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플레이트 - 세계를 감동시킨 기계 인간의 모험
폴 기난 & 아니나 베넷 지음, 김지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팩션이라고 해야할까, 모큐멘터리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가짜 논픽션'. 이 개성이야말로 본작의 모든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저연령대상 교육용 올컬러 역사책처럼 보이는 이 책은, 20세기 초중반까지 '실존했던'(그랬다고 주장하는) 기계인간 보일러 플레이트와 그 발명자 캠피언 남매의 행적을 따라가며 제국주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여기에 갖가지 (합성)사진자료, 지도 등을 동원하여 디테일을 더해, '이건 엄연한 논픽션이오'하고 능청을 떤다.

 

 아! 때는 20세기 초,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과 장밋빛 전망에 힘입어 산업의 활기로 가득찬 시대, 그러나 밑바닥에서는 약자들이 신음하는 시대, 기어이 양차대전이라는 댓가를 치르고 파멸로 내달리는 시대...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따뜻한 인간의 마음을 간직한 기계인간. 아, 이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란 말인가, 어디서 많이 봤다는 것만 빼면!

 

 아닌게아니라, 이런 소재는 다른 창작물에서 누구라도 한번이상은 보았을 게다. 프랑켄슈타인, 우주소년 아톰, 철인28호, 터미네이터2 같은 것 말이다. 이 기시감을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가짜 논픽션'이다. 본작은 논픽션을 가장함으로써 이 기시감을 탈색시키고, 다소 진부한 소재는 다시한번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다.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기존의 것들에선 볼 수 없는 어떤 독특한 감동을 기대하게끔 한다. 얼마나 깨알같은 재미를 줄 것인가. 리얼한 합성사진의 풀컬러 인쇄는 시각적 쾌감도 기대되는 터였다. 이를테면 스팀펑크 같은 거!

 

 ...그래서, 이런 흥미로운 책이, 결국 재미있는가?
 내가 너무 특별한 재미를 기대했던 걸까. 아쉽게도, 흥미로운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기대가 어긋난 근본 원인은, 본작이 리얼리티를 위해 많은 부분에서 자제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래, 스팀펑크는 지나친 욕심이었다!) 기본적으로 본작에서는 주인공 일행이 역사에 개입하는 정도가 별로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러이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게 아니고 보일러 플레이트가 저러저러해서...'라는 식이 아니다. 주인공 일행이 어떤 장소로 이동하면, 그 장소에서의 알려진 역사적 사건이 서술되고, '이 곳에 보일러 플레이트도 함께 있었다.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라고 언급된다.

 

 이러다 보니, 나처럼 재미진 픽션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허구와 역사가 그다지 잘 버무려져 있지 않고 따로따로 서술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주연이 조연같이 느껴진다! 작중의 역사 서술은 길지 않지만(사실 책 자체가 별로 길지 않다), 독자는 주인공 일행의 여정에 함께하기보다 건조한 역사 서술을 읽어내려가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가 아니라 미국역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우리로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보일러 플레이트가 친 멕시코적 행적을 보인들, 역사의 맥락을 알지 못한다면 뭐 그리 파격적이겠는가?

 

 인용된 가상의 서신 등에서 시대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각과 약자들에 대한 연민이 드러난다. 여기가 주제가 드러나는 부분이겠지만, 사실상 저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소 주마간산이라는 기분도 든다.

 

 아쉽다. 좀 더 재미있어질 수 있었다. 재미가 전부는 아닐지 모르지만, 다른 곳에서 많이 다루어진 소재인 만큼 이 책은 재미있었어야 했다, 앞선 것들보다 더. '가짜 논픽션'이라는 특별한 형태를 취한 만큼의 특별한 기대를 100% 채워주지 못한 점이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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