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홀로 선 나무 - 조정래 산문집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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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글 쓰냐? 가끔 안부 전화를 하는 선배의 지나가는 인삿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처음 내 발로 찾아간 글쓰는 동아리에서 나는 글보다는 글씨를 더 많이 썼었다. 빨간 물감과 파란 물감 따위로 글이 아닌 글씨를 쓰던 그때도 나는 뻔뻔스럽게 사람들을 만나면 글을 쓴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조정래 작가의 <누구나 홀로 선 나무>를 읽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식해서 용감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꿈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또, 두려운 작업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참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한 조정래 작가의 첫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는 그래서 아마도 내 생애에서 가장 소중한 책이 될 것 같다.

부끄럽게도 나는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전 <한강>을 읽었다. <한강>을 읽고 비로소 조정래라는 작가에 눈을 떴다. 사설학원에서 8년간이나 국어를 가르치면서 나는 조정래라는 작가와 작품의 제목만을 겨우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강>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왜 일찍이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지 않았는지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그러다가 작가가 처음으로 산문집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산문집을 구입했던 것이다.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조정래 작가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그가 글을 쓰는 태도는 말 그대로 올곧게 선 한 그루 나무였다.

온 몸을 바쳐 글을 써 온 작가 조정래. 그가 빛나는 이유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끝내 진실만을 써 왔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몇 번이나 읽으려고 하다가 1권에서 끝내 포기해버린 <태백산맥>이 그렇게 힘들게 쓰여진 것인 줄 알았다면 나는 그처럼 경솔하게 책을 덮지는 않았을 것이다.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적 진실을 말하려고 밤낮 없이 연필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모습을 나는 산문집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자식을 많이 둘 수 없어 외아들 하나를 둔 작가는 작품이 이렇게 팔릴 줄 알았다면 자식을 두엇 더 둘 것을 그랬다고 너털 웃음을 웃는다. 하나 자식이지만 아주 엄중했던 작가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일일이 배껴 쓸 것을 명했다. 아비의 노고를 몸소 느껴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작가의 글을 한 번 그대로 배껴 써 볼 생각이다. 아직 책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일을 꼭 해내리라 다짐한다.

산문집에는 작가의 문학관과 작품 탄생 배경 외에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 많다. 특히 1, 2장은 이 산문집의 전체적인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얼마나 따스한지, 정확한지, 구체적인지 미래지향적인지 느낄 수 있다. 또한 작가의 날카로운 역사의식은 날이 갈수록 '나'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맴도는 근시안적인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나는 작가와의 대담을 읽으며 굵직굵직하고 거대한 작품을 쓴 작가의 소탈한 이면을 보았다. 어쩌면 가장 여리고 세심한 사람만이 진실을 올곧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문득 든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 누구나 홀로선 나무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잔뜩 치장한 모습이지만 넓게 자리만 차지하고 서 있지는 않은지, 남에게 기대야만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설 자리까지 뺏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 누구보다 올곧게 우뚝 선 나무, 조정래 작가를 만나고 돌아서며 나는 나의 나무를 다시금 되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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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행복한 세상 TV동화 행복한 세상 10
KBS한국방송 지음 / 샘터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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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때론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차근차근 되돌아보면 그리 바쁜 것도 아닌데 여유없이 후다닥 지나가버리는 일상 속에서 가뭄의 단비처럼 뭉클한 감동을 받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경기도 좋지 않고 날씨까지 구질구질한 날이면 더욱 따스한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모처럼 친정어머니가 딸네집에 오셨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다니기 위해서다. 아무리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해도 불편해하시는 모습이 역력하다. 평소에 신문이나 잡지 등 읽을거리를 즐겨찾으시는 어머니는 딸네집의 커다란 책장 앞에서 마땅히 읽을 꺼리를 찾지 못하신다. 하긴 반은 20개월 손자녀석 그림책이고 반은 봐도 모를 전공서적들이니 오죽하실까. 평소에 불효가 늘 마음에 걸렸던 나는 아들과 어머니가 사이좋게 낮잠자는 틈에 집앞 도서대여점에 들렀다.

