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 - 살아 오는 북간도 독립운동과 기독교 운동사
문영금.문영미 엮음 / 삼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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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갑이와 고만녜는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여사의 아명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함께했던 두 사람은 실제 자신의 이름보다 문익환, 문동환의 부모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구한말에 태어나 북간도로 이주해 교과서 속 근대사의 인물들과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내고, 독립부터 민주화 운동까지 이어지는 현대사의 흐름을 오롯이 온 몸으로 살아낸 두 분은, 한국전쟁 이후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 남한으로 내려와 80년대 말 세상을 떠나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생애를 온전하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몇 해 전, 캠퍼스는 다르지만 정말 자랑스러워 마지 않는 학교 선배인 최규석 작가의 『100℃』라는 만화(리뷰)를 읽은 적이 있다. 1987년 6월 10일의 만세운동에 대한 내용인데, 이 책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문익환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고유명사의 느낌으로 이름만 몇 번 들어본 것이 전부였었다. 


비록 전체 내용 중 일부로 몇 컷이지만 너무나 선명하게 새겨져있던 그 분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아 언젠가 평전 혹은 회고록을 통해 꼭 한번 배우고픈 현대사의 한 인물로 꼽고 있었는데, 과제 내용(50~80년대 현대사 인물 중 한 사람의 회고록을 발굴, 소개하기 *정/재계 유력인사 제외)을 접하는 순간 ‘기회는 이때다’ 싶은 느낌이 왔었다. 하지만 잠시 후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우고픈지’에 대해 고민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그런 문익환’을 있게 한 좀 더 원초적인 존재를 찾고 싶어졌다.  



이렇게 이제까지는 존재조차 잘 몰랐던 문재린 목사와 그의 아내 김신묵 여사가 결국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문재린 목사의 인생은 한국의 근·현대사 시기와 오롯이 함께 해왔다. 생존했던 시기뿐만 아니라 본인이 활약한 모든 분야에서 두루 그러했다. 그리고 문익환 목사가 문재린 목사를 통해 존재할 수 있었듯 그 역시 못지않은 가족들의 계보를 통해 우리의 현대사 안에 존재해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까지 이어져 온 한국의 어두운 역사와 불합리한 문화 속에서도 굳건하게 존재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정신은 더없이 존경하는데, 그렇게 집안 대대로 존재했던 어머니들이 이 문씨 문중에도 있었고 그래서 문재린, 문익환 목사를 비롯한 후대의 인물들이 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새삼 떠올렸던 것이 ‘가정(교육)의 중요성’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가정은 1차적 사회화 기관이다.’ 라는 표현에 대한 공감을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절감하고 있는데, 이런 교훈들이 여과 없이 드러난 사례가 바로 이 책이지 싶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단순히 문재린·김신묵 여사의 회고록이 아닌 집안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자 유산이고 가보일 것이다.  
 


문재린 선생이 목사였고, 집안 대대로 사역의 삶을 전수받아온 만큼 책 전반에는 기독교인의 삶과 신앙에 대한 간증이 담뿍 묻어났다. 우리는 이들을 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 기억하지만, 그런 활약들이 가능했던 것 역시, 그가 올바른 신앙을 믿고 실천하는 목사였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그런 그의 회고록에서 그가 종교인이기에 추구했던 가치와 그것이 배인 실천 및 태도 그것이 전혀 아쉽지 않게 드러난 삶을 회고하고 있으니 읽는 사람은 자신의 기준에 맞춰 그것들을 겸허하게 수용하면 될 것이다.

 

나는 사회가 지식인에게 주는 책무보다 종교인 스스로가 짊어져야 할 역할의 무게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역을 삶의 업으로 여기는 종교 지도자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이는 세금을 면제받는 것 등의 사회 구조적인 요인에서도 그렇지만, 그들이 믿는 신앙과 신념에서 추구해야 할 본분이 마땅히 그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라는 이름의 종교가 처음 이 땅에 발을 들이던 시기부터 대대로 신앙을 지켜온 집안의 나로선 그만큼 이 땅의 변질된 신앙이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오랜 생을 정리하고 높은 곳에서 안식을 얻은 두 분이 오늘날의 시국을 보고 있다면 참 지치고 수고스러웠던 생애보다 더 근심 가득한 마음으로 불안해 할 것이라 확신할 정도로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개독'이라고 지탄받는 그들이, 부디 자신이 믿고 있다는 종교의 이름에 더 이상의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문재린 목사의 그릇을 단 한 푼만치라도 닮을 수 있길 간절히 염원하고 싶어졌다. 
 


나는 또래나 주변인들에 비해 결코 독서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회고록 형태의 독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 사람이 지상에 내려와 인생이란 여행을 통해 겪는 시절의 모든 이야기를 책 한권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더구나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가치를 몸소 실천하고 후대에 물려주기까지 한 인물이 그 주인공이라는 감흥은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어찌 아니 두려웠겠는가, 다만 부모님의 올바른 가르침에 따라 자연스레 배운 눈으로 세상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노력' 그것이 진짜 감동이었던 것이다. 
 

나는 왜 홀린 듯 여러 과정을 거쳐 이 두꺼운 책을 집어들게 되었을까. 어찌 보면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옛 사람의 이야기를 그렇게 묵묵히 읽어내려왔던 걸까. 나는 무엇을 원했을까. 이렇게 600여 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수시로 펼쳤다 덮었다 하고 수없이 질문을 반복하면서 참 어렵게 이번 회고록으로 배우고자 했던 내용(과제의 핵심 주제)을 간신히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양심을 지키는 삶’, ‘타인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실천을 행하는 삶’. 그것이 멀리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지인에게는 온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삶. 이런 것들이다. 사실은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일이며 모든 실천의 근간이 된다는 사실, 이것이 내가 기린갑이와 고만녜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이번 글은 이번학기 전공과목, 『한국 현대 사회의 발전』 학기 과제의 일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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