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나는 책 자체가 된다. 나는 30~40쪽을 읽기만 하면 된다. 그러고 나서 눈을 들면 이미 날이 다시 밝아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한 몽테스키외 처럼 지나친 주장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슬픔을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 한 시간의 독서는 정확하게 한 시간 동안은 슬픔을 잊게 해준다. 독서가 끝난 다음에는 다시 슬픔이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그동안에 날이 샐 수도 있다. 이렇듯 신앙처럼 희망을 품는다는 사실로 인해서 독서하는 사람은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일까? 그런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힘이 책 속에는 있기 때문이다.-271쪽
책 읽는 여자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가사,남편, 경우에 따라서는 애인조차 잊어버린다. 오직 책만을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지금 이곳에서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지닌 내밀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신문의 경제면을 펼치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편은 가장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그녀의 생각은 지금 전혀 딴 곳에 가 있고, 남편은 그곳으로 아내를 쫓아갈 수가 없다. 남편은 아내가 저곳 안락의자에, 창가에,소파에,침대에,기차 칸에 있는 것을 보지만, 그녀는 그곳에 있지 않다. 그녀의 영혼은 안식을 누리고 있지만 남편이 옆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남편은 자신이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만, 남편인 당신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2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