게 된다. 그는 인도 여왕이 남긴 유산의 상속자를 찾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다.


벵골 주 총독이었던 장 자크 랑제볼은 인도 고콜 왕비와 결혼하여 유산을 물려받았는데, 그 후 남겨진 자식이 유언을 남기지 않고 사망하였기에 영국법원에서는 상속자를 찾게 된 것이다. 사라쟁의 할머니는 쥘리 랑제볼로 장 자크 랑제볼의 여동생. 그런데 남겨진 유산은 자그마치 약 2,100만 파운드, 프랑으로는 5억 2,500만 프랑!


갑자기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된 사라쟁 박사. 그러나 박사는 개인적인 욕망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국제위생학회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사라쟁 박사는 이 막대한 돈을 빈곤, 질병, 죽음에서 벗어난 이상적인 도시를 세우겠다고 발표한다. 그 도시 이름은 바로 프랑스빌.


이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영국인 로버트 오웬(Robert Owen)뉴하모니(New Harmony)를 떠올리게 한다. 오웬은 1771년 웨일즈의 가난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천부적인 사업 수완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그리고 1824년 미국 인디애나주 해안에 막대한 땅을 매입하여 유토피아를 건설하기로 하고 뉴하모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뉴하모니는 실패하고 오웬은 1828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New Moral World, Owen's envisioned successor of New Harmony.

Owenites fired bricks to build it, but construction never took place. (출처: 위키백과)



로버트 오웬과 그리 멀지 않은 시대를 살았던 쥘 베른은 어쩌면 프랑스빌을 통해 뉴하모니를 다시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유산 상속 권리를 주장하는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독일인 슐츠 교수. 그는 장 자크 랑제볼의 누나인 테레즈 랑제볼의 손자였던 것이다.


누구도 확실한 상속자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단시간 내에 빠른 이익을 얻고 싶은 변호사 샤프는 이를 중재해 유산을 똑같이 나누기로 하고, 한편 슐츠 교수는 프랑스빌 같은 어리석고 비상식적인 개미탑을 대신할 강력한 도시를 건설할 작정이라고 선언하게 된다.


5년 후, 미국의 태평양 연안에서 40킬로미터쯤 떨어진 오리건 주 남부. 인접한 두 주(州) 사이에 경계가 불확실한 미개척지가 펼쳐져 있는 곳에 독일 도시 슈탈슈타트, 즉 '강철 도시'가 세워진다. 바로 예나 대학 교수였던 슐츠 씨가 세운 도시로, 그는 세계 최대 제철업자이자, 대포 제조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도시로 한 젊은이가 들어온다.


그 젊은이는 요한 슈바르츠. 그러나 본명은 마르셀 뷔르크망. 사라쟁 박사의 아들, 옥타브의 친구로, 신체적, 지적,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한 청년이다. 그는 5년 전 슐츠 교수의 협박을 마음에 새기며 그 의도를 파악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강철 도시, 슈탈슈타트에 취직해 주조공으로 시작한 마르셀은, 그 지역 소년인 카를의 죽음을 계기로 설계사가 되면서 점점 슈탈슈타트 내부에 근접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슐츠 교수의 비밀과 프랑스빌 공격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는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지만, 바로 감금되고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프랑스인도 아니고, 게다가 19세기를 살고있지 않기에 책을 읽다보면 '독일인 슐츠 교수는 왜 프랑스 사라쟁 박사의 프랑스빌을 공격하고 싶어했을까'라는 의문을 같게 되는데, 이 책 뒷부분의 해설을 통해 그 의문을 풀 수 있다.


선 과 악의 대결이라는 양상이지만, 그와 동시에 프랑스 쪽에서 본 프랑스와 독일의 대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독일과 프랑스의 민족간 감정을 배겨으로 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알자스 태생의 프랑스 청년 마르셀 브뤼크망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

(중략)

프 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일어난 것은 1870년이고, 이 작품이 씌어진 것은 1879년이니까, 전쟁에서 패배한 사실에 대해 베른은 통절한 감정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알자스 젊은이' 마르셀의 활약과 복수는 결국 베른 자신의 한풀이나 다름 없다.


즉, 이 책이 출판되던 당시 프랑스와 독일의 감정은 매우 민감했던 때로 보여진다. 어쩌면 당시 유럽인들의 독일에 대한 느낌을 쥘 베른은 슐츠 교수의 입을 통해 대신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정 의, 선악 따위는 순전히 상대적이고 편의적인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자연 법칙 안에만 있다. 생존경쟁의 법칙은 중력의 법칙과 같은 가치가 있다. 거기에 거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거기에 적응하고 그 법칙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야 말로 이성적이고 현명한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사라쟁 박사의 도시를 파괴하려하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신비의 섬』, 오래된 미래를 연상시키는 우주 이야기인 『지구에서 달까지』, 『달나라 탐험』, 소년들의 로망 『해저2만리』와는 달리 과학적이고 신비한 내용은 많지 않지만, 대립하는 두 도시가 펼치는 이야기에서 쥘베른만의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쥘베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빼놓지 말고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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