한눈에 어머니가 좋아하실 책이란 생각을 하며 망설임없이 빌려온 책이 바로 <TV동화 행복한 세상>이다. 가끔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기 위해 책을 읽으시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만큼 어머니는 감동적인 책을 좋아하신다. 나는 감동이 마구마구 준비되어 있는 이 책은 꼭 우리 어머니를 위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읽기 위해 이 책을 빌리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나는 낮잠 대신 평소에는 결단코 읽지 않았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들내미 그림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따스한 파스텔톤의 삽화가 정겹다. 자세히 보니 가끔씩 TV에서 봤던 장면들이다. 그러고보니 몇 개의 내용은 무심결에 흘려보았던 내용 그대로이다. 이 책이 그렇게 잘 팔린다니 조금 씁쓸해진다. 책 자체는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내용이지만 내가 보기엔 초등학생 도덕책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따스한 사랑과 정에 목말라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을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실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미 세상에 물들고 모든 걸 비판적으로만 보려는 나에 비해서 어머니는 아마도 이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동하실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철없는 딸이 어머니께 조그만 감동 하나를 선물하게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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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wn Bear, Brown Bear, What Do You See? (Boardbook + Tape 1개) My Little Library Boardbook Set 43
에릭 칼 그림, 빌 마틴 주니어 글 / 문진미디어(외서)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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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 14개월에 접어든 시영이를 위해서 <브라운 베어>를 구입했다. 엄마의 욕심으로 명성만큼이나 꼭 갖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지만 우리 아기에게도 더 늦기전에 <브라운 베어>의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아주 단단한 보드북의 환상적인 그림과 반복적인 문장은 아기들이 흥미를 가질만해 보였다. 테잎을 들으면서 집중하고 관심을 갖는 시영이를 보면서 좀더 빨리 사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잠깐 스치기도 했다.

책을 직접 대하고 보니 <브라운 베어>가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일단의 책의 재질이 단단해서 오래도록 망가질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어린 아기들일수록 페이퍼북은 쉽게 찢고 망가뜨려서 오래 보지 못하는데, <브라운 베어>는 얼마나 두꺼운 보드북인지 의도적으로 떼내지 않는 이상 절대 훼손될 위험이 없다. 그리고 많은 엄마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듯이 그림이 환상적이고 예쁘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여러가지 색감과 시원하게 표현된 동물들은 충분히 아기들이 좋아할만 하다.

마지막으로 단순하게 반복되는 문장구조이다. 한창 말 배우는 아기들이 쉽고 재미있게 따라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엄마들이 직접 읽어주는 것도 좋지만 테잎을 활용해서 엄마랑 아기랑 함께 따라읽고 노래도 부르면 책읽는 시간이 한결 재미있어질 것 같다.

