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인간실격』을 읽는 9가지 이유

외롭고 절망적이어서 감동적인 소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는 일본 소설로 손꼽힙니다. 1948년 출간된 이 소설에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모여서 읽으며, 그 독서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한국에서 사랑 받는 일본 작가를 묻는 순위에서 자주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를 다투는데, 그의 대표작인 『인간실격』이 없었다면 이런 인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그만큼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부쳐진 찬사는 화려하고도 우뚝한데, 예컨대 전후 일본 문학사에서 1,000만부 판매된 기록, 20세기 일본을 강타한 데카당스 문학의 정수, 일본 문학의 신(神)이 낳은 위대한 자전소설…. 등등이 있습니다. 후대의 문학,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도 『인간실격』의 모티브는 끝없이 반복 재생산되는 중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다자이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 작가라는 식의 이야기도 많이 언급됩니다. 아무튼 굉장한 작가요,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거창한 헌사들과 다자이의 『인간실격』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인간실격』은 이런 문학적 열광과 다소 거리가 있는 '외로운' 작품입니다. 『인간실격』은 열광이 아니라 회의의 결실이고, 연대가 아니라 고립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탈고한 후 결국 자살해 버린 다자이가 이런 후세의 열광을 어떻게 생각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어쨌든 1인칭 시점의 수기 세 편과, 이 수기를 보충하는 짤막한 머리말과 후기로 구성된 이 길지 않은 소설은, 작가의 기구하고도 극적인 삶과 맞물려 거의 '신화'와 같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수천 만 명이 읽은 '위대한 문학 작품'이라는 사실 이전에, 우리들은 왜 여전히 『인간실격』을 읽고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걸까요? 그 이유를 9가지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인간 실격 ㅣ 다자이 오사무 지음 ㅣ 양윤옥 옮김




1. 솔직하다, 경이로울 만큼


문학은 모든 작가의 자전적인 기록이며, 내밀한 자기 고백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소설은 그야말로 '솔직함의 끝'을 보여 줍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앞에서는, 세계문학사의 위대한 성취로 회자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어느 정도는) 작가 자신의 허영과 자의식으로 장식된 느낌을 줍니다. 『인간실격』은 다릅니다. 자신의 영혼을 내던지면서 썼다는 게 분명해서, 오히려 작가에게 연민까지 느끼게 하는 소설입니다.



2. 인간이라는 보편성


그러나 단지 솔직하기만 해선 위대한 문학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면서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키워드를 끝까지 붙들고 매달립니다. 다자이 평생의 인간론이 이 작품 안에 촘촘하게 형상화 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고 묘파하는 독자적인 관점과 문체가 인간의 보편성과 맞물려 소설을 수놓고 있는데, 『인간실격』 첫 번째 수기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실격』 13페이지)



3. 전복의 미학


일본은 국가적으로 '올인'했던 세계 2차대전에 장렬히 패배했습니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고,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던가? 이 질문에 아무도 답할 수 없던 전후의 일본이었고,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윤리적 기초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자이는 전후 무뢰파(無賴派) 문인을 대표하면서 기성 사회를 믿지 말라, 아무것도 믿지 말라고 다그쳤고, 당시의 청년들은 그에게 열광했습니다. 『인간실격』에도 바로 그러한 불신의 흔적들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신은 어느 특정 시대와 국가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4. 나르시시즘을 밀고 가려면 이 정도로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무라카미 하루키를 싸잡아 '일본 문학의 3대 나르시스트'라고 비판해서 화제가 되었죠. 그런데, 나르시스트면 어떻습니까? 다자이 오사무 자신도 분명 스스로에게 매혹되어 있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상처까지 너무나 사랑해버린 불행한 예술가였습니다.


“그 상처는 점점 내 피와 살보다 더 친해져서, 상처가 주는 고통이 아예 상처의 살아 있는 감정, 또는 애정의 속삭임으로까지 느껴졌습니다.” 

(『인간실격』 51페이지)



5. '개인'의 잠재력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때 이래로 나는 이른바 '세상이라는 건 어느 한 개인이다'라는 철학 같은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실격』 94페이지)


『인간실격』의 오바 요조는 사회나 공동체, 협력, 연대, 우정, 인간성 따위의 말들을 믿지 않는 인간입니다. 그에게 모든 세상사는 오직 개인들의 영혼이 맞부딪치는 치열한 현장입니다. 물론, 요조는 좌절합니다. 그러나 결국 개인으로서 이 험한 세계를 살아가야 할 우리는 다시금 자세를 고쳐 앉게 됩니다. 다자이는 『인간실격』을 통해 독자에게 기묘한 방식으로 '너 한 사람부터 더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채찍질을 하는 것이죠.



6. 인간의 순선함에 대한 애정이 배어 있다


요조와 다자이는 인간에게 철저하게 절망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순결한 영혼에 대한 믿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을 믿습니다. 그는 인간을 미워하는 그 순간에도 인간성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순선한 인간성이 짓밟힌 비겁하고 인색하고 거짓된 세상을 묘사하는 『인간실격』이 그만큼 애처롭고 정다운 건 이 때문입니다.



7. 동시에, '절망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인간실격』 속의 인간 군상들과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사회는 얼마나 다를까요? 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는 찾기 힘들고, 모든 인간이 자신의 음침한 욕망을 시시각각 내보이며, 넙치처럼 적당히 예의를 차리며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소시민이 주위에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실격』을 읽는 건 역시 어떤 절망적인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인간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디나 다 그렇고 그런 존재라는 걸 깨닫고, 다시금 이 험한 삶을 살아갈 위안을 얻게 됩니다.



8. 세련되고 담백한 문체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들은 낡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고전 근대문학에 배어 있는 다소 점잖고 교훈적인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와의 차이점일 것 같습니다.) 『인간실격』 속에서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듯 느껴지는 친근한 경어체의 문장은, 언제든 우리를 요조의 가장 가까운 벗이 되게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일본문학 번역가인 양윤옥 선생님의 번역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9. 삶과 문학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작가의 삶과 문학은 100퍼센트 일치하진 않습니다. 예술 작품은 작가 개인의 체험이나 발자취 등과는 별도로 그 자체만으로 평가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작가의 전인격적인 삶이 ‘저절로’ 그 자신의 작품 속에 걸어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투명하고도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그런 작품을 읽을 때…, 우린 문학과 그 문학을 창조한 ‘작가의 영혼’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실격』이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