이제 좋은 책도 마련했으니 좀더 부지런을 떨어 성실하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좋은엄마가 되는 첩경은 부지런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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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 (100쇄 기념판) 웅진 세계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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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가슴저린 말은 혼자 조그맣게 불러보는 '엄마'란 한마디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말 속에 가족과 가정을 위해 일방적으로 사랑과 희생을 쏟아부어야하는 정형화된 존재로서의 엄마를 전제한다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면 실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돼지책>의 가족들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피곳씨네는 내가 자라왔던 가정일 수 있고,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가정일 수도 있다. 내가 이 그림책에 큰 점수를 주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특별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를 책임지는 남편과 공부하는 아이들은 모두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 엄마는 온종일 해도해도 별 표시도 없는 일들에 매달려 자신을 잊고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낸다. 각자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집에 와서 당연한 듯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면 엄마는? 엄마의 일터 집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엄마에게 휴식이란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모두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아무도 엄마란 존재, 아내란 존재를 배려하지 않는다. 왜? 그들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돌아왔고 엄마란 존재는 늘 집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아이들이란 모방을 통해 배우고 자라난다. 스폰지처럼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은 특히 부모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모방하면서 서서히 자신만의 남성상과 여성상의 기초공사를 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신문을 펼쳐들고 이것저것 주문을 해대는 피곳씨의 두 아들이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엄마를 불러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기를 키워본 엄마들은 잘 알겠지만 아기들은 호기심이 많아 무엇이든 스스로 해 보려고 한다. 오히려 늘 일만 더 벌이는 격이 되지만 끊임없이 혼자하려고 덤벼든다. 그러던 아기가 어느새 훌쩍 자라 엄마의 도움이 필요없어졌을 때, 이젠 엄마를 도와주어야할 그 아이들은 오히려 무엇이든 엄마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엄마, 물. 엄마, 내 양말. 아이들이 스스로 하려고 하는 것은 오로지 노는 일 뿐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할 분담을 가르쳐주고 엄마, 아빠가 모범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잔소리 없이도 자연스럽게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가출해버리는 피곳씨 부인. 엄마의 자리가 휑뎅그레 비어버린 가정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굴러가는 듯 하나 어느새 남겨진 가족들은 추한 돼지가 되어버린다. 우리가 흔히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운운할 때 돼지는 식탐만 하는 무가치한 존재의 대명사인 것이다. 이 책의 돼지 역시 그런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엄마, 아내란 존재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지켜지던 가정은 엄마, 아내란 자리가 비자마자 돼지 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간혹 <돼지책>을 보고난 남편의 반응을 물어보면 엄마들은 하나 같이 우리 남편은 돼지라도 좋다는데, 한다. 하지만 혹시 남편들은 알고 있을까. 돼지랑 살아야하는 아내의 서글픔을. 자신의 사랑스러운 자녀가 돼지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슬픔을.

한 권의 책이 소중한 것은 이 세상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쏟아지는 많은 책들 속에서 양서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라고 해서 낙낙한 것은 아니어서 매번 좋은 책을 선택하기가 힘이 든다. 하지만 <돼지책>은 남아, 여아 구분없이 꼭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의 고충을 부드럽게 이야기한다면 아이들이 먼저 아빠의 손을 잡아 끌지 않을까. 이렇게 외치면서 말이다.

'아빠, 우린 돼지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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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물고기 무지개 물고기
마르쿠스 피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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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물고기>는 정말 보고 싶었던 그림책이랍니다. 많은 엄마들의 입소문으로 그저 책 제목만 귀동냥하고 있다가 지난 주말에 가족 모두 오랜만에 도서관 나들이를 했답니다. 어린이실에서 그렇게 찾던 <무지개 물고기>를 발견하고는 솔직히 처음엔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여기저기 손때가 묻고 귀퉁이가 낡은 그림책의 모습은 제 상상과는 많이 달랐거든요.

반짝반짝 빛나는 비늘의 예쁜 무지개 물고기를 늘 그려왔었는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만지작거렸는지 은비늘은 시커멓게 변색되어 그 빛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빛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은비늘을 만지고 지나갔던 수많은 아이들의 가슴속에 예쁘게 남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게 분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무지개 물고기처럼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의 기쁨을 깨달았을테니 말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이 빌리지않아도 이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하기만한 내 아이에게 이런 진리를 쉽게 설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때, 그저 책 한 권 함께 읽는 것으로 모든 걸 말하지 않고 이해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지개 물고기>는 바로 그런 역할을 해 주는 책입니다.

아이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빼앗아 강제로 나누어 가지게 한다면 아이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노심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개 물고기가 자신의 은비늘을 나누어 주면서 얻게 되는 친구들의 사랑을 아이가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순간,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친구에게 내밀지도 모릅니다.

참된 스승이 없다고 한탄하는 요즘 세상에 책만큼 훌륭한 스승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 키우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는 엄마들에게 훌륭한 육아 지침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책 한 권이 아이의 인생을 바꾸게 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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